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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us 레우스 | |||||
국가 | 스페인 | ||||
주 | 카탈루냐 | ||||
면적 | 52.8km² | ||||
인구 | 103,477명[1] | ||||
시간대 | UTC+01:00(서머타임 적용) | ||||
레우스 행정 사이트 | |||||
1. 개요
스페인 카탈루냐 타라고나주에 있는 도시로 스페인을 대표하는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의 고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우스에는 안토니오 가우디가 설계한 건물이 없다.2. 역사
1154년 6월 3일 노르망디에서 카탈루냐로 이주한 노르만인 로베르 다길로가 레우스 일대에 정착하면서 도시가 생겼다. 이틀 뒤 타라고나 대주교는 로베르 다길로에게 교회를 세우라고 명했다. 1309년 아라곤의 왕은 월요일에 시장을 열 수 있는 권한을 레우스에 주었다. 하지만 레우스 일대가 상속 분쟁에 휘말리자 교황 클레멘스 6세의 조카인 피에르 로제르 드 보포르가 교황을 설득하여 타라고나 대주교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는 분쟁을 해결하면서 레우스에게 장미를 마을의 문장에 주었고, 현재 도시의 깃발에 장미가 있다. 피에르 로제르 드 보포르는 나중에 교황 그레고리오 11세가 되었다.카탈루냐 반란 초기에 레우스는 전쟁의 참화에 휘말려서 1200채의 집이 800채로 줄어들었다. 그래서 1705년까지 레우스는 스페인 국왕 펠리페 5세에게 충성을 맹세했지만 카탈루냐 전체는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때 카를 6세를 지지하였다.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의 결과로 프랑스의 펠리페 5세가 스페인 왕위를 잇자 카탈루냐는 극심한 탄압을 당했다. 18세기 레우스는 섬유와 주류를 수출하여서 카탈루냐 공국의 2번째로 큰 도시가 되었다. 하지만 1895년 필록세라라는 곤충이 포도나무를 다 죽이자 레우스의 경제를 쇠락하였다. 그 와중에 스페인 내전에서 공화파가 패배하자 레우스는 더욱더 성장을 하지 못했다.
3. 경제
19세기 부터 레우스는 전 세계 주류 생산의 중심지로 30개 이상의 베르무트 양조장들이 있다.[1] 통계인구, 2018년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