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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5-20 02:08:36

다케치 즈이잔

다케치 한페이타에서 넘어옴
1. 개요2. 생애3. 대중 매체
3.1. 영화3.2. TV드라마3.3. 문학/서브컬처


파일:200px-Takechi_Zuizan.jpg[1]

1. 개요

武市瑞山
(1829년 10월 24일 ~ 1865년 7월 3일)

일본 막부 말기에 활약한 무사로 약 200명으로 구성된 존황양이 결사단체 도사 근왕당(土佐勤王黨)을 이끌던 수장이다.

이타가키 다이스케와는 친척이며 사카모토 료마와는 먼 친척이다. 료마보다 6살 연상인데 각종 창작물에서는 어린 시절부터 료마와 친구였다가 사상 차이로 갈라지는 묘사가 자주 나온다. 히토키리로 유명한 오카다 이조와도 함께 검술을 수행한 적이 있다.

즈이잔은 호고 이름은 오타테([ruby(小,ruby=を)][ruby(盾,ruby=たて)])고 통칭은 한페이타(半平太)로 이쪽 이름으로 알고 있는 사람도 많은 편이다.

2. 생애

즈이잔이 속한 도사 번의 번주 야마우치 요도는 14대 쇼군으로 히토츠바시 요시노부를 옹립하고자 하는 히토츠바시파에 속했고, 히토츠바시파에 대항하는 난키파의 수장 이이 나오스케에게 탄압받았다. 그 영향으로 즈이잔을 포함한 도사 번사들의 여론은 반막부 쪽으로 기울었고, 즈이잔은 에도에서 만난 조슈 번사이자 요시다 쇼인의 필두제자 쿠사카 겐즈이, 사쓰마 번 무사들과 교류하며 열렬한 존황양이파가 되었다. 즈이잔은 1861년 8월 에도의 도사 번저에서 동료 8명과 함께 도사 근왕당을 결성하였고, 9월에는 도사로 돌아가 사카모토 료마, 나가오카 신타로 등 수많은 하급 무사들을 끌어들여 도사 근왕당은 200명이 넘는 거대 세력이 되었다.

하지만 야마우치 요도는 자신이 신뢰하는 가신 요시다 도요에게 번정의 실권을 맡기고 있었고, 요도든 도요든 정치적 성향은 개항 지지, 공무합체파에 가까웠다. 요시다 도요는 사쓰마, 조슈 등 다른 번과 결탁해서 막부를 무력으로 타도하자는 즈이잔과 도사 근왕당의 노선을 지나치게 비현실적인 것으로 일축했다. 사쓰마와 특히 조슈는 세키가하라부터 서군에 서는 등 도쿠가와 가문과 좋은 사이가 아니었지만 도사 번주 야마우치 가문은 초대 번주 야마우치 가즈토요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도사 번을 받은 것으로 시작되었기에 막부는 오히려 은인에 가까웠다.

결국 즈이잔은 1862년 4월 자신이 이끄는 도사 근왕당의 사람들을 시켜서[2] 공무합체파였던 고관 요시다 도요를 암살해 버렸다. 사카모토 료마는 요시다 암살 2주쯤 전 탈번했는데, 즈이잔과의 의견 차이가 영향을 주었을 수 있다. 한편 교토에서는 양이파가 세력을 잡으면서 1862년 8월 교토의 황궁 경비에 도사 번이 포함되었고 즈이잔과 근왕당 또한 상경하여 경비를 맡았다. 이 과정에서 과거 양이파를 탄압했던 이들에 대한 복수(천주, 天誅)를 자행하여 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이 때 활약한 이가 바로 오카다 이조이다.

바로 다음 해인 1863년이 되자, 전 번주 야마우치 요도는 마침내 막부로부터 도사로 돌아갈 허가를 받았다. 요도는 안 그래도 즈이잔 일파가 번정을 좌지우지하는 것과 심복 요시다 도요가 암살된 것에 분노하고 있었기에 즈이잔과 양이파를 숙청할 기회를 벼르고 있었다. 1863년 8월 18일의 정변으로 공무합체파 사쓰마, 아이즈가 조슈 세력을 교토에서 몰아내면서 도사 번 또한 공무합체파로 전향했고, 즈이잔과 그 일파는 투옥되었다. 즈이잔은 일단 상급 무사에 속했기에 그나마 대우가 나았지만 부하들은 가혹한 고문에 시달렸다. 즈이잔은 요시다 도요 암살에 관여했다는 것을 계속 부정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주군 야마우치 요도의 명으로 1865년에 할복으로 사망한다. 이때 남자의 기개를 보여주겠다며 할복에 반드시 붙어야 하는 인원인 카이샤쿠를 거부하고선 그 자리에서 석 삼자로 할복을 하고서 사세구를 남기고 죽었다고 한다. 이런 점 때문인지 대중매체에선 상남자로 여기는 묘사가 있는 편.

3. 대중 매체

3.1. 영화

3.2. TV드라마

3.3. 문학/서브컬처



[1] 원치 원년(1864년) 여름에 그린 자화상으로 위에 스스로 쓴 오언절구가 있는데 '花依淸香愛 人以仁義榮 幽囚何可耻 只有赤心明(화의청향애 인이인의영 유수하가치 지유적심명)'으로 '꽃은 맑은 향기에 지여서 사랑받고 사람은 어짊과 옳음으로 번영하니 갇혔음이 어찌 부끄러울 수 있는가 다만 붉은 마음을 가져서 밝힌다.'는 뜻이다.[2] 총 3명이라고 하는데 나스 신고, 다카미 야이치, 야스오가 가스케 이렇게 3명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