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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06 23:14:46

데이비드 필립 베터

데이비드 필립 베터 | David Phillip Vetter
파일:데이비드베터.jpg
이름 데이비드 필립 베터
출생 1971년 9월 21일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
사망 1984년 2월 22일 (향년 11세)
미국 텍사스주 도빈

1. 개요2. 가족과 출생3. 거품 속의 삶4. 사망5. 여담6. 영화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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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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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역 체계를 극적으로 약화시키는 유전성 질환인 중증복합면역결핍증(SCID)을 앓고 있던 미국 소년.

중증복합면역결핍증을 앓은 사람은 면역계에 심각한 장애가 있어 감염에 매우 취약하며, 일반적으로 무해한 병원체에 노출되어도 치명적일 수 있다. 조혈모세포에 문제가 생겨서 발생한 질환이기에 치료 방법은 오직 조혈모세포 이식 뿐이다. 하지만 HLA 항원이 일치해야 하기 때문에 HLA 항원이 일치하는 기증자를 찾는게 어렵다.

언론에서는 SCID 때문에 사용되는 복잡한 밀폐 시스템을 언급하면서 "거품 소년 데이비드"라고 불렀다. 베터의 성인 베터는 가족의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사망한 지 10년이 지나서야 일반에 공개되다. 즉, 생전에는 데이비드 필립으로 불리었다.

2. 가족과 출생

베터의 부모님은 캐롤 앤과 데이비드 조셉 베터 주니어. 첫째 아들인 데이비드 조셉 3세가 SCID를 가지고 태어나 생후 7개월에 이미 사망했는데, 의사는 베터 부부에게 다음 자녀가 이 질병을 물려받을 확률이 50%라고 조언했음에도 다시 딸과 아들을 낳았다. 그렇게 태어난 셋째 아들이 데이비드. 당시 SCID로 태어난 어린이가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관리 방법은 조혈모세포 이식을 받기 전까지 멸균 환경에서 격리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베터가 태어날 때 특수 멸균 침대를 준비했고, 어머니의 자궁에서 꺼낸 직후부터 데이비드는 평생 동안 자신의 집이 될 플라스틱 무균 환경에 들어갔다. 베터는 거품에 들어간 후 신부님에게 살균된 성수 세례를 받았다. 이후 조혈모세포 이식을 받기 위해 조혈모세포를 기증해줄 사람을 찾아야 하기에 베터의 누나 캐서린은 조혈모세포 기증을 자처했으나 HLA 항원이 일치하지 않아 실패했다.

3. 거품 속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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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터는 면역력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지라 일반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 병원체라도 치명적일 수 있기에 무균실에서만 생활하였고 물, 공기. 음식, 기저귀, 옷 등은 무균실에 들어가기 전에 멸균 과정을 거쳤다. 물품은 에틸렌 가스로 채워진 챔버에서 섭씨 60도로 4시간 동안 살균한 다음, 다시 1~7일 동안 통기한 후 무균실에 반입했다고.

무균실에 들어간 데이비드는 벽에 부착된 특수 플라스틱 장갑을 통해서만 만져졌고, 무균실에 산소를 공급하는 압축기가 너무 시끄러워서 데이비드와의 소통이 어려웠다고 한다. 존 몽고메리 박사를 포함한 의료팀은 그에게 공식적인 교육, 텔레비전과 놀이방을 설치하는 등 가능한 한 평범한 삶을 제공하려고 노력했다. 베터가 태어난 지 약 3년 후, 치료팀은 텍사스 콘로에 있는 부모님 집에 무균실과 이송실을 추가로 건설하여 베터가 2~3주 동안 집에서 누나,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했다. 한 친구가 지역 극장에서 '제다이의 귀환' 특별 상영회를 준비하여 데이비드가 자신의 이동식 무균실에서 영화를 관람할 수 있도록 했다.

데이비드는 네 살 때, 실수로 방 안에 놓아둔 링거 바늘을 사용하여 벽에 구멍을 뚫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때부터 치료팀은 아이에게 세균이 무엇이며 세균이 그에게 어떤 위협이 되는지 설명했다고 한다. 나이가 들면서 그는 자신의 방 밖의 세상을 알게 되었고 병원 창문 밖과 텔레비전을 좋아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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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NASA의 연구원들이 데이비드의 소식을 듣고 우주복 제작 경험을 바탕으로, 거품에서 벗어나 외부 세계를 걸을 수 있는 특수 수트를 개발했다. 이 옷은 2.5m 길이의 천 튜브를 통해 그의 풍선에 연결되어 번거롭지만 심각한 오염 위험 없이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데이비드는 처음에 입기 싫어했지만 나중에는 6번 정도 착용하고 돌아다닌 적도 있다.

4. 사망

데이비드의 치료에 약 130만 달러가 지출되었지만 진정한 치료법을 도출하는 데 실패했으며 유일한 치료법인 조혈모세포 이식도 HLA 항원이 일치된 기증자를 찾지 못해 실행되지 못하고 있었는데 결국 누나 캐서린의 조혈모세포로 이식받게 되었다. 이식 후 거부반응이 발생하지 않았으나 엡스타인-바 바이러스에 감염되었고 1984년 2월 22일 12세의 나이에 림프종으로 사망했다. 부검 결과, 나 캐서린의 골수에는 이식 전 검사에서는 검출되지 않았던 엡스타인-바 바이러스의 흔적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전세계의 대다수 사람들은 엡스타인-바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있었기에 감염되지 않는 기증자를 찾는게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엡스타인-바 바이러스는 상피세포와 B세포를 우선적으로 감염시키며 이후 면역계에 의해 처리되지만 B세포에 Latent State의 EBV 유전체(Circular Extra-Chromosomal Plasmid)를 남겨놓기 때문에 평생 동안 감염 상태가 지속된다. 이렇게 B세포에 잠복 중인 EBV 유전체가 나중에 면역계가 약해졌을 때 활성화되어 바이러스를 생산하게 된다.

데이비드의 경우 세상에 나오자마자 바로 무균실로 이송되었기 때문에 엡스타인-바 바이러스에 접촉할 기회가 없었고 이후 조혈모세포 이식을 받자 기증자의 골수에 남아있던 EBV 유전체로 인해 감염되었고 림프종까지 겹쳐서 결국 사망하게 된 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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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는 1984년 2월 25일 텍사스주 몽고메리 카운티 콘로의 콘로 메모리얼 파크에 형 데이비드 조셉 베터 3세 옆에 묻혔다.

5. 여담

데이비드의 부모님은 이후 이혼했는데 아버지는 텍사스주 셰넌도아 시장이 되었고, 어머니는 아들에 대한 글을 쓴 잡지 기자 켄트 데마렛과 결혼했다.

6. 영화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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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에는 존 트라볼타 주연으로 "플라스틱 버블 속의 소년"이라는 제목의 영화가 개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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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에는 제이크 질렌할 주연의 영화 "버블 보이"로 리메이크 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