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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29 20:38:28

오카다 이조



1. 개요2. 생애3. 대중매체에서의 등장
3.1. 영화3.2. 드라마3.3. 소설3.4. 만화 및 게임
4. 기타

1. 개요

岡田 以蔵
(1838년 1월 20일(음력) / 2월 14일(양력) ~ 1865년 윤5월 11일(음력) / 7월 3일(양력))

일본 에도 시대 토사 번 출신 무사. 막부말 4대 히토키리(人斬り)[1] 중 한 사람. 정식 명칭은 오카다 이조 요시후루(岡田以蔵宣振).[2]

2. 생애

토사(土佐)[3]의 향사(郷士)[4]였던 오카다 기헤이의 장남으로 태어나나, 부친 기헤이가 성벽 밖으로 이동해 아시가루로서 병역에 복무, 그 후 이조도 이 아시가루의 신분을 물려받는다.

16살에 토사 번의 하급무사 그룹의 리더역이었던 다케치 한페이타의 검술 도장에 입문, 그 실력을 인정 받아 한페이타와 함께 1856년, 에도의 경심명지류의 검술을 창시한 모모노이의 도장에 입문. 얼마 뒤 전수를 받을 수 있게 된다. 잠시 토사로 돌아오지만 다시 검술수행을 위해 다케치 한페이타를 따라 1860년 8월부터 시코쿠, 주고쿠, 규슈 각지를 돌았다고 한다.

다음해 1861년에 한페이타는 존황양이 운동의 결사단체 토사 근왕당을 결성. 이조도 가맹했으나, 무언가의 이유로 명부에서는 삭제되어 있다. 혈맹자 가운데에는 이조의 이름이 아닌 동생 케이키치의 이름이 남겨져있다.[5]

1862년, 존황양이 운동이 가장 절정에 달했던 시기로, 개국파였던 토사의 고위관리 실질적 정치의 수뇌였던 요시다 토요가 암살되고, 토사근왕당이 정치의 실권을 쥔다. 바로 이때 토사 번주 야마우치 요도의 교토행에 한페이타와 함께 경호역으로 이조도 동행했다.

이조가 최초로 사람을 벤 것은 교토 상경 도중 오사카에서 요시다 토요 암살의 하수인을 쫓고 있던 토사의 하급경관인 이노우에 사이치로라고 알려져있다.

이후, 이조는 교토를 무대로 한페이타의 지시에 의해 어둠속에서 활약하며 "살인자 이조"라는 별칭으로 주위를 공포에 떨게했다. 워낙 드라마틱한 삶을 살다 가서인지 수많은 창작자들의 창작의욕을 자극하여 수많은 소설과 영화의 모티브가 되었다.

그렇다고 무협지처럼 수십, 수백명을 베어 죽인 건 아니고 이 사람한테 살해된 피해자는 많이 잡아봐야 십여명 정도다. 혼자 암살을 한 게 아니라 다른 동료들과 함께 암살을 실행한 적도 있기 때문에 이 사람이 관여한 암살사건의 사망자라고 반드시 이조에게 살해된 건 아니기 때문이다.

이조가 베었던 인물들은 이노우네 외에도 혼마 세이치로, 우고 겐바노카미, 마시라노 분키치, 와타나베 긴자부로・오가와라 주조・모리 마고로쿠・우에다 스케노조(교토마치 부교소의 하급 무사들), 이케우치 다이가쿠, 다다 다테와키 등이라고 한다. 이 암살들은 전부 1862년 여름부터 다음해 초까지의 일로, 동시에 교토를 무대로 한 텐주(천벌)이라고 하는 존황양이파를 탄압하던 인물에 대해 보복 암살이 횡행했던 시대이기도 했다.

1863년 가을, '8월 18일의 정변'으로 교토에서 존황양이파가 추방당하는 사건이 일어나고 한페이타 근왕당 일당이 토사로 돌려보내져, 체포・투옥되어있던 중, 이조는 같은 해 겨울에 강도용의로 교토마치 부교소에 포박되기 전까지 교토에 잠복해 있었다.

1864년 6월경, 토사의 무숙자 테츠조란 이름으로 범죄자로서 문신이 새겨진 채 교토에서 추방된 이조는, 즉시 토사의 하급 관리들에게 잡혀 토사로 압송된다. 투옥 당한 뒤 이조에 대한 혹독한 고문이 시작되자 한페이타를 비롯한 관련자들이 사식에 독약을 섞어 암살을 시도했다. 이조가 고문을 못 견디고 실토할 것을 우려한 암살시도였으나 독을 먹고도 죽지는 못하고 추하게 설사만 계속 했다고 한다. 결국 모든 것을 자백하고 1865년 5월 11일에 참수, 그 머리가 옥문 위에 내걸렸다. 향년 27세.

생을 마감하며 남긴 사세구는 「당신을 위해 진력했던 마음은 물거품. 사라져 버린 후에는 맑게 개인 하늘」.

3. 대중매체에서의 등장

3.1. 영화

3.2. 드라마

3.3. 소설

3.4. 만화 및 게임

4. 기타

서브컬쳐에서 다루어졌던거와는 달리 의외로 총을 소유했었다고 한다.[6] 대하드라마 료마전의 극이 종료된 후 나오는 다큐에서 나온 바로 그 권총은 현대에도 전해져 내려오고 있고 전시되어있다고 한다.

가쓰 가이슈존 만지로의 호위무사였다.
[1] 나머지 세명은 나카무라 한지로, 다나카 신베에, 카와카미 겐사이.[2] 요시후루는 이조의 속명(俗名).[3] 현재의 고치 현[4] 토착 무사[5] 케이키치는 향사였던 오카다가(家)를 이어 킨노당의 무사로서 활동했으나 막부 말기 이후에도 살아남았다.[6] 이는 세간에 알려진것과는 달리 무역을 통해 서구의 무기를 받아들인 신선조와 비슷하다. 막부 말 검 하나로 살다 간 이미지는 팩트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