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12 21:46:09
[clearfix]대한민국의 목사.
1948년 1월 6일 강진읍에서 태어나 강원도 속초우체국에서 5급 행정직으로 근무했다. 그 뒤 고향 강진에 내려와 읍내에서 약국을 운영하던 황호신 장로의 영향으로 함석헌의 <씨알의 소리>, 장준하의 <사상계>, 안병무의 <현존> 같은 잡지를 읽으며 세상에 눈을 떴다. 그러다가 1972년 유신 선포 직전 "불순 사상을 가졌다"는 이유로 끌려가 유치장에서 석 달가량 옥고를 치렀다. 이후 목회자의 길을 걷고자 호남신학교에 입학했다.그리고 1978년 장성 양유교회를 출발점으로 목회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던 도중인 1980년 5.18 광주민중항쟁에 참여했다. 1991년 5월 노태우 군사정권 퇴진을 외치다 경찰 곤봉을 맞고 사망한 명지대 학생 강경대의 하관 예배를 올리다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 등으로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1995년 11월에는 범민련(조국통일범민족연합) 실행위원으로 활동하며 통일운동을 하다가 '범민련남측본부 29인 사건'으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고 6개월간 구속되었다. 1997년 5월에는 정권 규탄 시위 중 사망한 조선대 류재을에 대한 경찰 폭력에 항의하다 집시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고 2005년 5월에는 광주공항의 패트리어트 미사일 철거 투쟁을 하다 집시법 위반 혐의로 수사를 받는 등 다양한 고초를 겪었다. 한편 40년 동안 목회 활동을 마치고 2018년 은퇴하였고 광주 인근 아름드리교회로 출석을 하였다. 하지만 평화 운동은 멈추지 않았다. 6·15 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나주본부 공동대표,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공동대표를 맡아 평화·통일 운동에 힘썼다. 2023년 3월 1일 원래 선천적으로 한쪽 폐가 약하여 호흡하는 데 큰 불편이 있었던 그는 제104주년 3·1절을 맞아 전남 나주 독립운동가 김철 묘소에서 일본의 사죄 촉구 활동을 하고 같은 날 오후 광주 고려인 마을에서 3·1만세행사를 한 뒤 폐렴 증세로 입원해 투병 생활을 했다.
폐렴 증상으로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던 중 2023년 3월 30일 오후 10시 50분경 사망했다. 향년 75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