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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10-03 13:52:49

누미스트로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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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배경3. 양측의 전력
3.1. 로마군3.2. 카르타고군
4. 전투 경과5. 전투 이후

1. 개요

기원전 210년 한니발 바르카의 카르타고군과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의 로마군이 이탈리아 남부 루카니아의 누미스트로(오늘날 벨라)에서 맞붙은 전투.

2. 배경

기원전 211년, 푸블리우스 술피키우스 갈바 막시무스그나이우스 풀비우스 켄투말루스 막시무스가 새 집정관으로 선임되었다. 원로원은 두 사람이 아풀리아로 진군하여 한니발에 대항하도록 지시했다. 하지만 얼마 후 카푸아 공방전이 성공적으로 끝나면서 이탈리아의 상황이 호전되자, 원로원은 두 집정관 중 한 명이 마케도니아 왕국필리포스 5세에 대항하여 군사 작전을 벌이기로 결의했다. 제비뽑기 결과 갈바가 그 역할을 맡았고, 그는 아풀리아에서 단독 지휘권을 받아 한니발과 대적했다.

켄투말루스는 한니발이 아풀리아 바깥으로 진군하지 못하도록 성공적으로 견제했으며, 기원전 210년 전직 집정관이 된 뒤에도 계속 임무를 수행했다. 그는 현직 집정관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와 함께 각각의 군대를 이끌고 헤르도니아로 향했다. 두 사람은 초기에 살라피아를 공략하고 카르타고 수비대를 섬멸했다. 한니발이 브루티움으로 후퇴하고 있다고 여긴 그들은 계속 추격하여 말모레 시와 멜레 시를 공략하고 카르타고군 3,000명을 포로로 잡았다. 두 도시를 장악함으로써, 그들은 밀 24만 배럴과 보리 10만 배럴을 확보했다.

이에 기세 등등해진 켄투말루스는 단독으로 헤르도니아로 진격했다. 마침 헤르도니아 시민들이 한니발에게 등을 돌렸으며 조만간 로마 편으로 넘어가고 싶어 한다는 정보가 들어왔으니, 곧 그곳을 공략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또한 한니발이 브루티움으로 간 이상 여기로 단시일에 오지 못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것은 오판이었다. 한니발은 첩보를 통해 적의 움직임을 간파하고 헤르도니아에 먼저 들어갔고, 도시 인근에 진을 치고 적이 도착하길 기다렸다. 그리하여 벌어진 2차 헤르도니아 전투에서, 로마군은 참패했고 켄투말루스는 전사했다.

마르켈루스는 살아남은 장병들을 수습한 뒤, 원로원에 편지를 보내 켄투말루스의 전사와 헤르도니아 시민들이 한니발에게 강제 이송된 사실을 알렸다. 그는 한니발과 맞서겠다면서, 칸나이 전투 직후 1차 놀라 공방전, 2차 놀라 공방전, 3차 놀라 공방전에서 한니발을 상대로 승리했던 자신이라면 그를 능히 막을 수 있다고 장담했다. 그는 산니움에서 루카니아로 진군하여 누미스트로 근처 평지에 진영을 세워서, 바로 앞 언덕에 주둔한 한니발과 대치했다.

3. 양측의 전력

3.1. 로마군

3.2. 카르타고군

4. 전투 경과

마르켈루스는 일전에 동료가 참패하고 목숨을 잃었지만 절대로 두렵지 않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군대의 선두에서 전장으로 향했다. 한니발은 적진에서 로마의 휘장이 나오는 걸 보고 자신의 군대 역시 카르타고의 휘장을 내세우라고 명령했다. 한니발은 우익 부대를 언덕의 경사면에 배치했고, 로마군은 누미스트로 시를 좌익의 기준점으로 사용했다.

이윽고 한니발의 군대가 언덕에서 진격하고 마르켈루스의 로마군이 응전하는 방식으로 전투가 개시되었다. 전투는 오전 부터 밤까지 지속되었고, 도중에 지친 병사들을 후방의 군대와 교대하여 재차 맞붙었다. 그러나 좀처럼 승패가 판가름나지 않다가, 날이 완전히 어두워져서 앞을 분간하지 못하게 되자 양측 모두 진지로 철수했다.

5. 전투 이후

다음날 새벽, 로마군은 전사자의 유해를 한 곳에 모아서 불태웠다. 한니발은 마르켈루스를 피해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로 마음먹고, 장병들에게 완전한 침묵 속에서 진영을 떠나 아풀리아로 떠나게 했다. 날이 밝아서야 적이 사라졌다는 걸 알게 된 마르켈루스는 부상자들을 누미스트로 시에 남겨두고 카르타고군을 추격했다.

양군은 아스콜리에서 조우하여 재차 맞붙었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한니발은 밤에 재차 철수해 아풀리아에 도착했다. 이후 겨울이 찾아오자 양측 모두 아풀리아에서 겨울 숙영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