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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03 15:26:12

동방지역 국가판무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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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지역 국가판무관부
Reichskommissariat Ostland[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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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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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 1945년
성립 이전 해체 이후
에스토니아 SSR 에스토니아 SSR
라트비아 SSR 라트비아 SSR
리투아니아 임시 정부 리투아니아 SSR
벨라루스 SSR 일부 벨라루스 SSR 일부
정치 체제 나치즘
국가판무관 힌리히 로제(1941~1944)
에리히 코흐(1944~1945)
수도 리가
위치 발트 3국

1. 개요2. 역사3.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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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발트 지역과 벨로루시(벨라루스) 북부에 세워졌던 나치 독일국가판무관부. 동부전선 중 유일하게 계획 영토를 모두 얻은 국가판무관부이다. 처음엔 발트 국가판무관부(Reichskommissariat Baltenland, 略 RKO)[2]라 불렸다. 임명된 국가판무관은 슐레스비히홀슈타인 대관구지휘자인 하인리히 로제, 1944년부턴 동프로이센 대관구지휘자 에리히 코흐가 계승했다.

2. 역사

독일군은 이 지역에선 유대인이나 슬라브인을 제외한 인종, 즉 에스토니아인, 리투아니아인, 라트비아인에겐 학살을 저지르지 않았다. 이는 동방식민운동 등 오랜 역사로 인해 독일인과 가깝다고 인식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친나치 인사들도 나중에 전향하거나 소수를 제외하고는 숙청당한 러시아나 우크라이나 점령지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좀 더 자치를 누린 것은 사실이다. 독일 점령당국은 파르티잔이나 반나치세력을 토벌하기 위해 각국에 보안 경찰(Sicherheitspolizei, 略 SiPo)을 설립/확장했으며, 많은 현지인들이 보안 경찰에 지원했고 발트 3국 주민들은 나치 독일을 해방자로 여겼으며 나치 독일을 적극적으로 환영했다.

그러나 독일이 승전 이후 동유럽 식민화를 하려고 세운 계획인 동방계획(게네랄플란 오스트)에 의하면 다른 민족들을 지배할 계획으로 에스토니아인라트비아인의 50% 학살 및 추방 나머지 50% 독일화, 벨라루스인의 75% 학살 및 추방 나머지 25% 독일화였지만 리투아니아인은 85% 학살 및 추방 및 나머지 인구의 독일화를 구상하였다고 한다. 발트 지역이 레벤스라움의 일부로 편입된 이상 이들 역시 독일인으로의 동화는 피할 수 없는 길이었지만 소련의 억압으로 인해 적극적으로 독일에 부역한 몇 안 되는 지역 중 하나이다.

현대에도 발트 3국에서는 반소, 반러 감정이 너무나 사무친 나머지 친독, 친서방 성향인 것에 더해 나치 독일에 대한 인식이 상대적으로 매우 좋은 편이다. 한 다큐멘터리 방송에서는 발트 지역 노인들이 인터뷰에서 독일은 동방 국가판무관부 시절을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고 자랑스러워해야 마땅하다고 목소리를 높였을 정도. 이에 대해 발트 3국 현지의 유대인 공동체와 러시아인 공동체가 난색을 표하기도 했다.[3]

그렇다고 모든 에스토니아인, 리투아니아인, 라트비아인들이 나치에 협력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며, 다른 나치 점령지와 마찬가지로 나치에 맞서 싸운 빨치산도 존재했다. 또한 유대인이나 슬라브족은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큰 탄압을 받았다.

지금의 벨라루스 지역에는 자치 국가이자 괴뢰 정부벨라루스 중앙 라다가 들어선다. 벨라루스 지역은 발트 3국과 별개로 심각한 탄압을 받았다. 벨라루스의 경우 최서단은 나치 독일 본토에 편입되었으며 동쪽은 소련 군정청에 편입되었다.

우크라이나 국가판무관부와 달리 1944년 7월까지만 해도 독일군이 모든 영토를 장악하고 있었고 1944년 7월 부터 소련이 대부분 지역을 점령했음에도 동부지역 국가판무관부는 나치 독일이 멸망할 때까지 사라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북부집단군의 일부가 미처 탈출하지 못하고 라트비아쿠르제메(쿠를란트)에 갇혀 버렸기 때문이다. 쿠를란트 집단군이라고 불리는 이들의 규모는 20만 명이나 되었고 소련도 포위만 하고 대대적인 공격을 가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쟁이 끝날 때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 물론 이들도 본국이 항복하고 이틀 뒤에 항복했다.

3.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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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라이히스코미사리아트 오스트란트[2] 라이히스코미사리아트 발텐란트[3] 실제로 발트 3국에서는 무장친위대에 입대해 소련군에 맞서 싸운 자국민을 나치 전범이 아닌 독립투사로 대우해야 한다는 시각 또한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