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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5 15:55:07

려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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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3. 참고문헌

1. 개요

북한의 정치인.

여운형의 딸이며, 려연구의 동생이다.

2. 생애

1928년 11월 15일, 서울 종로구에서 태어났다. 서울에서 재동보통소학교를 다녔다. 해방 이후에는 서울여전, 현재의 서울여자대학의 철학과에서 재학했다. 여운형은 미군정이 자신의 딸들을 미국 유학을 핑계로 볼모로 잡을 것을 우려하여 1946년 7월 3일, 언니 려연구와 함께 비밀리에 월북하였다. 이후 김일성의 집에서 잠시 지내다가 언니와 함께 모스크바 대학으로 유학을 떠나 전기기계공학을 전공하였다. 1952년 9월에 학업을 마치고 귀국, 김책공업대학 교원으로 배치되었다.

이후 한동안 평범한 교원으로 살아가다가 1978년 11월, 김중린과 대화 중이던 김일성이 여운형의 자식들이 북한에 있다는 것을 기억해내고 중용하기 시작했다. 북한 선전 매체 려명에 따르면 해외동포사업부 부부장을 지냈다. 1989년 1월, 교포사업총국 부국장에 임명되었으며, 1991년 2월, 정무원 교육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냈다. 1998년 2월, 범민련 북측본부 부의장에 선출되었으며 1998년 4월, 조국전선 의장에 선출되었다.

1998년 9월, 10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되는 한편 언니 려연구가 가졌던 자리인 최고인민회의 부의장에 선출되었다. 1999년 7월, 김병식 장의위원을 지냈다. 2002년 8월, 8.15 민족통일대회에 참석차 서울을 방문하면서 아버지 여운형의 묘소를 참배했다. 2003년 9월, 11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및 부의장에도 재선되었으며 2005년 6월, 조국통일상, 2007년 3월, 김일성 95세 생일 기념 김일성훈장을 받았다. 2008년 11월 5일, 김정일이 팔순 생일상을 하사하였다.

2009년 7월 30일, 만 80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와 조국전선 서기국은 연명으로 부고를 발표, "동지는 우리 당의 주체사상, 선군사상으로 튼튼히 무장하고 생명의 마지막순간까지 당의 령도에 무한히 충실하였다."라고 좋게 말해주었다.

3.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