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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22 19:42:30

나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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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세

1. 개요

נקם(Nakam)

히브리어로 복수(Revenge)를 뜻하는 단어다.

홀로코스트에 대한 복수를 위해 홀로코스트 생존 유대인들이 결성한 비밀 결사 단체이기도 하다. 아바 코브너가 이끌었다.

복수를 뜻하는 히브리어 단어 나캄의 이름을 보복조직에 대한 명칭으로 그대로 사용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단체의 목적은 홀로코스트에 대한 복수이며, 나치 독일, 독일인들에 의해 수많은 유대인의 맞이한 죽음을 똑같이 수많은 독일인의 죽음으로 갚겠다는 것이다. 즉 홀로코스트에 직접 관여한 나치 독일의 관리, 군인뿐 아니라 독일인 자체가 이들의 보복 대상이였던 것이다.[1]

2. 상세

“나는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으며 그때의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다” - 요제프 하르마츠, 나캄의 리더(한겨레 21)
나캄의 리더중 1인이였던 요제프 하르마츠의 동기도 동생은 수용소에서 처형당했고 친부는 수용소에서 자살, 친형도 소련군으로 참전해 독소전쟁에서 전사하는등 가족이 나치 독일에 의해 풍비박산이 난 것에 대한 복수심 때문이였다. 결국 하르마츠는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친모와 다른 유대인들이 영국령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하는 것을 도왔지만 자신은 복수를 실행하고자 유럽에 남게된다.

이후 이들은 독일인들의 대규모 죽음을 위해 독일 뉘른베르크의 상수도에 독을 탈 목적으로 비소를 구하다가 영국 경찰에 걸려서 취소되었다. 또한 독일인들이 수감된 수용소에 배급되는 급식용 빵에 독을 넣어 독일인들에 대한 집단 독살을 꾀하기도 했다. 그외에 나치 독일 인사들에 대해 암살도 이뤄졌다.

물론 독일에서도 이들 단체에 대해 알았고 이들의 범죄 행각에 대해 실제 수사도 했지만 나캄의 결성과 범죄행위는 독일 자신들이 한 홀로코스트 만행들에 의한 반발 작용임을 잘 알고 있었고 이것이 공론화 되면 도리어 더 크게 타격을 받는 것은 독일이기에 결국 나캄에 대한 사법 처리는 흐지부지 됐다. 사실 나캄이 결성된 핵심 원인중 하나가 저지른 만행에 비해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에서 처벌받은 독일인들의 숫자가 너무 적고 처벌도 너무 가볍다는 유대인들의 울분 때문이다. 때문에 나캄 조직원들은 기소되지도 않고 모두의 속사정 때문에 나캄의 사건들은 공론화 되지 않고 덮어졌으며 시간이 지나 나캄의 조직원들이 자신들의 과거사를 밝히며 왜 자신들이 이렇게 하였는지 언론들과 인터뷰하기전까진 세상에 드러나지 않게 된다.

프리한 19에서 이에 대한 취재를 하며 씁쓸하게 마지막 말을 말했다.
"한 인간을 살인 병기로 만든 전쟁이 남긴 참혹한 복수. 이것도 참혹한 현실이 아닐까요?" 출처


[1] 학살당한 600만 유대인의 한을 풀기 위해 독일인도 똑같이 600만을 죽이게 맞다고 보았다. 나캄은 전쟁을 수행한 인원 뿐만 아니라 이의 세금과 동조한 독일인 모두가 가해자로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