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ee1c25><colcolor=#ffff00> 레이펑 雷锋 | Lei Feng | |
출생 | 1940년 12월 18일 |
후난성 창사 | |
사망 | 1962년 8월 15일 (향년 21세) |
랴오닝성 푸순 | |
국적 | [[중국| ]][[틀:국기| ]][[틀:국기| ]] |
직업 | 군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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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 인민해방군의 모범병사.2. 생애
레이펑은 1940년 후난성 창시에서 태어났는데 당대 중국의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레이펑은 힘겨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할아버지는 레이펑이 어렸을 때 일찍 사망했고 아버지는 국민당군의 탄압에 의한 후유증으로 장애인이 되어 요양하다가 일본군의 고문에 의해 죽고 어머니는 지주에게 능욕을 당해 자살했으며 형은 공장의 노동자로 일하다 폐결핵으로 일찍 죽었다. 이렇게 어린 시절에 고아가 된 레이펑은 홍군이 중국을 통일한 뒤 소학교에 진학하면서 그는 아동단과 소년선봉대에 들어가 단원이 되었고 소학교를 졸업한 뒤 중국 공산주의 청년단에 가입했으며 이후 통신 공무원으로, 트랙터 기사로 성실하게 살아서 표창장을 많이 받았다.레이펑은 홍수에 떠내려갈 시멘트를 동료들과 함께 온몸으로 지켜낸 일로 모범 근로자로 표창을 받는 사건으로 유명해졌다. 1960년 중국 인민해방군에 입대해 랴오닝성 푸순시에서 복무하면서 기름 절약에 힘을 썼다. 그는 군대에 있는 시간 이외에도 짬을 내서 학교에서 보조교사로 일하며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하였으며 자신이 그동안 모은 봉급 200위안[1]을 인민공사 사무실에 기부하는 등 선행을 이어갔다. 1962년에 소년선봉대 보조대원을 맡았는데 여기서도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이며 공청단 청년위원회로부터 표창장을 받고 동년에 푸순인민대회 의원으로 선출되는 영광을 안았으나 1962년 8월 15일에 트럭 후진을 돕다가 트럭이 친 전봇대가 쓰러지면서 그를 강타하면서 죽었다.
3. 평가
오늘날에서도 레이펑에 대한 평은 매우 좋다. 중국에서는 그를 우상화시키기 위해 문화대혁명 때 각종 신문이나 교과서에 그의 인생에 대해 인용되었고 3월 5일을 ‘레이펑에게 배우는 날‘로 지정하기 까지도 했다.[1]또한 레이펑 기념관도 있고 레이펑에 대한 노래도 있다.[1] 레이펑에게 배우는 날에는 학생들이 공원이나 거리를 청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