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서기 8~15세기 이베리아 반도 (히스파니아)에서 벌어진 레콩키스타의 과정을 정리한 문서.2. 배경
- 456년 : 서고트 족, 서로마 제국의 요청에 히스파니아 진입. 수에비 족 격파하고 정착
- 472년 : 서고트 왕국, 에브로강 유역의 서로마령 정복
- 585년 : 서고트 왕국이 수에비 왕국 정복, 히스파니아 내륙 평정
- 589년 : 톨레도 공의회. 서고트 국왕 레카레드 1세, 니케아파 기독교로 개종
- 624년 : 서고트 국왕 수인틸라, 동로마 제국령 남해안 정복. 히스파니아 통일
- 697년 : 우마이야 왕조, 동로마 제국령 카르타고 함락
- 698년 : 카르타고 전투. 우마이야 군대가 동로마-서고트 군대 격파
- 704년 : 해방 노예 출신 무사 이븐 누사이르, 우마이야령 이프리키야 총독 부임
- 706년 : 무사 이븐 누마이르, 탕헤르 점령
- 707년 : 무사 이븐 누사이르, 발레아레스 제도 정복
- 709년 : 동로마 제국령 세우타 총독 율리안, 무사에게 복속
3. 이슬람 정복
- 710년 : 봄. 무사 이븐 누사이르, 휘하 타리크 이븐 지야드에 탕헤르 맡김
- 7월 : 타리크 휘하 타리프 이븐 말리크, 4척의 함대로 히스파니아 해안 습격.
- 711년 : 위티자 왕 사후 서고트 내전 (세자 아길라 2세 vs 로데리크, 후자 승리)
- 4월 26일 : 타리크 이븐 지야드, 1700의 병력과 지브롤터 상륙.[1]
- 7월 19일 : 과달레테 전투. 타리크 이븐 지야드, 서고트 군대 대파. 국왕 로데리크 전사
- 7-8월 : 타리크 이븐 지야드, 에시하 점령. 부관 무기트 알 루미 코르도바 공격 맡김
- 10월 : 무기트 알 루미, 코르도바 점령. 총독 등 포로와 다마스쿠스 궁정에 보고.
- 11월 11일 : 타리크 이븐 지야드, 톨레도 무혈입성. 마드리드 일대 원정 후 귀환
- 712년
- 713년 : 무사의 사남 압둘 아지즈, 세비야의 봉기 진압. 하엔, 그라나다, 사군토 점령.
- 714년 : 봄. 무사 이븐 누사이르가 사라고사, 오비에도 점령. 타리크, 레온 점령[5]
- 715년 : 무사 이븐 누사이르, 타리크와 다마스쿠스 개선. 이후 직위해제됨
- 716년 : 안달루시아 중심으로 히스파니아 대한 무슬림 지배 체제 구축되기 시작
- 3월 : 압둘 아지즈, 칼리파의 지시로 암살됨. 사촌 아이유브 이븐 하빕 선출됨, 총독부 코르도바 이전
- 8월 : 이프리키야의 무함마드 이븐 야지드가 선임한 총독 알 후르 이븐 압둘 라흐만 앗 싸카피 부임[7]
- 717년 : 알 후르, 피레네 넘어 아키텐과 셉티마니아 습격
- 718년 : 프랑크 내전. 동부의 카를 마르텔, 서부-아키텐 연합군 격파
4. 전개
- 718-719년 : 코바동가 전투. 펠라요, 우마이야 군대 격파. 장군 알 카마 전사 (아스투리아스 왕국)[8]
- 719년 : 안달루스 과세 위한 인구조사 실시됨
- 3월 : 앗 사흠 이븐 말리크 알 카왈리니, 안달루스 총독 선출됨
- 720년 : 앗 사흠, 바르셀로나와 나르본 점령, 서고트 왕국 멸망[9]
- 721년 : 앗 사흠, 나르본 떠나 아키텐령 툴루즈 공격
- 6월 : 툴루즈 전투. 앗 사흠, 아키텐 공 오도에 패해 전사
- 7월 : 앗 사흠의 부관 압둘 라흐만 이븐 압둘라 알 가피키 승계
- 8월 : 안바사 이븐 수하임 알 칼비, 안달루스 총독 부임. 지즈야 2배 증세
- 724년 : 안바사, 카르카손과 님 점령. 셉티마니아 평정[10]
- 725년 : 안바사, 나르본의 병력 파병해 론 강 유역 공격
- 726년
- 1월 : 안바사, 부르고뉴 원정 준비 중 병사. 후임 우드라 이븐 압둘라 알 피흐리 선임
- 3월 : 야흐야 이븐 살라마 알 칼비, 안달루스 총독 부임. 부당 과세 철폐
- 727년
- 728년
- 6월 : 후다이파 이븐 알 아와스 알 카이시, 안달루스 총독 부임.
- 12월 : 우스만 이븐 아비 니사 알 카타미, 안달루스 총독 선출됨.
- 729년
- 4월 : 알 하이쌈 이븐 우바이드 알 킬라비, 안달루스 총독 부임
- 730년 : 이프리키야 총독, 알 하이쌈 파면. 압둘 라흐만 선임 지시.
- 2월 : 무함마드 이븐 압둘라 알 아슈자이, 안달루스 총독 부임
- 3월 : 압둘 라흐만 이븐 압둘라 알 가피키, 안달루스 총독 부임
- 731년 : 압둘 라흐만, 아키텐 공 오도와 동맹한 세르다냐의 베르베르 반란 진압[11]
- 732년 : 압둘 라흐만, 보르도 점령. 가론 강에서 오도 격파, 투르 방면 북상[12]
- 10월 10일 : 투르-푸아티에 전투. 카를 마르텔, 우마이야 군 격파. 압둘 라흐만 전사
- 12월 : 압둘 말리크 이븐 카탄 알 피흐리, 안달루스 총독 부임
- 733년
- 734년 : 압둘 말리크, 과도한 증세 혐의로 체포됨
- 11월 : 우크바 이븐 알 핫자즈 앗 살룰리, 안달루스 총독 부임
- 735년 : 나르본의 우마이야 군대가 아를 점령, 프로방스 습격[13]
- 736년 : 카를 마르텔, 롬바르드 군의 도움으로 베지에 ~ 아비뇽 점령. 아를 파괴[14]
- 737년 : 아스투리아스의 왕 펠라요 사망, 아들 파빌라 계승 / 카를 마르텔, 나르본 포위. 우크바, 해군 파견해 구원[15]
- 738년
- 739년 : 아스투리아스의 왕 파빌라 사망, 매부 알폰수 1세 계승 / 우크바, 팜플로나에 군대 배치[16]
- 740년 : 베르베르 대항거, 우마이야군 격파. 세우타 파괴됨, 안달루스의 베르베르인도 봉기
- 12월 : 우크바, 마그레브의 베르베르 반군 공격 후 귀환 도중 사망. 압둘 말리크 재차 추대됨
- 741년 : 압둘 말리크, 베르베르 반란 진압 위해 시리아 군단 수용[17] / 알폰수 1세, 갈리시아 정복 개시[18]
- 742년 : 압둘 말리크, 코르도바 외곽에서 십자가형 처해짐[19]
- 3월 : 발즈 이븐 비슈르 알 쿠라이쉬, 안달루스 총독 부임
- 8월 6일 : 아쿠아 포르토라 전투. 발즈, 우마이야 압둘 말리크의 반군 격파[20]
- 8월 8일 : 발즈, 전투 중 부상으로 사망. 쌀라바 이븐 살라마 알 아밀리 추대됨
- 743년 : 내분 격화, 이프리키야 총독 한달라에게 총독 파견 및 중재 부탁
- 3월 : 한달라의 사촌 아불 카타르 알 후삼 이븐 다라르 알 칼비, 안달루스 당도
- 5월 : 알 후삼, 안달루스 총독 부임. 포로 석방, 반군 사면[21]
- 744년
- 745년 : 알 수마일 이븐 하팀 알 킬라비, 모의하여 알 후삼 살해
- 8월 : 공모자 쑤와바 이븐 살라마 알 준다미, 시리아 군단에 의해 추대됨
- 746년
- 10월 : 쑤와바 사망. 압둘 라흐만 알 카티르 알 라흐미, 안달루스 카디 부임
- 747년 : 세쿤다 전투. 알 후삼 사로잡힘
- 1월 : 유수프 이븐 압둘 라흐만 알 피흐리[22], 안달루스 장악
4.1. 후우마이야 조의 설립
- 750년 : 우마이야 왕조 멸망, 자파에서 왕족 80명 학살됨.
- 754년 : 알폰수 1세, 레온 점령. 두에로 무인지대 설정.
- 755년 : 이프리키야 총독 압둘 라흐만, 우마이야 왕족 축출.
- 9월 : 아브드 알 라흐만 1세, 그라나다 남쪽의 알 무네카르 상륙[23]
- 756년 : 아브드 알 라흐만 1세, 말라가에서 지지 세력 결집
- 3월 : 사라고사 반란. 아브드 알 라흐만 1세, 세비야 무혈 입성
- 5월 : 무사라 전투. 아브드 알 라흐만 1세, 유수프 격파하고 코르도바 입성 (코르도바 아미르국)
- 759년 : 프랑크 왕국, 안달루스령 나르본 정복
- 763년 : 아브드 알 라흐만 1세, 톨레도 총독 히샴 이븐 우르와 죽이고 도시 장악. 베자의 알 알라 이븐 무기스, 압바스 조와 연대해 봉기하나 진압됨
- 766년 : 사이드 알 마타리가 세비야에서 반란을 일으키나 진압됨
- 771년 : 아브드 알 가파르 휘하 시리아 인들의 반란
- 774년 : 벰베자르 전투. 아브드 알 라흐만 1세, 시리아인 반란군 격파
- 777년 : 아브드 알 라흐만 1세, 친압바스 반란 진압
- 778년 : 샤를마뉴, 사라고사 공격하나 격퇴됨. 후퇴 도중 론세바예스 전투에서 바스크 족에게 대패
- 781년 : 샤를마뉴, 장남 루트비히를 아키텐 왕으로 봉함.
- 785년 : 루트비히 1세, 지로나 점령 / 기존 성당 건물 바탕의 코드도바 대사원 공사 시작됨
- 788년 : 아브드 알 라흐만 1세 사망, 아들 히샴 1세가 아미르 계승
- 793년 : 후우마이야 군대가 나르본 공격, 카르카손 일대 약탈
- 794년 : 후우마이야 군대가 오르비도 함락, 약탈 후 회군
- 796년 : 히샴 1세 사망, 아들 알 하캄 1세가 아미르 계승
4.2. 국가들의 성립
- 800년 : 루트비히 1세, 바르셀로나 점령
- 801년 : 바르셀로나 백작령 성립됨
- 806년 : 프랑크 군이 팜플로나 점령
- 808년 : 프랑크 군이 토르토사 공격하나 격퇴됨
- 809년 : 반란 일으켰던 리스본 총독 투물루스 처형됨
- 811년 : 샤를마뉴, 타라고나 공격하나 격퇴됨. 마르크 (변경백령) 세워짐
- 813년 : 갈리시아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성 야고보의 무덤 발견됨
- 816년 : 압둘 카림 이븐 압둘 와히드의 우마이야 군이 발라스크 알 얄라스키의 프랑크 군 격파
- 822년 : 히샴 1세 사망, 압둘 라흐만 2세가 아미르 계승
- 824년 : 2차 론세스바예스 전투. 바스크 인들이 프랑크 군 격파, 팜플로나 왕국 세움
- 825년 : 코임브라, 비세우의 우마이야 군이 아스투리아스 침공하나 격퇴됨
- 827년 : 바르셀로나 백작 베르나트, 우마이야 지원받은 고트족의 반란 진압
- 829년 : 메리다에서의 소요 사태
4.3. 북서부 전역
- 839년 : 알폰수 2세, 비세우 공격
- 844년 : 바이킹이 갈리시아 공격하나 라미로 1세에 격퇴됨. 이후 리스본 공격, 세비야 습격하나 우마이야 군에 격퇴됨.
- 848년 : 베르나트 사망, 기욤이 바르셀로나 백작 등극
- 850년경 : 코르도바의 수도승 페르펙투스 등 48인, 무함마드 대한 모욕 철회 거부하고 처형됨
- 852년 : 압둘 라흐만 2세 사망, 무함마드 1세가 아미르 계승
- 859년 : 바이킹이 팜플로나 국왕 가르시아 이니게즈 사로잡고 몸값 받은 후 풀어줌
- 859년 : 알베다 전투. 아스투리아스의 오르도뉴 1세가 무사 이븐 무사 격파
- 871년 : 오르도뉴 1세, 코임브라 점령. 에르메네길도 멘데스 백작 봉함
- 873년 : 윌프레드 바르셀로나 백작 등극, 서프랑크로부터 자치
- 878년 : 바르셀로나 백작위 세습 시작 (바르셀로나 가문)
- 886년 : 알 문디르, 아미르 등극. 안달루스 내전 발발
- 888년 : 압둘라 이븐 무함마드 아미르 등극
- 905년 : 산초 1세, 레온과 바누 카시 등의 도움으로 팜플로나 왕위 찬탈 (나바라 왕국)
- 912년 : 압둘 라흐만 3세, 아미르 등극.
- 913년 : 오르도뉴 2세, 에보라 점령. 오비에도에서 레온 천도 (레온 왕국)
- 916년 : 발데준게라 전투. 압둘 라흐만 3세, 오르도뉴 2세 격파
- 917년 : 산 에스테반 데 고메즈 전투. 오르도뉴 2세, 압둘 라흐만 3세 격파
- 919년 : 우마이야 군이 재차 산 에스테반 데 고메스 습격. 교황 요한 10세, 마조라베 성직자 정통성 인정
- 920년 : 발데준게라 전투. 압둘 라흐만 3세, 레온 군대 격파. 산 에스테반 데 고메즈 점령. 우마이야 군이 가스코뉴 습격. 무에즈 수비대 학살, 툴루즈 앞까지 진출
- 924년 : 압둘 라흐만 3세, 팜플로나 함락. 도시 파괴
- 929년 : 압둘 라흐만 3세, 칼리파 칭함 (코르도바 칼리파)
[1] 29일, 30일이란 기록도. 병력 7천이라고도. 대부분 베르베르인, 무사의 삼남 마르완과 사남 압둘 아지즈 등 소수의 아랍인 대동.[2] 본래 타리크와 톨레도에서 합류 예정. 타리크는 세비야 놔두고 북상했었음.[3] 발렌시아, 무르시아, 알리칸테, 로크라 등지의 종교적 자유 및 자치. 다만 연공 바치고 이슬람의 적을 불러들이지 않는다는 조건.[4] 로데릭의 잔존 병력 집결하여 결사 저항, 승자 없는 소강전 이어감. 결국 세우타 출신의 7백 병력이 기독교도 원군으로 위장해 입성, 성문 장악하고 우마이야 군대가 돌격하여 겨우 점령함. 이후 군대 양분, 대다수는 자신과 톨레도의 타리크와 합류해 월동. 나머지는 아들 압둘 아지즈에게 주어 세비야의 봉기 진압하게 함.[5] 사라고사 점령 시에 아킬라 2세 전사, 아들 아르도가 셉티마니아에서 왕위 이어감.[6] 그 전에 타리크가 다마스쿠스에 보낸 사절 무기트 알 루미가 돌아와 소환 명령을 알렸으나 방치해 두면 서고트 측이 반격할 것을 직감한 무사는 귀환을 미루고 북부 비스케이 만에 다다른 후에야 세비야로 돌아와 타리크가 먼저 떠난 후에 귀환. 장남 압둘라에게 이프리키야 총독위, 차남 압둘 말리크에겐 탕헤르와 세우타,, 사남 압둘 아지즈에게 안달루스 총독위 맡김. 마지막 원정에서 나바라, 갈리시아, 아스투리아스 등지가 점령되나 피레네 산맥 중부와 칸타브리아는 남겨져 후환이 됨.[7] 4백여 관료들과 당도했다고 함. 반도 남부에 카디 (재판관) 파견하고 세금 체제 확립하는 등 지배 확고히 함, 베르베르 군인들이 임의로 차지한 재물 반환케하고 그외의 불법적으로 몰수된 토지 원주인에게 돌려줌[8] 칸타브리아 산지의 아우베사 산에 위치한 동굴 앞에서 벌어짐[9] 이후 나르본은 아르부나로 명명되어 프랑스 진군 위한 전초기지가 됨.[10] 카르카손은 기습으로 점령되었고 님은 항복, 복속의 뜻으로 인질 보냄. 인질은 바르셀로나로 후송됨[11] 아키텐의 오도는 카를 마르텔의 위협에 맞서느라 (사위?) 세르다냐의 우스만 이븐 나이사 (무누자) 돕지 못함.[12] 진압 후 압둘 라흐만은 곧장 피레네 넘어 가스큐뉴 진군, 오슈 점령하고 보르도 (알 부르딜) 기습 점령. 후자 수비대장 전사. 한편 안달루스 군대가 가스코뉴 일대 수도원 약탈하는 동안 오도는 군대 재정비하고 카를 마르텔에게 복속, 지원 요청[13] 지휘관은 후에 총독이 되는 유수프 이븐 압둘 라흐만[14] 아를의 무슬림 수비대가 프랑크 군에 반격한 것에 대한 보복 겸 다시 무슬림들의 거점이 되는 것을 방지하고자 전소됨[15] 카를 마르텔, 지원군마저 격파하였으나 공성병기 부족해 철수함[16] 하지만 북아프리카에서 터진 베르베르 반란 소식에 코르도바로 귀환[17] 베르베르 반란에 맞서 시리아에서 파견된 쿠틀룸은 그들을 과소평가하고 바그도우라 전투에서 대패, 부관 발즈가 남은 병력과 세우타로 피신. 베르베르 군에 포위당한 발즈는 수차례 압둘 말리크에게 대피 위해 선박 파견해 줄 것을 청했으나 묵살당함. 한편 갈리시아 등지의 베르베르 인들도 봉기, 톨레도 위협. 코르도바까지 위기에 처한 상황에 이르러서야 압둘 말리크는 도움 얻기 위해 반란 진압 도운 후 안달루스 떠나는 조건으로 선박 보내 시리아 군단 들여옴[18] 우선 740년 갈리시아 등지의 아랍 주둔군 철수, 이듬해엔 베르베르 인들도 그곳 떠나 남하. 톨레도, 코르도바, 지브롤터의 3개 방면으로 진군. 이 틈에 아스투리아스 왕국이 영토 확장 개시. 패배한 베르베르 인들이 돌아왔지만 750년의 대가뭄 때에 고향 마그레브로 탈주하자 인구 불리는 것에서 나아가 정착[19] 톨레도 포위하던 베르베르 군은 압둘 말리크의 아들이 격파, 지브롤터 향하던 베르베르 군은 발즈가 알 헤시라스에서 격파. 이후 압둘 말리크는 약속대로 발즈에게 떠날 것을 요구하나 발즈는 대신 코르도바로 진군함[20] 우마이야는 압둘 라흐만 이븐 하빕이 이끄는 북아프리카 병력과 거병, 패한 후 북부로 도주해 재규합[21] 모든 전투 중단시키고 시리아 군을 해산, 대신 그들에게 봉토를 나눠주었음. 출신별로 다마스쿠스는 그라나다, 홈스는 세비야와 니에블라, 킨나스린은 하엔, 요르단은 말라카, 팔레스타인은 시도니아와 헤레스, 콥트인들은 베자와 무르시아 등 주로 남부에 영지를 하사하며 소득 1/3을 세금으로 내되 필요할 때 군역을 질 것을 조건으로 둠[22] 730년대 나르본 태수 지내며 여러 차례 남부 프랑스 습격한 인물, 이프리키야 총독 압둘 라흐만의 아들이자 알 수마일의 장인. 등극 도움 대가로 알 수마일에게 톨레도, 후에 사라고사에 반독립적인 지배권 하사[23] 유수프 휘하 장수들의 도움을 받아 모트릴 부근의 외진 곳에 상륙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