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축구 코치 | ||
<colbgcolor=#eeeeee,#191919><colcolor=#000000,#e5e5e5> 이름 | 김창형 Kim Chang-hyeong | |
출생 | 1995년 8월 29일 ([age(1995-08-29)]세) | |
경상북도 포항시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
직업 | 축구 선수 (미드필더[1] / 은퇴) 축구 코치 유튜버[2] | |
소속 | <colbgcolor=#eeeeee,#191919><colcolor=#000000,#e5e5e5> 선수 | 포항제철동초등학교 (2002~2007)[3] 대구북중학교 (2008~2010) 대구공업고등학교 (2011~2013)[4] 조선이공대학교 (2015~2016)[5] 조선대학교 (2017)[6] SC 빅토리아 06 그리스하임[7] (SC Viktoria 06 Griesheim) (2017~2018) 보스니아 Podringe Janja (2018) |
감독 | STVFC U-18 (코치) K4리그 고양시민축구단 (코치) K6리그 STVFC (코치) 독립구단 하위나이트 A팀 (2024~ / 코치) | |
자격증 | KFA B License | |
SNS | [8]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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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조선대학교(중퇴), 독일 오버리가[9] 헤센리가[10] SC 빅토리아 06 그리스하임(SC Viktoria 06 Griesheim) 에서 뛰었던 전 축구선수. 현재는 문도그 유튜브 채널에서 활동[11] 중이며 2024년 3월 부터 독립구단 하위나이트 A팀 코치로 활동중이다.2. 선수 경력
2.1. 엘리트 코스를 밟다
김창형은 포항 스틸러스 산하 U-12팀인 포항제철동초등학교[12] 4학년 부터 선수생활을 시작하였다.포항 스틸러스 U-15팀인 포항제철중학교에 진학할 수도 있었지만 주전으로 뛸 수 있는 팀을 찾았고[13], 대구북중학교 축구부에 들어갔다.[14]
대구공고 축구부에 진학하여 선수로 활약했다.[15]
↑지난 18일 김해 안동체육공원에서 열린 제53회 청룡기전국고등학교축구대회 부경고-대구공고 경기에서 부경고 김승주(오른쪽)와 대구공고 김창형이 미드필드에서 공 다툼을 하고 있다. 왼쪽 선수는 탁우선 [16] |
고3때 정강이가 골절되는 부상을 당했고 수도권 대학교에 진학하기로 되어 있었으나 불발되어 1년을 소속팀 없이 재활을 하며 지내게 된다.
아버지가 수소문하여 조선대학교에 입학하기로 되었으나 팀 사정상 3학년 때 조선대학교로 편입하는 조건으로 조선이공대학교 축구부로 들어가게 된다.
1학년부터 주전으로 U리그에 뛰었으며 이승원[17] 감독님께 지도를 받았다.
조선대학교 3학년에 편입학 하였고 U리그를 뛰며 선수로 활약했으나 우리나라에서 축구선수로 성공할 수 있을까에 대한 불안감[18]으로 회의를 느끼고 있던 중에......
2.2. 문홍(문도그)과의 만남, 그리고 독일 진출
PC방에서 게임을 하던 중 문홍(a.k.a.문도그) 이 운영하던 STV에서 우승하면 독일6부리그로 보내준다는 ROAD TO PRO 라는 행사를 한다는 페이스북 글을 보게 되었고 김창형은 해외 생활도 해보고, 언어도 배우고 대학교 다니는거 보다 낫겠지 라는 생각에 지원을 하게 된다. 부모님을 설득하여[19] 조선대학교를 중퇴[20]하고 과감하게 도전하게 된다.참가비와 서울에서의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아르바이트와 찜질방에서 생활하며 어렵게 독일진출의 꿈을 키웠으나
중간에 독일측 에이전트와 일이 꼬여서 6부리그 팀이 아닌 8부리그 팀으로 가야한다고 되어서, ROAD TO PRO가 정상적으로 진행되지 못했다.
참가했던 선수들 일부는 중도포기를 했으나 김창형은 끝까지 남았으며 결국 1위[21]를 하여 독일에 가는 것이 확정되었다.[22]
2.3. 독일 5부리그 입단테스트 합격 그리고 짧은 독일생활
피독광부로 독일에 가신 할아버지 에이전트[23]와 연결이 되었고 할아버지의 도움으로 6부리그 이하 몇 개의 팀에 테스트를 봤지만 모두 탈락했다.[24]5부리그 SC 빅토리아 06 그리스하임(SC Viktoria 06 Griesheim) 팀에서 테스트 제안이 왔고 김창형은 이것이 진짜 마지막 기회[25]라고 생각해서 당시 팀의 주장이었던 파비앙 발터[26]에게 개태클을 날렸다.[27] 이 모습을 좋게 봤는지 테스트에서 합격을 했고 선수계약을 하게 된다.[28]
17/18시즌 19경기 출전 2어시스트로 나름 준수한 활약을 했지만[29][30], 시즌 후 팀과 재계약은 가능했으나 상위리그로 올라가기에는 쉽지 않았고[31], 취업비자 갱신문제[32] 등이 겹쳐 독일에서 선수생활을 계속하는거 보단 눈을 돌려서 동유럽 쪽으로 방향을 선회하게 된다.[33]
2.4. 보스니아 리그 도전 그리고 귀국
잠시 한국으로 귀국 후 한번 더 유럽무대를 도전하기위해 출국, 수소문끝에[34] 독일 에이전트와 연결이 되었다. 이 에이전트의 추천으로 보스니아 리그에 진출하게 된다. 이 오른쪽에 있는 흑인 친구는 에이스 라고 같은팀이었던 나이지리아 친구라고 한다 |
↑경기장 주변풍경이 인상적이다. 더 인상적인 김창형의 순두부 터치 |
보스니아에서의 선수생활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열악했으며[35], 김창형은 유럽무대의 도전은 여기까지라고 생각[36],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3. 코치 경력
- 고양시민축구단, STV FC[37] U-18, STV FC A팀 코치를 하였다.
- 2024년 3월 독립구단 하위나이트 A팀 코치로 선임되었다.
4. 현재 근황
문홍과 함께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고 문홍이 총감독으로 있는 하위나이트 A팀 코치로 활동중이다..5. 여담 및 논란
}}} ||- 전북현대 김상식 감독과 관련하여 전북현대 축구팬들과 설전을 벌인 적이 있다.[39]
- 정신을 맑게 하기 위하여 향을 피웠는데 대마초 냄새로 오인한 이웃주민들이 경찰에 신고하여 조사를 받은 적이 있다.[40]
- 라이브 도중 실제경기영상을 송출해버리는 바람에 유튜브 정지를 먹은 적이 있다.
- 늘 웃는 얼굴에 감정표현을 잘 하지 않지만 기분이 좋거나 나쁘면 콧구멍이 올라가며, 올라가는 각도로 감정의 정도를 알 수 있다.
- 김창형이 사회복무요원으로 훈련소 생활을 할 때 수호(EXO)와 같은 내무반에 있었으며, 휴대전화 번호도 주고받고 훈련소 마치고 식사도 같이 했다고 한다. 지금은 연락하는 사이는 아닌거 같다. 어린 동생들에게도 예의바르게 대해주는 바른 인성에 잘생기고 몸도 좋은 멋진 분으로 기억된다고 한다.
-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클린스만을 좋게 보지 않는다. 감독의 전술이나 능력, 인성 이런걸 떠나서 해외에 거주하면서 우리나라 축구발전에 관심을 두지 않는 태도에 실망한 듯 하다. 2024년 아시안컵에서 우리나라가 우승을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고[45] 만약 우리나라가 우승을 한다면 문도그와 같이 삭발을 하겠다는 공약을 걸었다.
[1] 왼쪽 미드필더[2] 유튜브 문도그 채널[3] 포항스틸러스 U-12[4] 전 국가대표 곽태휘, K리그 레전드이자 전 국가대표 감독 신태용을 배출한 지역명문 축구부[5] 전북현대 한교원 이 이 학교 출신이다[6] 아시아의 삼손 김주성, 홍정호 등 선수를 배출한 광주지역 명문축구팀[7] 독일 축구 5부리그 Hessenliga 소속[8] 유튜브 문도그 채널[9] 독일 축구 5부리그 세미프로 성격[10] 분데스리가 다름슈타트 팀이 있는 주[11] 라이브 진행, 영상편집[12] 2017년 포항제철초등학교로 이름변경[13] K리그 포항 스틸러스의 유소팀은 전국에서 축구재능이 뛰어난 선수들이 모이는 곳이며 여기서 경쟁하며 주전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쉽지 않다[14] 동기로는 두현석 이 있다[15] 동기로는 박세진(1995)이 있고, 황병근선수와도 친분이 있다고 한다[16] 사진출처 http://www.gimhae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5733[17] 광주대 감독 시절 광주대 선수였던 조규성을 수비형 미드필더에서 공격수로 포지션 변경시킨 것으로 유명한 대학축구 명장이다[18] 우리나라는 K리그 프로팀이 아닌 K3이하 하부리그팀으로 가는 것을 실패한 것으로 보는 인식이 있다. 해마다 많은 선수들이 배출되는데 K리그의 문은 매우 좁고 이 문을 통과 못하는 대부분의 선수들은 하부리그를 전전하거나 선수생활을 포기하게 된다. 하부리그의 인식을 바꾸고 저변을 넓혀서 많은 선수들이 포기하지 않고 선수생활을 지속하고 선수로서 성공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K리그1부터 K7리그 까지 연결되는 것이 시급하다고 할 것이다.[19] 부모님 입장에선 잘 다니고 있는 대학을 중퇴하고 들어보지도 못한 문홍이라는 사람이 하는 행사에 참여한다는것에 동의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20] 당시 3학년[21] 참가했던 선수들이 중도포기를 안했으면 김창형이 1등을 못했을 수도 있었다고 한다. 김창형에겐 전화위복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후술하겠지만 5부리그팀에 들어가게 된다.[22] 문홍이 손해를 감수하고 믿고 참여한 선수들을 끝까지 책임을 지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심지어 김창형이 적응실패와 향수병에 걸릴 것을 우려해서 한명의 선수(김준원)[46]를 추가하여 두 명의 선수를 독일에 보냈다.[23] 차범근의 독일진출에도 도움을 주셨다고 한다.[24] 할아버지는 이미 수많은 한국선수들의 도전과 실패를 봤기에 김창형 역시 실패할 거라고 생각했던듯 하다.[25] 선수등록기간이 며칠 안 남았기에 또 떨어지면 팀을 못 구하고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다.[26] https://www.transfermarkt.com/fabian-walter/profil/spieler/49739[27] 산전수전 다 겪은 발터가 테스트 선수의 간절함을 이해해 준거 같다고 고마움을 표시했다.[28] 할아버지 에이전트는 6부 8부 테스트에도 떨어지던 김창형을 은근히 무시했는데(같이 갔던 김준원 선수는 좋게 봤다고 한다.) 5부 팀과 계약하게 되어 놀랐다고 한다. 계약조건은 좋지 않았다고 한다. 월급이 100유로(13만원) 정도... 프랑크푸르트 한인회사에서 박스포장하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마련했다고 한다.[29] https://www.transfermarkt.com/chang-hyeong-kim/profil/spieler/537131[30] 스텟은 부족하지만 팀이 강등권에 있는 힘든 상황이었고, 경기 영상을 보면 잘했다고 주장한다.(확인할 방법은 없다)[31] 계속 5부리그에 머물러봤자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여 재계약 하지 않았다고 한다.[32] 일정금액 이상의 월급을 받아야 취업비자가 갱신되는데 무명의 동양인 선수에게 투자할 팀은 없다. 학생비자나 언어연수비자 같은 걸로 편법을 쓸 수 있으나 비용이 많이 발생하는 문제가 있다.[33] 동유럽팀에서 인정받아 K리그로 온 용병들이 많고(대표적으로 성공한 선수로는 FC서울의 데얀, 인천유나이티드 무고사 가 있다.) 유럽이지만 상대적으로 저렴한 몸값때문인지 K리그에서 동유럽 출신 선수들을 영입하는 추세이다. 김창형도 동유럽에서 K리그로 진출을 생각했었다고 한다.[34] 박스포장해서 어렵게 모은 돈으로 인터넷만 되는 중고노트북을 구입하였고 에이전트와 구단관계자들에게 수백통의 이메일을 보냈다고 한다.[35] 독일에이전트에게 취업사기를 당한 듯 하다[36] 대한민국 남자라면 피할 수 없는 군문제도 있어서 계속 해외생활을 하기 힘들었을 것이기도 하다[37] 문홍이 운영하던 독립구단[38] 부산협객 박현우와도 많이 닮았다.[39] 당시 전북팬들은 전북의 닥공축구를 살리기 위해서 김상식 퇴진운동을 했고, 김상식 감독이 사임하고 단 페트레스쿠 감독이 취임했는데 단 감독의 축구 역시 전북의 닥공축구와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40] 경찰 조사를 받은 것은 라이브 방송중이었던 문홍이다.[41] 독일의 목욕탕은 대부분 혼탕이라고 하며, 혼탕인걸 모르고 한번, 알고 한번 이렇게 두번 갔다고 한다. 혼탕매니아로 오해받는다고 억울해 한다.(간 건 맞잖아?)[42] 보스니아 시절 체밥치치를 가끔 먹었는데 지금도 생각나서 이태원에서 먹어봤지만 그때의 맛이 아니라고 한다. 보스니아 시절 유일하게 좋은 기억인거 같다.[43] 바닷가(포항) 출신이라 생선을 좋아한다고 한다. 문홍은 생선냄새를 싫어한다[44] 문홍에게 쇠고기라면을 끓여줬는데 문홍이 맛도 없거니와 먹고 배가 아팠다고 한다. 갈치구이와 함께 라이브때 문홍을 괴롭히는 밈으로 쓰인다[45] 손흥민, 김민재, 이강인, 황희찬 등 역대 최고의 멤버이기에 우승확률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