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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f><colbgcolor=#2531a2> 興遼國 君主 흥료국 군주 | ||
연호 | 천경(天慶) / 천흥(天興) | |
성씨 | 대(大) | |
이름 | 연림(延琳) | |
생몰연도 | 음력 | ? ~ ? |
재위기간 | 음력 | 1029년 8월 3일 ~ 1030년 8월(1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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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발해부흥운동의 국가 중 하나인 흥료국의 건국군주이다.2. 상세
대조영의 7대손이다.[1] 형제로는 흥료국 태사(太師) 대연정이 있었다.대연림은 요나라의 동경(東京) 사리군(舍利軍) 상온(詳隱)으로 있었다. 요나라의 발해인 차별대우가 심해지자 봉기하여 민중의 호응을 얻었다.
1029년 흥료국(興遼國)을 건국하고 연호를 천경(天慶)이라 하였다.[2] 1년 동안 5번이나 고려의 현종에게 사신과 표문(表文)을 바쳤다.
1030년 요의 공격으로 붙잡혔고 흥료국은 멸망하였다. 이후의 기록은 전해지지 않는다.
3. 기타
발해 왕계는 선왕 기점으로 대야발계에게 넘어갔기 때문에 왕위와는 거리가 먼 방계일 가능성이 높다. 대문예, 대도리행, 대능신 등이 후보가 될 수 있다.대연림이 흥료국의 군주로서 칭제했는지는 불명확하다. 다만 연호를 세우거나 태사(太師) 직위를 내리는 등 천자국의 제도를 사용한 것은 명확하다.
대조영의 7대손임에도 나이 차이가 300년을 넘는다. 당시 1세대가 평균 40년에서 50년임을 고려하면 매우 이례적인 까닭에 몇몇 학자들은 당시 기록 과정에서 11세손을 7세손으로 오기한 것이라고 주장한다.[3]
[1] 발해왕계 기준으로 알려진 5대손이 정왕, 희왕의 아들인 대연진, 대정준까지이며 이들의 등장시기가 810년대이다. 즉 대연림은 이들의 손자뻘이고 할아버지끼리 최대 10촌 이내일 정도로 가까운데도 200년이나 늦은 것.[2] 고려사엔 천흥(天興)으로 나온다.[3] 당시 한자쓰기가 세로쓰기였던 것을 고려하면 '열 십' 한자와 '한 일' 한자가 편찬과정에서 띄어쓰기 없이 쓰이다 보니 붙어버렸을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