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 엡스타인 박사의 삼고제(三高弟) | ||
A. 러셀 | G. 슈미트 | L. 해밀턴 |
라토야 해밀턴 ラトーヤ・ハミルトン | Latoya Hamilton | |
영웅전설 계의 궤적 일러스트 | |
<colbgcolor=#9f8b6b><colcolor=#fff> 출생년도 | 칠요력 1134년[1] |
출신지 | 중동 |
나이 | 74세여~II |
키 | 170cm |
소속 및 직책 | 前 베른사 고문 |
바젤 이과대학 명예교수 | |
성우 | 이노우에 키쿠코 |
수잰 블레이크슬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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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궤적 시리즈의 등장인물.2. 설명
여의 궤적Ⅱ 일러스트 |
카트르. 연구자로서도, 너 자신으로서도… 어떻게 하고 싶은지 차분히 생각해 보렴. |
도력기를 발명한 클로드 엡스타인 박사의 직계 제자인 삼고제(三高弟) 중 한 명으로, 공화국 도력 기술의 최첨단인 바젤 이과대학의 명예교수이자 공화국 최대의 기술 메이커인 베른사의 전 최고 고문이다.
엡스타인 박사의 타계 후 다른 동문들이 그랬듯이 공화국에서 오브먼트 기술을 널리 퍼트린 인물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다른 동문들은 자신들의 고향으로 돌아간 것이지만, 해밀턴 박사는 "변경에야 말로 도력기가 필요하다"는 신념에 따라 고향이 아닌 공화국으로 넘어온 것이라고 한다. 그 신념 답게 해밀턴 박사가 초창기 주도했다고 하는 도력기들은 주로 건축이나 치수나 지질을 개선하는 등의 민생에 관련된 업적이 많으며, 대륙 최고 수준의 천체 관측 기술도 확립했다.[2]
인간됨 역시 다른 동문들과는 달리 무척이나 온화하고 상식적인 사람으로 묘사된다. 삼고제 아래에서 자란 에리카 러셀은 친부인 러셀 박사나 슈미트 박사를 상대로는 라이벌 의식을 불태우며 이를 갈고 있지만, 해밀턴 박사만큼은 인간적으로도 애정하는 태도를 보여줬다. 여의 궤적에 본격적으로 등장하여 보여준 모습 역시 러셀 박사나 슈미트 박사와 비교하는게 민망할 정도로 부드러운 현인다운 모습이다. 실제로 이미 성녀로 지정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행보를 보이는데, 교회에서는 몇번이나 타진했음에도 본인이 거절했다고 한다.[3]
젊은 시절의 L. 해밀턴 |
여궤 기준으로 대략 3년 전부터 공화국을 떠나, 칠요맥이 고갈되어 붕괴되고 있는 동방의 지질을 연구하러 떠났다. 이 때문에 연락이 잘 닿지 않아서 에리카 러셀이 걱정하는 모습이 나오기도 했다. 이후 여의 궤적 4장에서 벌어진 사건을 수습하기 위해 바젤에 급히 귀환하였으며, 이후 반응 병기 사태 조사를 맡기도 한다.
슈미트 박사와 마찬가지로 결혼은 하지 않았는지 친자식은 따로 없는 것으로 보이지만, 카트르 살리시온을 거두어 친손자처럼 아끼고 있으며, 에스메레나 크롱카이트 같은 가족이나 다름없는 수제자들도 있다. 에리카 역시 사실상 친딸이나 다름없는 관계일 듯 하다.
카트르가 말하기로는 고향인 중동 지방의 특산품인 시나몬 커피를 즐겨 마시는 모양. 카트르에게도 곧잘 끓여주곤 했다고 한다.
여의 궤적Ⅱ 추가 엔딩에서 딩고 브래드가 마지막 말로 자신에게 뒤를 맡긴다는 말을 들으며 재앙에 대비할 시간을 벌어준 딩고에게 감사를 표한다.[4] 유저들의 의견으론 붉은 여왕 가설의 윌리엄 D. 해밀턴 박사가 모티브로 추정하고 있다.
궤적 시리즈 전통의 안경을 착용하였고 평소에는 온화한 성격으로 주위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보니 흑막설이 가장 유력하게 제기되고 있는 상태다. 반쯤은 농담이지만 여의 궤적 1~2를 자세하게 살펴보면 의심쩍은 부분이 상당히 많다.[5] 해밀턴 외에는 크론카이트 교수가 흑막설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계의 궤적에서 실제로 그녀가 준비하던 계획의 전모가 밝혀진다. 엡스타인 박사가 남긴 수기에 나온 재앙은 1200년 주기로 제무리아 대륙이 있는 별 밖의 우주에 있는 각의 지보가 문명을 리셋하고 루프시키던 것이었다. 이를 막기 위해 엡스타인 박사는 제자인 라토야에게 이를 알려주고 해결책[6]을 맡겼고, 각의 지보를 파괴하려던 로이 대통령의 레반테인 계획이 실패하자 차선책으로서 수행한다. 다른 협력자로는 도미니크 랜스터, 윤 카파이, 르네 킨케이드, 딩고 등이 있었다.
또한 설계를 담당했던 살바드 지하 수로는 제무리아 시대의 건축물 '안티키테라 유적탑'에 설치된 시설과 연동해 칠요력 1210년, 즉 내년 이후의 수자원을 끌어오고 있었으며, 케빈 그라함이 파견된 것도 인과율 간섭 행위를 단죄하기 위함이다.
[1] 나이로 추정한 추정연도. 다만 여의 궤적 II 시점에서도 74세인 것을 보면 생일이 느린 듯하다.[2] 러셀 박사는 레만 자치주 외부에서 최초로 도력기를 제작하여 도력기의 일반적인 보급과 재단의 영향력 확대에 공헌하였다고 하며 험지가 많아 교통이 열악한 리벨 왕국의 환경에 맞춰 물자 운송 및 비행선 분야를 중심으로, 슈미트 박사는 에레보니아 제국의 군사기술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3] 스포일러의 행위를 생각하면 오히려 교회에게 적으로 몰려야 했고, 실제로 계의 궤적에서 이게 밝혀져 수호기사가 단죄하러 온다.[4] 반 일행이 그렌델=졸가와 마지막 결전을 벌인 공간에는 사실 해밀턴 교수도 있었으며, 반 일행이 이를 끝까지 눈치채지 못하고 현실 세계로 돌아간 후에 모습을 드러내 그 자리에 남겨져있던 딩고의 중절모를 유품으로 회수해갔다.[5] 일례로 여의 궤적1 3장에서 반 일행이 올랭피아와 처음으로 조우했을 때 반이 그렌델로 변신하려다 여궤 시리즈 내에서 유일하게 실패하는 장면이 있는데, 실패한 이유는 언급되지 않았으나 실패했던 장소였던 지하 수로를 만든 게 해밀턴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6] 클로델 가문의 사람이 옥트 제네시스를 기동시켜 그랜드 리셋에서 시공을 보호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