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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79년 9월 21일 |
전라도 용담현 (現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 주양리[1] 476번지) | |
사망 | 1950년 2월 10일 (향년 70세) |
본관 | 광산 김씨[2] |
서훈 | 대통령표창 추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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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3년 대통령표창을 수여받았다.2. 생애
1879년 9월 21일 전라도 용담현(現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 주양리)에서 태어났다.진안군 주천면 서기로 재직 중이던 1920년 11월 19일, 도쿄에서 무주군 무주면 용포리에 거주하는 친지 송병두(宋秉斗) 앞으로 5회에 걸쳐 독립선언서와 결의문 등의 문서와 독립운동 관련 기사가 게재된 《대한민보(大韓民報)》·《독립신문》등을 국내 배포용으로 부친 바 있는 김영필(金永弼)이 일본 경찰에 검속되어 진안군 주천면 경찰관 주재소에서 심문을 받고 있을 때에, 마침 일본인 도순사(道巡査) 니시고리 미츠야(西郡光哉)가 김영필에게 도순사 오자와 마키노스케(小澤牧之助)를 비방한 것을 들어 훈계하고 있었다.
이때 김규현은 주재소 사무실로 들어가 "우리는 빼앗겼던 나라를 다시 찾으려 한 것인데 이것이 무슨 죄냐?"고 하면서 분을 참지 못하고 돌연 손으로 오자와 마키노스케의 머리를 난타하여 림프절 종창(腫脹) 및 우측 머리에 2주간의 치료를 요하는 상해를 입혔다.#
이로 인하여 체포된 그는 1921년 2월 23일 광주지방법원 금산지청에서 소위 공무집행방해 및 상해죄 혐의로 징역 6개월(미결구류 50일 산입)을 언도받아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조용히 지내다가 1950년 2월 10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김규현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