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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52301><colcolor=#ffffff> 리투아니아 대공국 6대 대공 다우만타스 Daumantas | |
출생 | 미상 리투아니아 대공국 |
사망 | 1285년 리투아니아 대공국 |
재위 | 리투아니아 대공국 대공 |
1282년 ~ 1285년 | |
아버지 | 비트? |
종교 | 발트 신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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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리투아니아 대공국의 6대 대공.2. 생애
트라이데니스의 기원은 확실하지 않다. 16세기에 작성된 벨라루스-리투아니아 연대기인 <볼호비츠 연대기>에 따르면, 그는 폴로츠크 공작 비트의 아들로, 일찍이 아버지 및 형제들과 함께 루스군에게 사로잡힌 뒤 콘스탄티노폴리스에 팔려갔다가, 아랍 전선에 투입된 뒤 뛰어난 활약을 선보여 황제의 칭찬을 받았다. 이후 아버지와 함께 리투아니아로 돌아간 뒤 아버지가 마련한 영지에서 살았다고 한다. 하지만 현대 학자들은 이 기록은 신빙성이 없다고 간주한다. 또한 볼호비츠 연대기에 따르면, 1269년 리투아니아 대공이 되어 1282년까지 통치한 트라이데니스는 그의 형제라고 한다.비호베츠 연대기에 따르면, 트라이데니스는 자신의 형제 나리문트의 아내가 자신의 영역에 방문하자 강제로 자신의 아내로 데려갔다. 이에 나리문트와 다우만타스 등은 트라이데니스를 타도하기로 마음먹고, 6명의 전사를 사주해 트라이데니스를 살해했다. 그 후 다우만타스가 리투아니아 대공에 선임되었지만, 수도원에 있던 트라이데니스의 아들 리만트(Rymant) 또는 라브리시(Lavrish)에 의해 피살되었고, 리투아니아의 권력은 부티게이디스와 부트비다스 형제에게 넘어갔다고 한다.
반면 성 세르지오의 삼위일체 수도원에 보관되었다가 1812년 모스크바에 입성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황제에 맞서고자 주민들이 도시에 불을 지르는 바람에 사멸된 연대기에서 부분적으로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다우만타스는 1285년 트베리의 주교 시므온의 영지를 공격해 볼로스트를 파괴했다가 모스크바, 트베리, 토르조크, 볼로콤람스크, 드미트로프, 주브조프, 르제프 연합군의 요격으로 전사했다고 한다. 모스크바의 새 예루살렘 부활 수도원에 보관된 연대기에 따르면, 그는 전사한 게 아니라 사로잡혔다고 한다.
한편, 일부 연대기에는 다우만타스가 전혀 언급되지 않았고 트라이데니스 사후 부티게이디스와 부트비다스 형제가 바로 집권했다고 적혀 있다. 이렇듯 기록이 중구난방인데다 워낙 희소하기 때문에, 학계에서는 현재까지 그의 치세에 대해 합의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