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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기원전 212년, 한니발 바르카가 이끄는 카르타고군이 이탈리아 남부 아풀리아 지방의 대도시 타렌툼(오늘날 타란토)을 기습 공략한 전투.2. 배경
기원전 216년 8월 2일 칸나이 전투에서 로마군을 섬멸한 뒤, 한니발 바르카는 이탈리아 남부의 그리스 도시국가들이 로마와 동맹을 끊고 자신과 손을 잡게 하고자 온 힘을 기울였다. 이에 이탈리아에서 로마 다음가는 도시로 명망 높던 카푸아를 비롯한 여러 도시들이 그와 손을 잡았다. 아풀리아 지방의 강력한 도시였던 타렌툼은 당장 한니발의 편을 들지 않았지만, 많은 시민이 한니발에게 귀순하고 싶어 했다.기원전 214년 여름 한니발이 아베르노 호수에 있을 때, 몇몇 타렌툼 젊은이들이 찾아와서 자신들을 로마로부터 해방시켜달라고 청했다. 한니발은 이들을 칭찬하면서, 적절한 시기에 개입할 테니 집으로 돌아가 호응할 준비를 하라고 권했다. 그는 타렌툼이 이탈리아 남부의 부유하고 영향력 높은 도시인 점을 눈여겨봤고, 그들이 자신의 편에 든다면 필리포스 5세의 마케도니아군이 타렌툼에 상륙하여 자신과 합세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3차 놀라 공방전을 소득없이 끝낸 뒤, 한니발은 타렌툼으로 진군하면서 주변 일대를 모조리 약탈했다. 하지만 타렌툼 영지에 들어온 뒤에는 어떠한 약탈도 하지 않았고, 그곳 주민들에게 무척 친절하게 대해, 그들의 지지를 받고자 노력했다. 그는 도시에서 약 1,000보(1.5km) 떨어진 곳에 숙영지를 세우고 타렌툼 시민들이 호응하길 기다렸다. 한편, 브룬디시움의 로마 해군 사령관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라이비누스는 마르쿠스 리비우스 마르카투스를 타렌툼으로 보내 그곳을 지키게 했다. 한니발은 로마군이 이미 타렌툼에 들어와 농성하고 있는 걸 목격하고, 일단 타렌툼을 끝까지 약탈하지 않은 채 그곳을 떠났다. 그는 살라피아에서 겨울 숙영에 들어가는 한편, 누미디아인들과 마우리족을 보내 주변 일대를 약탈하여 식량과 마초를 마련하게 했다.
한니발이 다른 곳은 신나게 약탈하면서 유독 타렌툼에게만 그러지 않자, 로마인들은 타렌툼이 한니발과 내통하고 있다고 의심했다. 그들은 타렌툼의 가장 고귀한 자들로부터 일부 인질을 받아내기로 했다. 그러나 인질들은 친 카르타고 성향의 동료 시민인 필레아의 선동으로 로마에서 달아났다가 테라시나 인근에서 체포된 뒤 채찍을 맞은 후 타르피안 절벽에서 던져졌다. 이에 분노한 타렌툼 시민들은 몰래 도시를 떠나 한니발의 진영으로 들어갔다. 폴리비오스에 따르면, 그들의 대표는 니코와 필렌메누스였다고 한다. 두 사람은 한니발에게 지금 당장 타렌툼으로 와서 로마군을 소탕해달라고 요청했고, 한니발은 그들을 칭찬하면서 소 떼를 가지고 도시로 돌아가서 시민들을 설득하라고 권했다. 또한 자신은 타렌툼에게서 세금이나 병력을 받아내지 않을 것이며, 그들의 일에 어떠한 간섭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두 사람은 그 대신 한니발이 로마인들의 집과 숙소를 약탈하는 걸 허용했다.
도시로 돌아온 니코와 필렌메누스는 로마 수비대 지휘관 마르쿠스 리비우스 마르카투스를 연회에 초대해 경계심을 누그러뜨리려 애썼다. 한편 한니발은 로마군이 자신이 한 곳에 너무 오래 머무르는 걸 의심하는 걸 피하기 위해 병에 걸렸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그런 후 가장 용감한 보병과 기병 10,000명을 선발해 도시 공략에 투입하기로 하고, 사전에 누미디아 기병 50기를 파견해 타렌툼 주변의 농가를 약탈하고 보이는 농부는 닥치는 대로 죽이라고 지시했다. 이는 로마 수비대와 타렌툼 시민들이 누미디아 기병만 주목하여 자신의 움직임을 눈치채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과연 마르카투스는 누미디아 기병 50기가 설치고 있다는 정보가 들어오자 소규모 기병대를 보내 그들을 몰아내게 할 뿐 별다른 경계를 하지 않았다. 이렇게 모든 준비를 마친 뒤, 한니발은 본격적으로 타렌툼 공략에 착수했다.
3. 전투 경과
누미디아 기병 50기의 활약으로 적의 어떠한 경계도 사지 않고 타렌툼 인근에 도착한 한니발과 1만 장병들은 밤이 될 때까지 인근 숲에 매복했다. 니코와 필렌메누스가 야밤을 틈타 탑을 지키는 보초병들을 죽이고 사전에 약속한 대로 아폴로 히아신스의 신전에 불을 피우자, 한니발은 곧바로 성문 쪽으로 접근했다. 두 사람이 성문을 열자, 한니발은 보병대를 먼저 투입시키고 기병대는 밖에서 대기하면서 적의 출현에 대비하게 했다. 그는 골목 길을 따라가 아고라로 향했고, 필렌메누스에게 수천 명의 카르타고인들과 함께 들것에 실려 있는 거대한 멧돼지를 데리고 아고라 인근 성문으로 접근하라고 명령했다. 여느 때처럼 필렌메누스가 휘파람을 불자, 보초병은 그가 가지고 온 멧돼지를 보고 "사냥하고 돌아온 모양이다."라고 생각하고 별 의심없이 성문을 열었다. 그는 보초병과 마주치자마자 죽여버렸고, 뒤에 숨어있던 리비아인들이 일제히 아고라로 쳐들어갔다.이리하여 아고라를 장악한 뒤, 한니발은 2,000명의 켈트인을 세 부대로 나누어 니코와 필렌메누스의 안내를 받으며 도시 전체로 파견했다. 이때 그는 "로마인은 죽이되, 이곳 주민들은 절대로 죽이지 마라"라고 명령했다. 이리하여 많은 로마 장병이 잠을 자던 중 살해됐는데, 나중에서야 침입자가 들어왔다는 걸 알게된 장병들이 고함을 지르자, 갑작스러운 소란에 놀라 일어난 주민들 역시 난데없는 침입자에 경악하여 소리질렀다. 그때서야 침입자가 나타났다는 걸 알게 된 마르카투스는 가족과 함께 집을 나와 항구로 이어지는 도시의 출구로 달아났다. 그는 가족과 함께 배를 타고 수비대가 피신한 인근 요새로 향했다. 한편 로마인들에게서 나팔을 훔친 필렌메누스와 그의 동료들은 나팔을 불었다. 아직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한 로마 병사들이 무의식적으로 나팔 소리가 불린 쪽으로 향했다가 카르타고인이나 켈트인에게 살해되었다.
타렌툼 시민들은 처음에는 이 소란이 로마인의 책략이라고 믿었지만, 침략군의 복장을 보고 나서야 그들이 한니발의 부하들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한니발이 그들에게 어떠한 해코지도 하지 않았기에, 그들은 곧 침착해졌다. 이윽고 해가 뜨자, 한니발은 아고라 한 가운데에 군대를 집결했고, 시민 전체를 불러들인 뒤, 자신은 로마의 압제로부터 그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여기에 왔다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니코와 필렌메누스와 맺었던 약속을 그들에게 밝혔고, 시민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했다. 한니발은 뒤이어 각자의 문에 '타렌토 출신'이라고 쓰고 그 옆에 이름을 적으라고 명령했고, 로마인의 문에 그걸 쓴 자는 누구든지 사형에 처할 거라고 덧붙였다. 그의 부하들은 이름이 적히지 않은 집을 샅샅이 수색하여 재물을 약탈했다.
다음날, 한니발은 로마군이 피신한 요새를 공격했지만, 그 요새가 삼면이 바다를 면한 절벽이고 육지로 이어진 한 면엔 해자가 파져 있는 천혜의 방어 기지였던 터라 함락시키지 못했다. 그는 로마군이 요새 바깥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참호를 파고 외벽을 설치하기로 했다. 이걸 본 로마군이 요새 밖으로 나와 카르타고군과 맞붙었으나 패배를 면치 못하고 요새로 피신했다. 그중 상당수는 카르타고군의 추격을 받아 해자에 떨어져 사망했다. 이후 참호와 외벽 공사가 완료되면서, 타렌툼은 한니발의 도움 없이도 로마 수비대로부터 버틸 수 있게 되었다. 한니발은 주민들에게 로마 수비대가 식량 공급을 받지 못하도록 봉쇄를 철저히 하라고 지시한 뒤, 일부 병력을 남겨둬서 도시를 지키게 하고 자신은 나머지 병력을 이끌고 본진으로 귀환하려 했다.
그러나 타렌툼 주위의 로마 해군이 곧장 타렌툼의 항구를 봉쇄하여 타렌툼 함대가 외해로 나가지 못하게 하는 한편 성채에 꾸준한 병사와 식량을 보급했다. 이 사실을 전해들은 한니발은 타렌툼 함선을 큰 마차에 실어 외해로 운송하게 해 로마 함대의 봉쇄를 회피하게 했다. 이후 타렌툼 함대는 로마 함대를 격퇴하고 요새를 바다와 육지 모두 봉쇄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일이 잘 되었다고 판단하고 본진으로 귀환했다. 타렌툼이 카푸아처럼 한니발과 합세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앞서 타렌툼과 함께 로마에 인질을 보냈다가 그들과 함께 피살되었다는 소식에 분노하고 있던 투리이 시가 뒤를 이어 한니발에게 가담했다.
이제 한니발의 계획은 성공하는 듯했으나, 그가 로마군이 카푸아를 포위 공격하는 걸(카푸아 공방전) 격퇴하러 간 동안 타렌툼 시민들이 봉쇄를 게을리 하는 바람에 요새에 갇힌 로마 수비대가 식량을 계속 보급받을 수 있었다. 게다가 필리포스 5세는 로마에 가담한 아이톨리아 동맹, 페르가몬 왕국, 스파르타, 엘리스, 메시네 등의 공세로 인해 이탈리아에 상륙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 후 기원전 209년, 로마는 한니발에게 귀순한 타렌툼을 응징하고자 대대적인 공세에 착수한다.(2차 타렌툼 공방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