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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2-05 20:08:05

디에고 루가노

디에고 루가노의 역임 직책
{{{#!folding ▼
우루과이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파올로 몬테로
(1997~2005)
디에고 루가노
(2006~2014)
디에고 고딘
(2014~2022)
}}} ||
디에고 루가노의 수상 이력
{{{#!folding ▼ 둘러보기 틀 모음
개인 수상
베스트팀
파일:코파아메리카_2011_로고.png
}}} ||
우루과이의 前 축구선수
파일:Lugano0.jpg
<colbgcolor=#eeeeee,#191919><colcolor=#000000,#e5e5e5> 이름 디에고 루가노
Diego Lugano
본명 디에고 알프레도 모레노 루가노
Diego Alfredo Moreno Lugano
출생 1980년 11월 2일 ([age(1980-11-02)]세)
우루과이 카넬로네스주 카넬로네스
국적
[[우루과이|]][[틀:국기|]][[틀:국기|]]
신체 188cm / 체중 84kg
직업 축구 선수 (센터백 / 은퇴)
소속 <colbgcolor=#eeeeee,#191919><colcolor=#000000,#e5e5e5> 유스 나시오날 (1996~1999)
선수 나시오날 (1999~2003)
플라자 콜로니아 (2001~2002 / 임대)
상파울루 FC (2003~2006)
페네르바흐체 SK (2006~2011)

파리 생제르맹 FC (2011~2013)
말라가 CF (2013 / 임대)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 (2013~2014)
BK 헤켄 (2015)
클루브 세로 포르테뇨 (2015)
상파울루 FC (2016~2017)
국가대표 95경기 9골 (우루과이 / 2003~2014)

1. 개요2. 클럽 경력3. 국가대표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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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우루과이의 前 축구선수. 2010년대 초반 우루과이 축구 국가대표팀의 전성기를 이끈 주장이자 고딘 - 히메네스 이전 수비의 상징이었다.

2. 클럽 경력

2.1. 경력 초기

1999년, 나시오날에서 축구를 시작했다. 두 시즌 뒤 2001년 그는 플라사 콜로니아로 이적했다. 플라사 콜로니아에서 두 시즌 동안 좋은 활약으로 브라질 세리 A에서 관심을 받기 시작했고, 결국 상파울루 FC로 이적했다.

2002년 상파울루로 이적한 루가노는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주었다. 총 96경기를 뛰었으며 8골을 득점하였다. 2005년에는 상파울루가 코파 리베르타도레스FIFA 클럽 월드컵에서 우승 시키는데 큰 기여를 했고, 그의 활발한 플레이와 든든한 수비 실력으로 많은 유럽 팀들에게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2.2. 페네르바흐체 SK

2006년, 많은 유럽 팀들의 구애 속에 그의 선택은 페네르바흐체 SK였다. 그리고 첫 시즌부터 환상적인 활약을 보여주며 튀르키예 쉬페르리그 우승에 공을 세웠다. 특히 2006-07 시즌은 페네르바흐체의 창립 100년째 였기 때문에 의미가 컸다. 이후에도 수비의 버팀목으로 좋은 활약을 보여준 그는 페네르바흐체 SK 팬들이 뽑은 팀 내 최고의 외국인 선수에 뽑혔다. 그러나 잦은 옐로 카드와 퇴장은 가끔 팀을 위태롭게도 하였고, 특히 2008-09 시즌에는 갈라타사라이 SK 더비에서 경기 도중 엠레 아싁에게 박치기를 해, 두 팀 선수들간에 심한 몸 다툼을 만든 원인을 제공하였다. 결국 사건의 시발점인 루가노는 출장 정지를 당한다. 그 일이 있은 후 여름 이적기간에 이적설이 나돌았으나 결국 다시 재계약 하며 2009-10 시즌을 앞두고 잔류하였다.

2.3. 파리 생제르맹 FC

2011년, 페네르바흐체가 승부조작에 연루되어 UEFA 챔피언스 리그 출장 자격을 박탈당하자 파리 생제르맹으로 이적하였다. 그러나 급격히 폼이 하락한 모습을 보이면서 조금이나마 출전 기회를 받았던 첫 시즌과 달리 두번째 시즌에는 전력 외 선수로 분류되었고, 2013년 겨울이적시장을 통해 말라가로 임대 이적했다.

말라가에서는 파리에서보다 출전 기회를 많이 얻었지만 크게 눈에 띄는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시즌을 마친 뒤 영구 이적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2.4. 이후

2013년 8월 2일, 웨스트 브로미치 알비온으로 이적하면서 EPL 무대에 입성했다. 주전이 아닌 백업 멤버로 활약했으며, 에버턴전에서 헤더로 동점골을 기록하며 첫 골을 신고했다. 시즌이 끝난 뒤 연장 계약없이 방출되었다.

반년간 무적 상태로 지낸 루가노는 2015년 3월 26일, 스웨덴의 BK 헤켄과 다가오는 여름까지 단기 이적에 합의했다. 헤켄에서는 잠깐이었지만 나름 준수한 활약을 보여주며 팬들의 사랑을 받기도 했다.

헤켄과 계약이 만료된 후 파라과이의 클루브 세로 포르테뇨에 1년 단기 계약으로 입단했다. 한때 남미를 넘어 유럽 리그에서도 수년간 경쟁력을 발휘했던 루가노의 입단 소식이 들려오자 그가 파라과이에 도착했을 때 공항에 수많은 팬들과 클럽 선수들 그리고 회장까지 마중나오며 그를 성대하게 맞이했다. 그리고 팀에 있는 동안 짧지만 강렬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파라과이 리그에서 가장 인기있는 선수로 거듭났다. 또한 그가 계약이 끝난 뒤 팀을 떠난다고 발표했을 때 많은 팬들이 아쉬워하기도 했다. 이에 루가노는 자신의 SNS를 통해 짧은 시간이었지만 자신을 응원해준 팬들에게 감사하다며 작별의 인사를 남겼다.

2016년, 10여년만에 친정팀 상파울루로 복귀하여 두 시즌간 활약한 뒤 현역에서 은퇴했다.

3. 국가대표 경력

2003년에 처음으로 우루과이 대표팀에 승선한 루가노는 2007년에 국가대표팀의 주장이 되었다.

2009년 11월 10일, 코스타리카와의 남아공 월드컵 대륙간 플레이오프에서 결승골을 기록하며 조국의 월드컵 본선행을 이끌었다. 그리고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열린 월드컵 본선에서 디에고 고딘과 함께 철벽 수비를 구성하며 월드컵 4강 진출을 견인했다.

2014 FIFA 월드컵 남아메리카 지역 예선 9라운드 아르헨티나와의 원정경기에서 그의 조국 우루과이는 루가노가 출장한 상태에서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철벽수비를 보이며 박빙을 연출했으나 루가노가 부상으로 교체되자마자 내리 3골을 허용하며 아르헨티나에게 패배했다.

2014년 FIFA 월드컵 본선에 출전하였으며 첫 경기인 코스타리카전에 선발출전하였다. 팀은 에딘손 카바니의 선제골로 앞서나갔지만 후반전에 급격하게 무너지면서 3골을 내주었고 결국 1:3으로 역전패를 당했다. 이후 부상으로 인하여 다음 경기 출전이 불투명해졌다.

결국 2차전인 잉글랜드전부터는 호세 히메네스가 그의 자리를 대신하였으며, 나머지 두경기인 잉글랜드, 이탈리아를 상대로 모두 승리를 거두면서 16강에 진출하였다. 그러나 팀은 16강전에서 팀의 에이스인 루이스 수아레스의 공백을 뼈저리게 실감하면서 콜롬비아에게 0:2로 패배하고 8강 진출에 실패하였다. 또한 루가노는 경기 중 벤치에서 주심에게 항의를 하다가 경고를 받기도 하였다.

월드컵이 끝난 이후 루가노는 대표팀 입지가 크게 줄어들었고, 결국 주장을 자신의 파트너였던 디에고 고딘에게 넘겨준 뒤 대표팀 경력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