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영어 : Muhammad Rashid Rida 아랍어 : محمد رشيد رضا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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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라시드 리다는 현대 이슬람 살라프파의 사상적 시조에 해당하는 인물이다. 이슬람 모더니즘 학자 무함마드 압두의 제자였던 그는 압두의 근대화 사상 및 반수피 관점을 바탕으로 와하브파 신학을 받아들여 근대 살라프파의 기원을 마련하였다. 무함마드 압두와 사상적 교류를 주고받은 또다른 무슬림 학자 자말룻딘 알 아프가니는 이슬람 세계가 서구 열강에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 수피들이 예배와 묵상만 중시하고 현실 생활에 직접적으로 개입하지 않는 것을 크게 비판하였는데, 라시드 리다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이슬람 수피파를 아예 이슬람 문명 발전의 최대 장애물로 지적하기 시작했다. 그가 제작한 이슬람 신문 "알 마나르(المنار)"가 이슬람권 각지에 지식인들 사이에 큰 호응을 얻고 그 결과 중세부터 근세까지 이슬람 세계 각지에서 엄청난 영향을 미치던 이슬람 수피즘은 큰 타격을 받게 되었다.2. 사상
생애 초창기에는 이슬람 모더니즘 성향이 강했던 그는 오스만 제국의 술탄(근세 이후 오스만 제국의 술탄은 칼리파를 겸직했다.)의 부흥에 많은 기대를 걸었지만, 그의 기대와는 다르게 1922년 신생 튀르키예 공화국은 칼리파 제도는 공식적으로 폐지하였고, 리다는 여기에 심각한 정신적 충격을 받게 되었다. 터키 공화국의 칼리파 제도 폐지를 계기로 이슬람 세속주의자들에게 배신감을 느낀 라시드 리다는 이슬람 보수 신학 성향으로 돌아서는데 그는 와하브파를 비판한 스승 무함마드 압두와 다르게 와하브파 신학을 포용하며, 중동에서 새로 부흥하는 아랍 민족주의가 너무 친기독교적이라며 비판하는 등, 세속주의 성향 무슬림들 및 다른 이슬람 모더니즘 학자들과 갈등하기 시작했다.그의 스승 무함마드 압두는 아랍계 기독교인들에 개방적이던 것은 물론 무슬림들을 종파 관련없이 통합하려는 입장이었고,[1] 심지어 이슬람에서 갈라져나온 바하이교계와 활발하게 교류하는 수준이었으나, 리다는 이를 직접 반박하며 이슬람에서 구원받아야 하는 대상은 오직 "아흘룻 순나 왈 자마(أهل السنة والجماعة)"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아흘룻 순나"는 순나의 백성 즉 순니파라는 뜻이고 "왈 자마"는 하나의 공동체, 하나의 분파라는 뜻이다. 여기서 말하는 하나의 분파는 "이슬람은 미래에 73개의 분파로 갈라지는데# 중 단 한 개의 공동체만 빼고 나머지는 결국 다 지옥으로 떨어질 것이며, 천국으로 직행하는 공동체란 바로 예언자 무함마드의 바로 그 공동체"라는 하디스들에서 따왔다.[2] 다시 말해서 라시드 리다는 예언자 무함마드의 교우들 사하바들을 일컫는 말인 살라프(سلف)[3]라는 단어를 새로이 해석하여, 수피 같은 이른바 이단 종파를 따르지 않고 초기 이슬람 그대로를 실천하는 이슬람 신학 사조를 추구한다는 의미로 현대 이슬람 신학 사조를 "살라피야"라고 명명하였다. 그가 확립한 살라프파 사상은 예언자 무함마드 사후 수세기 이후 확립된 순니파 4대 마드하브(하나피파, 말리키파, 한발리파, 샤피이파)까지 배격하고 샤리아를 새로 재창조해야 한다는 데까지 이르렀다.
3. 여담
- 이슬람권에서 시오니즘을 최초로 비판하고 우려한 인물 중 한 명이었다.
- 보수성향 이슬람 학자치고는 의외로 찰스 다윈의 진화론을 지지하였다.
- 그의 직계 제자 중 대표적인 사람으로 셰이크 알 알바니가 있다.
- 스승 무함마드 압두가 괜히 쓸데없이 프리메이슨에 가입해서 사람들에게 의심을 산 것과, 다르게 라시드 리다는 프리메이슨에 대해 별 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