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東輿圖. 조선 후기, 1856년(철종 7년)부터 1861년(철종 12년) 사이에 지리학자 김정호가 제작한 분첩절첩식(分帖折疊式) 전국 지도. 본격적으로 대동여지도를 만들기 전 프로토타입으로 제작되었다.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과 서울역사박물관에 원본이 소장되어 있으며, 두 종 모두 대한민국 보물 제1358호로 지정되어 있다.2. 내용
동여도에 수록된 의주부의 모습.
조선 철종 재위시기에 김정호가 제작한 채색 지도로, 총 23첩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도의 높이는 약 7m 이다.
김정호가 대동여지도를 제작하기 전 프로토타입으로 만들어진 지도로, 주현(州縣) 간의 도로와 산천, 파수(把守), 진보(鎭堡), 역도(驛道), 영진(營鎭), 목소(牧所), 방면(坊面), 봉수(烽燧), 능침(陵寢), 성(城), 창고, 도로 등이 수록되어 있다. 경선 1도 차이는 시간으로 4분이고, 지상에서의 거리는 200리이며, 30도 차이는 1진(辰)이고, 거리로는 6,000리이다.
대동여지도와의 차이점을 살펴보면 주기명(註記名)의 경우 먼저 만들어진 동여도는 18,736개가 수록되었지만, 후대에 만들어진 대동여지도는 13,188여 개로 줄어들었다. 또한 동여도는 지도 여백에 『방여기요(方輿紀要)』에 실려 있는 지도의 중요성을 논한 글귀가 적혀 있으며, 시간의 차이와 경도(經度)의 차이, 그리고 지상에서의 거리 차를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반면에 동여도는 경선 간격의 차이와 지도 제작을 위한 표준위선의 개념이 명백하지 않다.
대동여지도를 만들기 전 선행 제작된 채색 전국지도로, 한국 지리학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3. 외부 링크
4. 보물 제1358-1호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동여도는 철종·고종 연간에 고산자(古山子) 김정호(金正浩)가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필사본의 전국 채색지도이다. 병풍처럼 접고 펼 수 있는 분첩절첩식(分疊折帖式) 형태로 되어 있다. 총 23첩으로 맨 앞첩은 목록집이고, 제1첩부터 제22첩까지는 각 지역의 지리가 그려져 있어 『대동여지도』와 유사한 체제를 갖추고 있다.
지도는 산천표시와 함께 주현별(州縣別) 경계선을 그어, 주현간의 도로를 표시하였다. 그 바탕 위에 영진(營鎭), 주현(州縣), 진보(鎭堡), 역도(驛道), 목소(牧所), 방면(坊面), 창고(倉庫), 봉수(烽燧), 능침(陵寢), 성(城), 도로(道路), 파수(把守) 등을 표시하였다. 지도상의 거리는 제1첩 1면에 방안을 그려놓고 '방십리매편(方十里每片)'이라고 하여 매방(每方)의 실제거리가 10리임을 표시하였다.
동여도는 지금까지 알려진 대동여지도의 필사본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정밀·정확하게 그려진 훌륭한 지도첩이다. 도화서에서 그린 지도제작 솜씨와도 버금가고 있어, 뛰어난 그림과 글씨, 채색 등이 18세기 후반기 조선지도 제작기술의 높은 수준을 잘 나타내는 대표적 작품 중의 하나로 꼽힌다.
동여도는 철종·고종 연간에 고산자(古山子) 김정호(金正浩)가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필사본의 전국 채색지도이다. 병풍처럼 접고 펼 수 있는 분첩절첩식(分疊折帖式) 형태로 되어 있다. 총 23첩으로 맨 앞첩은 목록집이고, 제1첩부터 제22첩까지는 각 지역의 지리가 그려져 있어 『대동여지도』와 유사한 체제를 갖추고 있다.
지도는 산천표시와 함께 주현별(州縣別) 경계선을 그어, 주현간의 도로를 표시하였다. 그 바탕 위에 영진(營鎭), 주현(州縣), 진보(鎭堡), 역도(驛道), 목소(牧所), 방면(坊面), 창고(倉庫), 봉수(烽燧), 능침(陵寢), 성(城), 도로(道路), 파수(把守) 등을 표시하였다. 지도상의 거리는 제1첩 1면에 방안을 그려놓고 '방십리매편(方十里每片)'이라고 하여 매방(每方)의 실제거리가 10리임을 표시하였다.
동여도는 지금까지 알려진 대동여지도의 필사본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정밀·정확하게 그려진 훌륭한 지도첩이다. 도화서에서 그린 지도제작 솜씨와도 버금가고 있어, 뛰어난 그림과 글씨, 채색 등이 18세기 후반기 조선지도 제작기술의 높은 수준을 잘 나타내는 대표적 작품 중의 하나로 꼽힌다.
5. 보물 제1358-2호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소장
19세기 중엽에 김정호가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조선 전도(全圖)로, 필사본이다.『대동여지도』와 유사하게 23층의 절첩식(絶帖式)으로 제작되었다. 또, 전체적인 한반도의 윤곽, 산계(山界)와 수계(水界), 도로망 등 대부분의 내용이『대동여지도』와 일치하며, 범례에 해당하는 「지도표(地圖標)」도『대동여지도』와 흡사하다.
『동여도』는 필사본으로 목판본보다 세밀한 기록이 가능했기 때문에『대동여지도』에 비해 약 7천여 개의 지명이 더 수록되어 있다. 특히『대동여지도』에서는 누락되어 있는 방(坊)과 면(面)의 지명이 상세히 수록되어 있다.
지도 내용을 보면, 각 첩마다 도로를 표시한 적색 실선의 두께가 다르고 도로를 표시한 적색과 산줄기를 표시한 녹색의 색감들도 첩별로 다르게 나타나는데, 이는『동여도』의 필사과정에 여러 사람이 함께 참여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또 산계를 그린 회화적 솜씨나 글씨의 수준을 볼 때, 관에서 지도 제작에 관여했을 가능성도 높다.
19세기 중엽에 김정호가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조선 전도(全圖)로, 필사본이다.『대동여지도』와 유사하게 23층의 절첩식(絶帖式)으로 제작되었다. 또, 전체적인 한반도의 윤곽, 산계(山界)와 수계(水界), 도로망 등 대부분의 내용이『대동여지도』와 일치하며, 범례에 해당하는 「지도표(地圖標)」도『대동여지도』와 흡사하다.
『동여도』는 필사본으로 목판본보다 세밀한 기록이 가능했기 때문에『대동여지도』에 비해 약 7천여 개의 지명이 더 수록되어 있다. 특히『대동여지도』에서는 누락되어 있는 방(坊)과 면(面)의 지명이 상세히 수록되어 있다.
지도 내용을 보면, 각 첩마다 도로를 표시한 적색 실선의 두께가 다르고 도로를 표시한 적색과 산줄기를 표시한 녹색의 색감들도 첩별로 다르게 나타나는데, 이는『동여도』의 필사과정에 여러 사람이 함께 참여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또 산계를 그린 회화적 솜씨나 글씨의 수준을 볼 때, 관에서 지도 제작에 관여했을 가능성도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