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5-02-02 04:18:43

김천익

파일:독립운동가 김천익.png
<colcolor=#fff><colbgcolor=#0047a0> 호적명 김천익 (金天益)
출생 1890년 4월 1일
평안남도 평원군 서해면 용산리
사망 1921년 7월 11일(향년 31세)
상훈 건국훈장 독립장 수훈

1. 개요2. 생애

1. 개요

대한민국독립운동가.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2. 생애

1890년 평안남도 평원 에서 김병두(金炳斗)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1912년 독립운동을 위해 만주로 건너가 1914년 봉천성(奉天省) 통화현(通化縣)의 군무교련소(軍務敎鍊所)에 들어가 교육을 받는 한편 1916년까지 부민단[1][2] 검찰원으로 복무하였다.
1919년 신흥무관학교의 속성과(군사과)를 졸업한 후 홍범도가 창설한 대한독립군에 가담하여 집안현(輯安縣)[3] 본부에서 활동하였다.
이후 조선혁명당의 정사로 활동하던 중 1921년 7월 봉천성 유하현(柳河縣)[4] 삼원보(三源浦)에서 유하현 파출소의 일본경찰 다마이(玉井)에게 연행되는 김련(金連), 차병조(車秉曺), 강진상(姜鎭祥) 등을 구출하기 위해 차용륙(車用陸)과 함께 매복하던 중 행인의 밀고로 출동한 일본 경찰과 교전 중에 전사하였다.



[1] 서간도의 자치기관으로 이후 1919년 5월 3일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했다.[2] 1919년 3월 13일 한족회(漢族會)로 개칭[3] 1965년에 집안현(集安縣), 1988년 지안시(集安市)로 승격[4] 일부문서에서 '류허현' 으로 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