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3-10-08 21:16:32

기자(동음이의어)

1. 언론 매체의 기자2. 이집트의 지명3. 상나라의 현인4. 제5인격의 생존자 기자

1. 언론 매체의 기자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기자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記者. Reporter.

사회 각지에서 일어나는 일을 각종 언론 매체를 통해 세상에 알리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들.

찌라시 혹은 가짜 뉴스를 퍼뜨리는 기자들은 기레기 라고도 한다.

2. 이집트의 지명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기제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3. 상나라의 현인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기자(상)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상나라의 왕족. 주왕이 폭정을 저지르자, 그에게 간언하였는데, 되레 옥에 갇히고 말았다. 주나라 무왕이 상나라를 무너뜨린 이후 풀려났으며, 기 땅의 자작(기자)으로 책봉되었다고 한다.

조선시대까지 기자조선은 실존했던 국가로 인식되었지만, 현대 사학계에서는 그 실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실존했음을 입증할 만한 유물이나 유적이 나온 것이 없는데다, 기자동래의 기록 또한 당대로부터 800년 이상의 세월이 흐른 뒤부터야 등장하기 때문.

기자동래설은 중국에서는 한민족을 복속하기 위한 이념적 토대[1]로 활용되었다. 실제로 중국은 이런 식의 전과가 많은데, 흉노가 하나라 걸왕의 후손이라거나 는 진나라의 신하 서복이 세운 나라라고 주장하는 등 타민족의 기원을 자신들의 역사와 결부시켜 이해하는 태도를 보여왔다. 그러나 조선 등 한민족의 국가에서 기자동래설은, '우리 땅에서 유학의 역사는 중국에서의 그것(공자)보다 더 오래되었다.'는 점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특히 '성인(기자)이 찬탈자(주무왕)를 피해 이곳 동방으로 왔다.'는 서사는 '폭력과 야만의 중화 vs 덕과 예의 한민족'의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 최적이었다. 그래서 한민족에게 기자조선이란, '우리 또한 중국에 뒤지지 않는다.' 내지는 '우리가 중국보다 문화적으로 더 우월하다.' 같은 자부심을 증명하는 존재였다.

4. 제5인격의 생존자 기자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기자(제5인격)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1] '이(夷)는 어질다.(仁) 그러나 성인의 교화가 있어야만 그 천성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런데 성인은 중화에서만 나올 수 있으며, 이적의 사회에는 나올 수 없다. 따라서 이는 중화를 따라야 한다.' 같은 논리이다.참조 : 중국 정사에 보이는 우리 민족의 이미지-우리역사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