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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2-27 13:37:04

로리 휴즈

로리 휴즈의 역임 직책
{{{#!folding [ 펼치기 · 접기 ]
리버풀 FC 주장
빌 존스
(1953~1954)
로리 휴즈
(1954~1955)
빌리 리델
(1955~1958)
}}} ||
파일:Laurie Hughes.jpg
이름 로리 휴즈
Laurie Hughes
출생 1924년 3월 2일
잉글랜드 리버풀
사망 2011년 9월 9일 (향년 87세)
잉글랜드 리버풀
국적
[[잉글랜드|]][[틀:국기|]][[틀:국기|]]
포지션 센터 하프
신체조건 183cm | 78kg
소속팀 리버풀 FC (1943~1960)
국가대표 3경기 (잉글랜드 / 1950)

1. 개요2. 생애
2.1. 선수 생활2.2. 이후
3. 플레이 스타일 & 평가4. 수상
4.1. 클럽

[clearfix]

1. 개요

잉글랜드의 전 축구 선수.

2. 생애[1]

2.1. 선수 생활

2.1.1. 클럽

휴즈는 제2차 세계 대전 중이었던 1943년 리버풀과 계약을 체결했다. 그는 1946년 1월에 FA컵 3라운드를 통해 데뷔했다. 그리고 휴즈는 전쟁 후 처음 공식적으로 열린 1946-47 잉글리시 풋볼 리그에서 리버풀의 42경기 중 30경기에 출전하며 1부 리그 우승에 기여했다.

리버풀은 1949-50 FA컵 결승에 올라갔지만 아스날에 0:2로 패해 우승에 실패했다. 휴즈는 리버풀 커리어에서 그렇게 마지막 메이저 타이틀을 차지할 기회를 놓쳤고 1950년 FA 커뮤니티 실드에서 부상을 입으며 기량도 조금씩 내리막을 탔다.

리버풀은 1952-53 시즌에 간신히 강등을 피했지만 결국 1953-54 시즌에 디비전 꼴찌를 기록하며 2부 리그로 떨어졌다. 하지만 휴즈는 리버풀에 끝까지 남았고 리버풀의 강등 첫 시즌에 리버풀의 캡틴으로 선임되었다. 휴즈의 주장 임기는 1시즌 만에 끝났고 후임 주장 빌리 리델이 이어받았다.

1956-57 시즌에 휴즈는 선수로써의 마지막 불꽃을 태웠지만 1957년 9월 28일에 있었던 찰턴전이 그의 마지막 경기가 되었다. 그는 3년여간 클럽에 충성심을 보이며 복귀를 위해 노력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고 결국 1960년 5월에 은퇴했다.

2.1.2. 국가대표

휴즈의 유일한 대표팀 커리어는 1950년 월드컵 무대였다. 휴즈는 당시 잉글랜드 대표팀 멤버 중 유일한 리버풀 선수였고 잉글랜드의 3경기에 모두 출전했다. 하지만 잉글랜드는 스페인에 밀려 결선 리그 진출에 실패했다.

휴즈는 1950년의 FA 커뮤니티 실드에서 부상을 입으며 대표팀에 소집되지 못했으며 현재까지 잉글랜드에서 유일하게 모든 A매치 커리어를 FIFA 월드컵에만 출전한 진기록을 보유한 선수로 남아있다.

2.2. 이후

휴즈는 식료품점을 운영하다가 1964년, 훔친 물건을 받아서 판매한 혐의로 20파운드벌금을 부과받기도 했다.

휴즈는 2011년, 87세의 나이로 자택에서 사망했다.

3. 플레이 스타일 & 평가

휴즈의 주포지션은 센터 하프백이었지만 측면 하프백도 소화가능했다. 그는 강한 피지컬로 수비지향적인 선수였으며 문제가 커지기 전에 파울로 끊는 플레이를 주로 펼쳤다.

4. 수상

4.1. 클럽[2]



[1] 출처: 위키피디아, 11v11[2] 휴즈는 리버풀 FC 원 클럽 플레이어이므로 팀 이름 기입은 생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