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lbgcolor=#ffffff> 김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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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작 | <colbgcolor=#fff,#191919>(사)전문예술극단예인방 |
| 작가 | 김진호 |
| 초연 | 나주 문화예술회관 |
| 공연 기간 | 초연: 2010.10.12~ 14 |
| 관람 시간 | 90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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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의
| 작의 기다리는 마음도 참 닮았습니다. 견디는 마음도 참 닮았습니다. 너에게 나를 녹이고 나를 너에게 버무려 함께 흐물 어지는 것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익어간다’ 고 하지요. 나 향숙과 장 상달이 함께 익어가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시고 맵고 때론 짜나 놓을 수 없는 '사람의 맛’을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작가 : 김진호 |
2. 작품개요
한국인의 밥상에 오르는 1순위는 김치다. 버터 바른 빵으로 아침을 대신하는 사람들이 늘긴 하지만,김치 없는 밥상을 상상하기란 어렵다. 김치는 단순한 먹을거리이기 이전에 한국인의 문화와 정서를 함축하고 있는 알갱이다.
연극 <김치>는 이런 김치를 매개로 엄마의 사랑과 인간의 삶이라는 보편적 정서를 맛깔스럽게 버무리고 있다.
그래서 김치 담그기라는 작업보다 김치에 담긴 정(情)과 김치를 둘러싸고 펼쳐지는 ‘사람’에 포커스를 맞춘다.
구 나주역 앞에서 대폿집을 운영하고 있는 향숙은 ‘김치명인’으로 근동에 널리 알려져 있다.
남편과 큰 아들을 사고로 잃은 뒤 매일 김치죽을 쒀 올리며 속죄하는 ‘의식’을 치른다.
그 김치죽은 죽마고우 상달은 물론 동네 건달, VIP, 그리고 데면데면한 아들과 며느리를 한 가족처럼 이어주는 요소로 작용한다.곰삭은 김치가 시간을 닮아가듯, 향숙의 시간은 김치를 닮아간다.
자분자분한 남도의 속살, 그 속에서 피어나는 찰진 에피소드가 묻어나는 수채화 같은 이야기를 <김치>에서 만날 수 있다.
2.1. 오늘도 READY GO!를 외친다 노을처럼 아름답게 지고 싶다.
가을입니다. 요즈음엔 가을이 더디게 왔다가도 너무나 서둘러 떠나니 이상도 하고 못내 섭섭하기도 합니다.그렇다고 변하는 자연을 대놓고 탓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살다보니 혹시 우리가 이번 가을처럼 더디게 와서 너무나 서둘러 떠나는 게 아닌지 하고 염려하는 것입니다.
저는 어찌하다가 보니 반세기 가까이 연출자로서 활동해 왔습니다. 길다면 긴 시간입니다.
일견 화려해보이고 즐겁게 보이시지요. 맞습니다. 사실 화려하기도 하거니와 그 즐거움도 큽니다.
빛나는 스타들을 다듬고 전문 스태프들과 협의해서 작품을 제작한다는 일은 분명 행복한 일이지요.
게다가 지인들이 저를 두고 '한국 드라마의 거장이니 화석'이라며 평가해주는 말도 숨길 수 없는 즐거움이기도 합니다.
전남 나주의 극단 예인방이 가을에 저를 불렀습니다.
드라마 연출가에 연극 연출을 섭외하다니 처음에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또한 붐비던 스타배우도 전문인력도 태부족인 극단이 참 용감하다 싶었습니다. 그러다가 곰곰이 생각하니 그럴 만한 이유가 충분하더군요.
저의 예술적 태생은 원래 연극입니다. 제 1회 전국청소년연극경연대회에 출품한 <사육신>에서 최우수 연기상까지 수상했으니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연극인이 연극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다가, 극단 예인방과의 특별한 약속또한 지켜야했기 때문입니다.
예인방의 김진호 회장은 약속을
언젠가 동행했던 여행지에서 저로는 의식도 없이 '연극을 하면서 석양 노을처럼 아름답게 지고 싶다'라고 뱉었답니다.
김회장이 함께 하겠노라며 냉큼 답을 했구요. 신사는 약속이 생명입니다. 오늘도 성실하게 그 약속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기지 덧붙일 이유가 있습니다. 이 이유 때문에 요즈음에는 제가 오히려 행복합니다.
요상한 극단들이 기본기도 여물지 않은 채, 멋 먼주 부리고 있는 안타까운 공연계의 경향입니다.
대신 예인방은 30년이나 쌓은 연기력과 기술력은 물론 결속력에서도 칭찬할 만합니다.
연극도 연극이려니와 그보다 이미 사람들이 있더군요. 이 사람들이 좋아요. 멋을 부리지 않고도 연극을 만들어나가는 진지함이 몹시 귀합니다.
이번 연극 <김치>의 주제가 자칫 무거워 보일 염려도 있었지만,
사람의 자분자분한 속내를 정극으로 해석할 수 있었던 것도 단원들의 힘이 컸음을 밝힙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READY GO!를 감히 외칩니다. 연극 연극<김치>의 내용처럼 우리는 서로에게 생활이 되어야 하고 사랑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우리 제작진의 속내가 조금이라도 읽혀지시길 기대합니다. 저도 끝가지 연극을 지켜내며 저를 끝없이 READY GO! 하겠습니다.
이 글은 故김재형 감독께서 2011도에 연극<김치>를 총연출하며 쓰신 전문입니다.
3. 기획의도
최근 몇 년 새에 국내 연극공연에서 나타난 뚜렷한 트렌드 가운데 '엄마'는 빼놓을 수 없는 소재다.<친정엄마>를 시작으로 <친정엄마와 2박3일>이 열풍처럼 관객들을 끌어 모으더니 영화, 뮤지컬로 선보이며 스터디셀러로 자리잡아가는 추세다.
예인방은 이런 트렌드에 한발 앞서 이미 엄마 시리즈로 경향(京響) 각지의 팬덤을 만들어 왔다.
2008년 김성진 작 <친정엄마>를 시작으로 <두 아들>에 이어 2010년 <김치>를 창작연극으로 무대에 올렸다.
이어 <울 엄니> <엄마의 강> <그대 손에 노란 편지> <못생긴 당신> 등은 엄마 시리즈의 울림있는 변주곡들로 꼽힌다.
2015년 대한민국연극대상 작품상 수상작인 <엄마의 강>이나 2020년 베스트작품상 수상작인 <못생긴 당신>에서 엄마는 소란을 떨며 흐르는 개울이 아니라, 소리없이 무겁게 흐르는 깊은 강물에 다름 아니다. 극중 역할은 다르지만 평생 남편과 자식을 위해 다 퍼주고 쭉정이만 남은, 수세미 같은 삶을 살아간다.
<김치>는 한 번도 단단해지지 못하고 자신의 뼈와 살을 내주고 있는 ‘엄마’의 결정판에 다름없다. 엄마에 대한 애틋함과 안타까운 감정을 지닌 중장년 관객들에겐 나향숙은 그대로 자신의 엄마로 투영된다.
<김치>의 무대는 좁다. 구 나주역 앞에 허름하게 자리한 열 평 규모의 대폿집이 메인 무대다.
향숙은 남편과 큰 아들, 그리고 사업에 실패한 둘째 아들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이 좁디좁은 공간에서 질곡의 생을 마감한다.
과연 엄마 향숙은 한 많은 생을 살아오면서 무엇을 지키며 무엇을 얻으려고 했을까? 사자(死者)들에 대한 속죄였을까,
둘째 아들을 위한 희생이었을까, 홀아비 장상달과의 진한 우정이었을까. 답은 객석에 있다.
믿을 만한 정설인지는 몰라도, 엄마라는 말은 고대 이집트어 <au (to make an offering)+mi, ma, mai(to give, grant)>에서 유래했다고 하는데,
<남에게 바치는 음식을 장만해 먹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불편’한 어원이 이럴진대,
엄마의 다른 이름이 눈물이나 희생이나 사랑이라는 것을 부정할 사람 누가 있겠는가.
가족은 지역을 포함한 모든 집합체의 원형이자, 소통의 최전선에서 우리 사회의 공동체성을 유지하게 하는 마지막 보루다.
그러나 이런저런 이유로 해체되거나 망가지면서 허울만 남은 가족 이야기가 차고 넘치는 게 요즘 세태다.
우리 민족과 함께 해온 김치를 매개로한 엄마 향숙의 작은 서사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구성들과 공유할 수 있는 보편적 헌사가 되길 바란다.
4. 연출의도
한국인에게 김치 없는 밥상을 상상하기란 어렵다. 단순한 먹을거리 이전에 한국인의 문화와 정서를 함축하고 있는 알갱이다.연극 <김치>는 이런 김치를 매개로 엄마의 사랑과 인간의 삶에 관한 보편적 정서를 맛깔스럽게 버무리고 있다.
그래서 김치 담그기라는 작업보다 김치에 담긴 ‘정’과 김치를 둘러싸고 펼쳐지는 ‘사람’에 포커스를 맞추고자 했다.
곰삭은 김치가 시간을 닮아가듯, 무대의 시간도 김치를 닮아간다. 김치와 함께 익어가는 우리 이웃들의 삶,
그 속에서 피어나는 오래된 수채화 같은 이야기를 자분자분하게 그린다.
과거의 시간을 저장하지 않으면 추억은 있을 수 없다.
주 무대인 향숙네 대폿집을 비롯해 나주역, 춘자네 수퍼마킷, 풍년쌀집, 상달네 이발관, 과물조합 등을 배치한 것도 과거를 통해
오늘 우리에게 익숙한 사람 이야기를 민낯 그대로 객석에 전달해보자는 의도다.
5. 시놉시스
1장 속죄(贖罪)
가마솥이 걸린 비좁은 주방, 그리고 둥그런 철제식탁 4개가 눈에 들어온다. 꾀죄죄한 유리창 위에 장기판만한 종이가 붙어 있다. 매직펜으로 대충 써 붙인 메뉴가 단촐하다. 김치죽, 돼지고기, 막걸리.
신문지로 덧댄 누런 벽은 세월이 꽤 흘렀음을 짐작케 한다.
향숙은 벌써 30년째 냄새나는 이 좁은 공간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아니, 떠날 생각이 없는 듯하다. 이발관이며 슈퍼며 과물조합이며 아침부터 해질녘까지 부대끼는 이웃들과 등지기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보다 가슴 깊숙이 야물게 박힌 괭이가 향숙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이 괭이야말로 한(恨)이요 그리움이다.
30년 전 그날, 향숙은 남편과 큰 아들 천석을 잃었다. 남편은 나주역 근처에서 가고배 상자를 사고팔던 장사치였다. 엄마와 김치죽을 먹고 있던 천석은 기적소리가 울리자 용수철처럼 튀어나갔다. 아버지를 모시고 오라는 엄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길로 두 사람 모두 열차사고를 당해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순간 향숙의 가슴엔 괭이가 박혔다. 그날 이후, 향숙은 유독 김치죽을 좋아했던 남편과 자식을 위해 향숙은 하루도 빠짐없이 김치죽을 올린다.
앞치마를 질끈 동여맨 향숙이 아침을 준비하느라 부산하다. 식탁을 훔치고 바닥을 쓴다. 그러더니 검은 가마솥 쪽으로 다가가 모락모락 나는 죽 한 그릇을 정성스럽게 떠서 창문가에 올려놓는다.
라디오에서 ‘봄날은 간다’가 흘러나온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흩날리더라 /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백설희가 불렀던 원곡을 여러 후배들이 뒤이어 불렀는데, 그중 한영애 것이 가장 좋다. 처연한 목소리가 좋다. 곧잘 따라 부르는 향숙.
동네 이발관 주인 상달이 찾아온다. 어릴 적부터 친구다. 상달은 뜬금없이 쇼핑백 하나를 내밀며 방송을 찍자고 조른다. 향숙이 만든 김치와 김치죽을 맛집으로 소개하자면서. 쇼핑백엔 향숙의 방송용 웃옷이 담겨 있다. 상달은 이미 방송국 피디인 조카 정태와 입을 맞춰둔 듯하다.||
2장 작아지는 향숙
그냥 좀 얌전히 사시면 안돼요?
구질구질하게 사시는 걸 그렇게 알리고 싶으세요?
만석은 엄마의 말을 제대로 듣지도 않고 잘라버린다. ‘바쁘니까’라며 전화를 끊어버린다. 오랜만에 에미가 한 전화였을 텐데... 향숙은 한숨만 삼킨다.||
3장 동구와 춘자의 사랑
상달이 등장하자, 두 사람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돈다. 상달을 게슴츠레 쳐다보던 춘자가 ‘나는 오빠만 쳐다보고 있으므는 왜 그렇게 가슴이 띠는지 모르겄어라’ 조잘대며 상달의 품으로 기어든다. 동구 꼭지가 돈다. 자기와 러브샷을 하자고 춘자의 팔을 끈다.
너는 내 인생의 지뢰야, 이 화상아!
그려, 그 지뢰밟고 우리 둘이 함께 동반자살하자.
그러든지 말든지, 상달은 무거운 술잔만 기울인다.||
4장 맛있는 맛집방송
촬영이 시작된다. 예의 감초처럼 등장하는 동구와 춘자. 동구는 자신이 전국노래자랑 인기상 출신이라며 여기저기 끼어들고, 방송에 처음 출연하는 향숙은 반벙어리가 되고, 리포터 진아는 나이트 죽순이와 죽 좋아하는 죽순이 운운하고... 촬영장은 한바탕 난장이 된다.
이것이 바로 저 누님의 피눈물이여.
예전에 남편 잡아묵고 자식도 잡아묵고.
동구의 뜬금포로 30년 전의 과거가 되살아난다. 두 사람의 죽음 뿐 아니다. 아들과 손자의 횡액을 접한 시어머니조차 실성한 채 집을 나간 뒤 지금까지도 소식을 알 수 없다. 천갈래 만갈래 향숙의 가슴은 찢어질 듯 아프다 상달은 동구의 멱살을 잡고, 향숙은 놀라 그릇을 떨어뜨리고 만다.||
5장 김치는 향숙의 눈물
| 향숙과 상달이 술잔을 기울인다. ‘한오백년’을 구슬피 부르던 향숙이 ‘남편 아들 내가 다 잡아 묵었냐?’며 울음을 터뜨린다. 향숙은 상달을 보며 요즘 꿈에서 자꾸 죽은 천석이가 부르더라고 말한다. 씨잘데기 없는 소리라며 안주로 내놓은 김치를 보던 상달이 중얼거린다. ‘이게 김치가 아니라 향숙이 눈물이구만’. |
6장 대박난 향숙네
상달과 오봉이가 실랑이를 벌이는 데 느닷없이 대통령 경호실장이 등장한다. 나주 혁신도시 한전공대 입학식 참석차 들른 VIP가 어릴 적 추억이 떠올라 김치죽을 맛보겠단다. 향숙의 대답은 마찬가지다. NO!
다 팔았다며?
혼자 사는 노인네, 내가 안 챙기면 누가 챙기냐?
모두가 퇴장하자 향숙은 김치죽 한 그릇을 떠와 상달에게 내민다. 감격에 겨운 상달은 쉽게 숟가락을 뜨지 못한다. 이때 둘째 만석과 며느리 해리가 들어온다.||
7장 만석의 압박
김치라면 치를 떠는 해리 아니던가. 어느 해, 둘째 손자를 낳았다는 소식을 들은 향숙은 밤새워 담은 김치를 보자기에 싸서 만석의 집을 두드렸다 미역국. 그러나 홈넷을 통해 시어머니의 추레한 행색을 본 해리가 문조차 열어주지 않았다.
바람이 만져주고 땅이 만져주고.
사람은 그저 아무것도 할 일이 없당께.
향숙은 경비원들에게 김치를 건네고 하릴없이 발길을 돌리고 말았던 기억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그러나 향숙은 씁쓸한 기억을 꾹꾹 누르고 며느리에게 사뭇 진지하다.
식탁에 앉은 세 사람의 대화는 향숙네 대폿집으로 모아진다. 아들과 며느리는 가게를 팔든지 김치죽 체인점을 내자고 은근히 향숙의 맘을 떠본다. 사업에 실패했다는 만석은 ‘죽어버린 아버지와 형이 살아있는 저보다 중요해요?’라며 엄마를 닦달한다. 그 말을 들은 향숙, 뒷목을 잡고 쓰러진다.||
8장 천석아!
기적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천석은 그날처럼 황급히 달려나갔다. 천석아! 천석아! 천석아! 잠이 깬다.
식은 땀을 흘리고 누워있는 향숙의 곁에 상달이 있다.||
9장 글 배우는 향숙
초등학교조차 제대로 나오지 못한 향숙에게 글은 또다른 한이었다. 그러나 죽음을 눈앞에 두고 향숙이가 글을 깨우치려고 욕심을 부리는 것은 분명 무슨 목적이 있었으리라.||
10장 만석아 사랑해!
향숙의 손이 떨어지고, 상달은 미친 듯 울부짖는다. 만석과 아내가 향숙을 붙들며 통곡한다.||
11장 함께 익어가기를
거서도 김치를 담냐잉...향숙아!
하늘이 벌겋네.
왁자지껄한 대폿집. 밖에는 ‘향숙이네’라고 쓰여진 간판이 놓여 있다. 꾀죄죄하던 대폿집은 온데간데 없다. 열 평 남짓의 가게는 운동장만하게 넓어졌고, 주방이며 식탁이며 모조리 근사한 그림을 갖추고 있다.
만석과 해리가 주방을 차지하고, 상달은 서빙에 여념없다. 모든 출연진이 대폿집에 모이면서 시간은 멈춘다.||
6. 등장인물
나향숙(68)
남편과 큰 아들을 사고로 잃은 뒤부터는 말수를 잃었다. 그저 동네 술꾼들의 아픈 술속을 김치죽으로 달래주는 깜냥 외에 멍하니 식탁을 훔치고 바닥을 닦는 일이 하루 일과다. 어릴 적 친구인 이발소 주인 장상달이 그녀의 아픈 속을 달래주려고 생뚱맞은 아양을 부려도 영 돌부처다. 그녀의 유일한 관심은 남편과 큰 아들의 영정 앞에 매일처럼 김치죽을 끓여 올리는 것 뿐.
가요 ‘봄날은 간다’와 ‘한오백년’을 좋아한다. ‘연분홍 치마를 입고 옷고름 씹어 물던’ 시절에 ‘꽃이 피면 같이 울고 꽃이 지면 웃던’ 남편에 대한 그리움과 한을 잊지 못하기 때문일까. 그러나 그런 것마저 내색하지 않는 강단있는 성격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홀아비 장상달의 대시는 은근하면서도 끈질기지만, 향숙은 늘 퉁명스럽다. 그런 향숙의 아킬레스건은 바로 둘째 아들이다. 우리네 엄마가 그렇듯이 향숙도 자식에게만큼은 한없이 작아진다. 둘째 아들 만석에게 누가 될까봐 대박이 예상되는 방송출연을 한사코 마다했고, 자신의 대폿집마저 둘째에게 넘겨주려한 것만 봐도 향숙의 아픈 속내를 짐작할 수 있다.
향숙은 죽음을 앞두고 비로소 상달에게 마음을 연다. 상달이 사준 방송출연용 웃옷을 입고 그의 품안에서 먼 길을 떠난다.||
장상달(67. 이발소 주인)
'법 없이도 사는’ 해면체 같은 사내지만, 향숙을 향한 의리 하나만큼은 똑 부러진다. 서른 무렵에 상처한 뒤 지근거리에 있는 향숙네 대폿집을 제집 드나들 듯하면서 수호천사 역할을 하는 속정깊은 마초이기도 하다.
환갑을 훨씬 넘은 나이에도 빵과 버터만 먹고 산 도시남처럼 말쑥한 상달은 슈퍼마킷 주인 춘자의 타깃이 된다. 고물상을 꾸리고 있는 동구는 이런 춘자가 늘 못마땅하다. 어쨌건 이들의 삼각관계도 아닌, 사각관계는 관객들의 폭소를 만들어내는 양념으로 작용한다.
오직 향숙이밖에 모르는 직진남 상달이 향숙의 방송출연을 채근하며, 새로 사준 웃옷은 깊숙이 흐르는 두 사람의 진한 우정을 상징하고 있다. 죽음을 앞둔 향숙이가 안방 장롱에 무심한 듯 던져놓았던 웃옷을 입혀달라며, 그의 품안에서 삶을 마쳤으니까.
상달의 아가페적인 사랑에도 불구하고, 향숙은 돌아오지 못할 먼 길을 떠나고 만다. 향숙에게 글을 가르치고, 이름없던 가게에 ‘향숙이네’라는 간판을 내건 상달의 가슴에는 깊은 회한과 연민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김천석(향숙의 죽은 큰 아들)
김치죽을 유독 좋아했던 만석은 작품 말미에 엄마의 꿈 속에서 어린 모습으로 환생, 엄마에게 김치죽을 떠주는 장면을 연출해관객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그렇게 죽은 만석이가 동생 천석이에게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될 줄이야.||
김만석(둘째 아들)
엄마와 고향은 만석의 유일한 콤플렉스다. 유달리 명석했던 천석은 고학을 해가면서 서울의 번듯한 대학을 졸업하면서 그 지긋지긋한 가난을 떨쳐버릴 수 있었다. 이어 해리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굴지의 식품회사에 입사하고, 해리와 결혼하면서 엄마와 고향은 아예 남이 되고 말았다. 향숙은 만석의 결혼식에서 철저히 외면당했고, 두 손주의 얼굴조차 알지 못하는 게 당연했다. 방송출연 때문에 만석에게 전화를 한 것도 몇 년만의 일인지 기억조차 흐릿하다. 그러나 향숙에게 만석은 생인손 같은 존재지만, 언제나 깨물어도 아픈 손가락이 아닐 수 없다.
방송을 타고 향숙네 대폿집이 대박을 터뜨리자, 만석은 불쑥 향숙을 찾는다. 장인네 식품회사가 내리막길을 걷자, 그 불똥이 영업총괄본부장인 만석에게 튀면서 자리마져 위태로워졌다. 천석은 향숙의 면전에서 대폿집 처분하고 김치죽 체인점 하자면서 향숙의 등에 비수를 꽂는다.||
박동구(엿장수, 고물상 운영)
돈키호테에게 둘시네아가 있다면 동구에게는 춘자다. ‘내 사랑 춘자야’를 입에 달고 다니는 순정남 동구 역시 향숙네 대폿집의 단골 중 하나다. 춘자로부터 ‘지뢰’니 ‘화상’으로 늘 외면당해도 동구는 ‘일편단심 민들레’다. 춘자만 뜨면 정신줄을 내려놓는 동구는 방송 촬영현장인 향숙네 대폿집에서 전국노래자랑 인기상 수상자라며 천방지축 약방의 감초역할을 충실히 수행해낸다. 물면 놓지 않는 하이에나 같은 근성을 지닌 동구의 승리다. 춘자와 2세 만들기에 성공하면서 해피엔딩을 맞았다.||
조춘자(슈퍼마킷 주인)
요즘 춘자의 심사는 복잡하다. 상달만 보면 눈이 돌아간다. 만날 때마다 ‘그렇게 가심이 띠고, 밤마다 자상스럽게 팔베개도 해주고 안아주고’ 싶어 안달이 난다. 반면 허구헌 날 들이대는 엿장수 동구는 꼴도 보기 싫어 미칠 지경이다.두 남정네를 교통정리하기도 버거운 데 이웃집 향숙 언니까지 춘자의 가슴을 답답하게 한다. 품위 넘치고 음식 잘하는 언니가 부럽다가도, 자신과 같은 과부처지를 생각하면 가슴 한 켠이 아리다. 그러나 자신이 짝사랑하는 상달의 마음을 온통 훔쳐간 언니가 밉다. 막걸리를 마시는 상달의 옆에 그림자처럼 붙어 앉아 향숙에게 ‘그림 좋냐’고 견제구를 날리는 춘자의 심정을 이해할 만하다.버티고 버티던 춘자는 급기야 열 번 찍힌 나무가 되고 만다. '싸가지 없이 못된 것만 배운' 동구의 2세를 임신하면서 긴 방황에 종지부를 찍는다. 감초 코디네이터 춘자의 맹활약을 기대해보시라.||
장정태(방송국 피디)
그런데 이 친구, 삼촌인 장상달의 피와 너무 닮아 있다. 생면부지의 동구와 춘자랑 코가 삐뚤어지게 술을 마시고는 뜬금없이 ‘대학교 연극반 회장 출신’ 운운하더니 꼬꾸라지고 만다.
그러나 정작 촬영에 들어서는 날카로운 연출스킬을 발휘한다. 홀 스케치를 따고 손님 인터뷰를 하는 장면에서는 리포터를 개 닭 잡듯이 몰아친다.||
조진아(리포터)
절제된 방송용어로 무장한 프로 방송인과는 거리가 좀 멀다. ‘저 옛날에 나이트 죽순이었는데 이젠 죽 좋아하는 죽순이 되겠어요’ 배우시절에 애드립깨나 날렸는지, 시도때도 없이 육담멘트를 쏴대 피디의 멘탈을 무너뜨린다. 그래서 한 팀인 장정태 피디에게 무시로 깨진다. 어릴 적부터 김치와 된장을 먹고 자란 한국인일 텐데, 김치죽 탐방이 그리 탐탁지 않은 눈치다. 김치가 비위에 거슬린다며 향숙네 촬영을 꺼린다. 그러나 지난 촬영 때 생간과 천엽을 게눈 감추듯 해치운 이 쌩 내숭쟁이는 김치죽을 두 그릇씩이나 비워내는 기염을 토한다.||나오봉(건달 두목)
초등학교 중퇴가 제대로 된 가방끈 길이. 힘 약한 친구들의 주머니를 털어 롤러장에 다녔던 낡은 추억을 먹고 산다. 제 버릇 개 못준다고 나이가 들어서도 두어 명의 꼬봉들과 ‘오봉이파’라는 간판을 내걸었다. '뭉쳐야 한다’가 조직의 좌우명. 꼬봉들과 술을 먹다가 시비가 붙어 손님의 귀를 물어뜯는 바람에 현행 폭행범으로 6개월 감방신세를 졌다. 출감하자마자 향숙네 김치죽을 먹으러 들렀다가 청와대 경호실장에게 봉변을 당한다.||
천해리(만석 처)
공부보다 클럽을 전전했던 여고시절, 가난한 만석과 과외선생과 제자로 만났다. 이후 만석은 해리집에 데릴사위로 들어앉게 됐고, 식품회사 영업본부장에까지 오르는 성공담을 쓴다. 만석도 만석이지만, 해리의 성격상 시집과 시어머니는 상상 속에서도 없던 그림이었다. 남편의 자리가 흔들리면서 시어머니 향숙네를 찾는다. 손을 내밀면서도 알량한 자존심만은 지켜내려는 성정이 얄밉다.
'이거 팔면 돈 꽤나 된다던데’라면서 시어머니를 닦달하더니, ‘아빠한테 인정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걸 잊지 말아요’라며 남편을 몰아세우는 장면에서는 손톱만한 정나미마저 떨어진다.||
문경호(대통령 경호실장)
| 3성 장군 출신에 태권도 유단자. 동네 건달 오봉이가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덤볐다가 그 위용에 압도돼 나동그라지고 만다. 권위적이지 않아서 좋다. 김치죽이 떨어졌다는 향숙의 말에 홍어집으로 VIP의 행선지를 돌리는 융통성도 뛰어나다. |
그밖에 말래(박동구 딸), 이상식(나오봉 부하), 복어(나오봉 부하), 강피디, 경호원들이 등장한다.
7. 김치 지난공연
| 지난 공연 포스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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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 10. 12~ 14''' | '''2010. 10. 19~ 27''' | '''2011. 11. 27~ 28''' |
| '''2012. 11. 8~ 10''' | '''2013. 05. 03~ 04''' | '''2013. 05. 08~ 12''' |
| 기간 | 공연장소 | 공연시간 |
| 2010. 10. 12~ 14 | 나주문화예술회관 | 19:00 |
| 2010. 10. 19~ 27 | 광주유스퀘어동산아트홀 | 평일 19:30, 토요일 15:00, 19:00 일요일 15:00 |
| 2011. 11. 27~ 28 | 나주문화예술회관 | 19:00 |
| 2012. 11. 08~ 10 | 나주문화예술회관 | 08일 18:30 09~ 10일 15:00, 18:30 |
| 2013. 05. 03~ 04 | 나주문화예술회관 | 03일 19:00 04일 15:00, 18:00 |
| 2013. 05. 08~ 12 | 세종문화회관M씨어터 | 평일 15:00, 18:00 주말 15:00, 19:00 |
| 2013. 08. 14 | 나주문화예술회관[1] | 19:00 |
| 2013. 08. 21 | 순천문화예술회관 대극장 | 16:30, 19:30 |
| 2020. 12. 16 | 나주문화예술회관[2] | 19:00 |
7.1. 초대글
| 모시는 글 성하지절(盛夏之節)입니다. 두루 행복하시기만을 기원드립니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우리네 마음가짐부터 평안해야 합니다. (사)전문예술극단 예인방이 연극 <김치>로 사람과 사람의 행복을 잇대고자 합니다. 김치에는 맛을 넘어 함께 버무려 나누는 귀한 마음까지 담겨있습니다. 이런 김치를 품어 익히는 장독대와 정원은 농익은 우리네 정서가 드러나는 공간입니다. 오는 8월 21일 순천문화예술회관 대극장 무대에서 연극 <김치>를 공연합니다. 또한 이 연극에 앞서 '한국 정원과 장독대'라는 심포지엄도 개최합니다. 마침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가 열리고 있어 특별하게 마련했습니다. 오셔서 매양 드시는 김치처럼 공연도 심포지엄 한 대목도 양껏 맛보십시오. 그리운 사람과 그리운 맛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귀하게 모시겠습니다. 함께 행복하십시다. 2013. 8. (사)전문예술극단예인방 이사장 김진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