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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2-28 18:24:05

김한수(1922)

파일:external/people.phinf.naver.net/yonhapnews_28441788.jpg
金翰壽
1922년 1월 1일 (경상남도 김해군(現 부산광역시 강서구 명지동) ~ 1982년 8월 16일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남동) (향년 60세)
1. 개요2. 일생3. 가계도

1. 개요

대한민국의 前 기업인. 한일그룹경남모직 창업주. 호는 수당(壽堂)이다.

2. 일생

1922년 경상남도 김해군 명지면 동리(現 부산광역시 강서구 명지동)에서 아버지인 김창준과 어머니 변남윤의 2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성호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5세 때 일본으로 유학가 고노하나상업학교를 졸업한 후, 오사카의 일본인 포목점에 취직해서 사업을 배웠다. 1941년 귀국해 부산 동대신동 공설시장에 포목점을 차렸고, 1년 후 점포를 국제시장으로 옮겨 '경남라사'로 개편해 양복지를 팔기 시작했다.

1954년 양복지 수입을 위해 '대경산업'을 세워 기업인 인생을 시작해 1956년 경남모직을 세웠고, 1962년 중앙합성섬유, 1964년 한일합성섬유를 각각 세워 섬유특화 기업집단 한일그룹의 토대를 만들었다. 1970년 동서석유화학 주식을 인수해 화학산업에 진출했고, 1974년 부국증권을 인수하고 1977년 한효개발을 세워 사업 다각화를 시도했다.

그 외에도 1954년 고향 명지면에 '경일중학교'를 세워 육영사업을 시작했고, 1974년에는 '학교법인 한효학원'을 설립했다. 1974년부터 한국소모방협회 회장을, 1977년부터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을 각각 지냈다.

1979년 장남 김중원을 사장으로 앉힌 후, 자신은 회장으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1982년 8월 16일 서울 한남동 자택에서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3. 가계도



[1] 김복동 전 국회의원의 딸.[2] 구두회 전 예스코 명예회장의 장녀. 즉 그 LG 구인회의 조카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