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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2-03 19:07:48

남양의 난

남양의 난
莊蹻之亂
Rebellion of ZhuangQiao
시기 기원전 287년
장소 초나라령 강동일대
원인 초나라의 지속적인 강동지역 공출[1]로 인한
인민들의 불만 폭발
교전세력 봉기군초楚
지휘관 봉기군 수장 장교초 토벌군 사령관 소어
초 원릉군수 굴위
초 연릉군수†
병력 봉기군 본대 7천
강북봉기군 2천6백

총합 9천6백
초 토벌군 1만5천
초 원릉주둔군 2천8백
초 연릉주둔군 1천5백

총합 약 1만9천3백
피해[2] 봉기군 약 2천7백초군 약 4천2백
결과 토벌군 반란 진압 실패
영향 초조정과 장교와 협상하여 장교를 강동후로 봉작하고
구 월나라 일대[3]를 봉지로 줌 강동후령 형성

1. 개요2. 배경3. 전투의 전개4. 결과5.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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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기원전 4세기, 축록중원(逐鹿中原)은 시작되었다!에 나오는 가공의 반란.

2. 배경

3. 전투의 전개

4. 결과


5. 영향


[1] 지속적인 반란지역인 강동에 대한 견제도 포함되어 있었다.[2] 도주, 와해된 병력등은 제외한 순수 전투손실만 계산.[3] 물길과 가까운 지역과 강북은 제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