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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3-11 02:04:25

김기환(조직폭력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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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에 사형이 집행된 지존파의 두목 김기환(金基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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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 조직폭력배 두목
종로
구마적
신마적
쌍칼
본정
하야시
서대문
김기환
왕십리
김남산
마포
정춘식

<colbgcolor=#000,#050505><colcolor=#fff> 김기환
파일:김기환 신문.jpg
신문에 실린 김기환의 사진(맨 가운데 위쪽)
[ 밑에 삽화 펼치기 · 접기 ]
파일:히스토리 채널, 김기환 삽화.jpg

히스토리 채널의 방송에 나온 김기환 삽화.
출생 1911년?[1]
사망 1949년 7월 20일
대한민국 제1공화국
사인
직업 前 권투선수, 조직폭력배

1. 개요2. 생애3. 여담4. 대중매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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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김기환은 일제강점기 무렵 구마적, 신마적과 함께 경성일대를 주름잡던 1세대 조직폭력배이며, 김두한조직폭력배 세계로 끌어들인 인물로 알려져 있다.

2. 생애

깡패가 되기전에는 이름난 권투선수였다.
당시에 조선 권투구락부의 창시자이자 대한민국 권투 역사의 시작을 알린 성의경에게 스카웃 되었고, YMCA소속으로 권투를 시작하게 되면서 권투를 그만두기전까지는 전승 무패의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권투를 그만두게 된 이유는 술을 몹시 좋아하고 기생들에 돈을 갖다 바치듯 유흥에 빠져들었으며, 노름과 도박이 일상이다 보니 선수로서 재기할 수 없어서 무전취식 행위와 노상강도, 심지어 무리를 모아 열차에서 삥을 뜯는 등의 강도행각을 벌이다가 붙잡힌 일도 많았다.

그렇게 하다가 자신의 심복인 쌍칼[2]과 함께 조직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복싱으로 다져진 막강한 싸움실력으로 서대문 일대를 손아귀에 넣고 철권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구마적에게도 서대문의 보스로써 인정받게 되고, 신마적도 그의 실력을 인정했다.
그러나 조폭들이 다 그렇듯, 저 위의 각주에 있는 링크를 따라가 보면 하는 짓이 죄다 졸개 몇 명 이끌고 삥뜯고, 사람 패서 잡혀가는 등 동네 시정잡배에 가까웠다. 말이 보스였지, 보스로써 리더십이나 카리스마는 오히려 자신의 부하였던 쌍칼보다 더 못했다고.

구마적과 처음에는 친밀했으나 이후 예하조직의 부하들을 폭력으로 다스리고 세금을 갈취한 구마적과 사이가 틀어졌다. 후일 일본 순사에게 오줌먹인 사건으로 인해 수배되어 도피를 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김두한에게 조직을 물려준다.

김동회의 증언에 의하면 해방 이후에도 조직 생활을 했고, 모 유명인사의 경호대장으로 고용되었다가 1949년 39세의 젊은 나이에 암[3]으로 사망하였다.

3. 여담

4. 대중매체에서

4.1. 장군의 아들

성우 민응식이 실사배우로서 연기했다. 다만 대사는 모두 본인이 후시녹음한 것.

종로파의 두목으로 우미관의 사장 김만복의 제의로 우미관을 터전으로 삼아 활동한다. 작중 망치의 발언에서 조선 주먹계의 거두란 표현이 나오며 종로 야시장의 쌍칼, Y패의 신마적 또한 형대접을 하는 거물.

쌍칼이 김두한을 수하로 데리고 있으려 했으나 극장 취직을 원한 김두한을 쌍칼이 김기환에게 거두어달라고 부탁함으로써 두한의 형님이 된다. 그 후 이도류 무사시에게 잠시 우미관 두목의 자리를 넘겨주고 잠적했지만 무사시가 김두한에게 패배하자 어느순간 자연스레 우미관에 등장한다. 돈주고 고용한 무사시를 조져버린 사건으로 인해 사장 김만복에게 잔소리를 듣자 내가 나가면 된다면서 화를 내며 나간 두한을 설득하고, 술먹고 기분좋게 놀다 자신의 파트너에게 집적대는 형사를 패버려 결국 수감된다. 이때 김만복은 김기환을 출소시키기 위해 하야시에게 찾아가 부탁까지한다. 물론 하야시 입장은 노리던 종로의 오야지가 사라지니 거부. 허나 김기환은 두한과의 면회에서 오야붕자리를 넘겨주면서 자신은 이제 늙었다면서 범새끼인 두한을 견제하지 않고 자신을 견제한 하야시를 오판을 저질렀다고 디스한다. 의리를 저버릴 수 없다며, 우미관 사장이나 시장 조합장들, 신마적의 조언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방황중이던 두한을 설득하고, 오야붕 자리를 내준다.

2부에서는 출소하여 술에 취한 김두한을 꺾고 종로파를 해산시킨 하야시와 담판을 지어 종로를 다시 되찾았지만 이는 하야시의 계략이었고, 결국 부하들의 원성과 신뢰를 잃음[5]과 동시에 자신이 속았음을 깨닫고, 다시 두한에게 모든걸 넘기고 떠난다. 이때 두한은 김동회에게 털리고 난 후 유흥에 빠져 술집여자 세쯔꼬와 정신없이 놀고 있었다.


[1] 1935년에 24세, 1937년에 26세라는 기사가 있어서 1911년생인거 같지만, 1940년대부터는 1914년으로 맞춰진다. 이 당시 기사들은 같은 사람 나이가 기사마다, 사건마다 다른 경우가 많아서 확실하다고 보기는 힘들다.[2] 김기환 조직의 2인자로 김두한을 김기환에게 데려간 인물. 야인시대 등에서는 동일 인물로 묘사되었으나 엄염히 별개의 인물이다.[3] 김동회의 말로는 생전에 술을 하루도 안먹는 날이 없었을만큼 술을 좋아했고, 담배도 하루에 서너갑씩 피워댈만큼 심각한 골초였다. 웃기는 일화가 있는데 김동회가 김두한과 함께 있었을때 갑자기 기환이 형님 오신다며 마중 채비를 할 때 김동회가 주변을 둘러봤지만 아무도 없어 왜 이러나 싶었는데 신기하게 김기환이 나타났다고 한다. 나중에 이유를 물어보니 형님은 담배를 하도 많이 피워서 근처에 담배 냄새가 진하게 나면 십중팔구 기환이 형님이 맞다고.[4] 문영철은 김기환이 주먹세계로 끌어들였다는 설이 있다.[5] 조선 주먹의 거두이자 종로의 오야붕이 야쿠자에게 세금을 바치니 좋은 평판 받기는 그른 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