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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80년대 한국기원에서 최강자였던 조훈현, 서봉수 두 사람에게는 밀리지만, 그나마 그 들의 자리를 노릴 수 있던 2진 기사 무리를 의미한다.2. 상세
1970년대 이후로 조훈현과 서봉수 두 사람이 선배 기사들을 누르고 바둑계의 최강자로 떠올랐다. 물론 최강자는 조훈현이었고, 그나마 그에 필적할 수 있는 수준으로 견주던 사람이 서봉수였지만. 비록 결승에서 조훈현이 이기는 일이 많았다고는 해도 확실히 서봉수가 2인자였다.그리고 이 들에 비해서는 못 하지만 당시 바둑계에서 혜성처럼 떠오르던 기사 5명이 있었는데, 이들을 도전5강이라고 한다. 이 들은 조-서 두 명의 최강자에 비해 연하였고, 데뷔 역시 늦었다. 그렇게 두 최강자의 뒤를 따라서 바둑계를 제패하나 싶었지만 이들은 번번히 무너지고 말았다. 특히 이 중에서 가장 조훈현과 많이 대결한 사람은 서능욱이었는데, 무려 14번이나 결승에 진출해서 14번 전부 준우승을 기록했다. 우승한 사람이라고 해 봐야 강훈 1명이 끝.[1] 나머지는 우승하지 못 하고 준우승에 그쳤다.
이 들은 10여년간 끊임없이 도전했으나 일단 본선에서 서봉수에게 막히고[2], 정말 어쩌다 서봉수를 넘어서도 조훈현에게는 무참히 박살났다. 심지어 도전 5강은 1985년 조훈현과의 이벤트 치수 고치기 10번기에서 정선과 두 점을 왔다갔다하는 굴욕을 당하기까지 했다. '동등한 대결로는 조훈현에게 이길 수 없다'는 것이 판명된 굴욕적인 수치인 것이다.
한국기원 사무총장을 지낸 바둑전문기자인 박치문 기자는, 도전 5강이 조-서의 양강 구도를 넘어서지 못한 것은 실력 차에다, 도전 5강 스스로 실력 차를 인정해버리고 조훈현, 서봉수의 기보를 연구하는 것을 포기해 버린 영향이 크다고 분석했다. 단, 이것은 포기했다고 도전 5강을 무작정 비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서봉수는 한번 물면 놔주지 않는 끈덕지고 사나운 기풍의 소유자다. 개인 차가 있다고 하나 어느 정도 정형화된 싸움을 기반으로 하는 기사가 서봉수 스타일을 따라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기보를 연구하기보다는 자신들의 장점을 강화해 대항하려는 것이 당시 도전 5강의 생각이라고 보는 쪽이 좀 더 타당하다.[3]
- 서능욱: 1958년생. 1972년 입단, 1990년 九단 승단. 통산 2100전 1184승 909패. 통산 16회 결승 진출, 14회 준우승, 2회 우승
- 강훈: 1957년생. 1974년 입단, 1996년 九단 승단. 통산 1913전 1047승 864패. 통산 5회 결승 진출, 4회 준우승, 2회 우승[4]
- 김수장: 1957년생. 1974년 입단, 1993년 九단 승단. 통산 1872전 1023승 846패. 통산 3회 결승 진출, 4회 준우승.[5]
- 장수영: 1952년생. 1972년 입단, 1992년 九단 승단. 통산 1789전 934승 851패. 통산 9회 결승 진출, 1회 우승, 9회 준우승.[6]
- 백성호: 1956년생. 1972년 입단, 1995년 九단 승단. 통산 1699전 850승 845패. 통산 1회 결승 진출, 2회 우승, 1회 준우승.[7]
3. 이후
유창혁, 양재호, 조대현 세 기사들이 '신풍 3인'이라는 이름으로 뜨면서 도전 5강 역시 밀리기 시작했다. 대략 이 들이 만 30세를 넘길 무렵부터 하락세가 시작된 셈이다. 그리고 이창호가 대두하면서 이 들은 완전히 잊혀진 과거의 강자들로 남았다.도전 5강이라는 별명과 조훈현, 서봉수에게 밀려서 패배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이들을 간손미와 더불어 실력이 부족한 기사들로 볼 수 있겠지만, 그나마 조훈현 - 서봉수 두 사람이 바둑계를 휩쓸던 시절에 그나마 이 들에게 대항할 수 있었던 기사들이었다. 어디까지나 이 들이 조훈현과 서봉수에 비해서 실력이 떨어졌던 것이지 실력 자체가 부족했던 기사들은 결코 아니었다.
그나마 이 들은 전성기가 끝나고 중~노년에 제한 기전이나 리그에서 우승을 한 번이라도 맛 보면서 무관의 설움을 푸는데 성공하기는 했다. 다만, 잘 나가던 과거를 생각하면, '과거의 활약 새삼 부각'정도? 시니어리그가 생긴 이후에는 2011년 12월에 서능욱 九단이 제2회 대주배에서 조훈현 九단을 꺾고 우승하면서 30년 이상 쌓아둔 한을 푸는데 성공했다. 2013년 1월 제3회 대주배에서는 서봉수 九단을 꺾고 다시 우승을 차지했다. 무려 16번의 결승에 진출한 서능욱 九단은 14번의 준우승을 거두었었는데[8], 늘그막한 나이에 2번의 우승을 거두는데 성공했다.
4. 여담
- 도전 5강끼리의 전적을 보면 서능욱은 강훈, 백성호에게 우세. 김수장, 장수영에게 열세이다. 강훈은 백성호에게만 우세하고 나머지 세 사람에게는 열세이다. 김수장은 서능욱, 강훈, 장수영, 백성호에게 모두 전적에서 우세하며, 장수영은 서능욱, 강훈, 백성호를 상대로 우세하나 김수장에게는 열세이다. 백성호는 네 명 모두에게 열세이다.
강훈 | 김수장 | 장수영 | 백성호 | |
서능욱 | 36승 30패 | 23승 30패 1무 | 22승 26패 1무 | 28승 22패 |
서능욱 | 김수장 | 장수영 | 백성호 | |
강훈 | 30승 36패 | 22승 27패 | 18승 28패 | 37승 18패 |
서능욱 | 강훈 | 장수영 | 백성호 | |
김수장 | 30승 23패 1무 | 27승 22패 | 24승 9패 | 24승 15패 |
서능욱 | 강훈 | 김수장 | 백성호 | |
장수영 | 26승 22패 1무 | 28승 18패 | 9승 24패 | 25승 19패 |
서능욱 | 강훈 | 김수장 | 장수영 | |
백성호 | 22승 28패 | 18승 37패 | 15승 24패 | 19승 25패 |
[1] 하지만 강훈의 우승은 알게 모르게 묻혔다. 그럴만한 것이 강훈이 우승한 1986년 박카스배는 조훈현과 서봉수는 의외로 조기에 탈락했고 김인을 상대로 우승을 거뒀기 때문.[2] 그리고 그렇게 결승에 올라간 서봉수는 조훈현에게 번번히 우승을 좌절당했다.[3] 특히 백성호 같은 경우는 행마 자체가 '반상의 신사'라 불릴 정도로 정수만 찾아가는 범생이 스타일이라 조훈현과 서봉수한테 집요하게 패하곤 했다.[4] 우승 1회는 시니어 리그 우승이다.[5] 준우승 1회는 시니어 리그 준우승이다.[6] 준우승 1회는 시니어 리그 준우승이다.[7] 준우승 1회는 시니어 리그 준우승이다.[8] 12번 그를 좌절시킨 사람이 조훈현이고, 2번은 이창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