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로저 피츠마일즈 Roger Fitzmiles | |
생몰년도 | 1125년 이전 ~ 1155년 | |
출생지 | 잉글랜드 왕국 헤러퍼드 | |
사망지 | 잉글랜드 왕국 솔즈베리 | |
아버지 | 글로스터의 마일즈 | |
어머니 | 시빌 드 뇌프마르세 | |
누이 | 마거릿, 월터, 헨리, 마헬, 윌리엄, 베르타, 루시 | |
아내 | 세실리 피츠존 | |
직위 | 제2대 헤러퍼드 백작 |
[clearfix]
1. 개요
잉글랜드 왕국의 귀족, 군인. 제2대 헤러퍼드 백작. 무정부시대 시기에 마틸다의 편에 서서 스티븐 왕과 대적했다.2. 생애
1125년 이전에 초대 헤러퍼드 백작 글로스터의 마일즈와 브리체이니오그의 지배자 베르나르 드 뇌프마르셰의 딸인 시빌 드 뇌프마르세의 장남으로 출생했다. 형제로 마거릿[1], 월터[2], 헨리[3], 마헬[4], 윌리엄[5], 베르타[6], 루시[7]가 있었다.1136년 헤러퍼드셔와 슈롭셔의 보안관인 페인 피츠존의 딸 세실리와 결혼했다. 이듬해 12월, 스티븐 왕은 세실리가 그녀의 아버지가 가졌던 모든 영지를 상속하는 걸 확인했다. 이후 무정부시대가 발발했을 때 아버지와 함께 마틸다의 편에 서서 스티븐 왕에 대적했다. 1143년 12월 24일 아버지가 사냥 사고로 사망한 뒤 제2대 헤러퍼드 백작이 되었다. 그는 아버지를 파문하고 헤러포드 주교구에 성무 금지령을 내린 헤러퍼드 주교 길버트 폴리엇에게 강한 반감을 품고, 길버트의 친구인 랜서니 수도원장이 사임하도록 강요했으며, 헤러퍼드 주교의 영지를 연이어 약탈하다가 3번의 경고 끝에 정식으로 파문되었다. 하지만 그는 이를 무시하고 딘 숲 내에 시토회 수도원인 플랙슬리 수도원을 세웠는데, 아마도 아버지가 죽은 그 자리에서 세웠을 것이다.
1144년 초 마틸다와 함께 데바이즈 성에 머물렀고, 1147년 글로스터의 로버트가 사망한 뒤 잉글랜드에 잔존한 마틸다 추종 세력의 지도자가 되었으며, 이는 그와 로버트의 아들이며 제2대 글로스터 백작인 윌리엄 피츠로버트 간의 협약으로 공인되었다. 1149년 마틸다의 아들 헨리 플랜태저넷과 함께 칼라일로 북상해 스티븐 왕과 추종자들의 영지를 습격해 약탈을 자행하는 활동을 수행했다. 1154년 스티븐 왕이 사망하고 헨리 2세가 단독 군주가 된 뒤 왕권 강화를 추진하자 자기 특권이 위협받는 거라 여겨 여러 차례 반대했지만, 1155년 3월 헤러퍼드 주교의 설득을 받아들여 자기 성을 넘기는 대신 아버지의 영지 거의 대부분을 인정받는 헌장에 서명했다. 그 해 7월 브리지노스에서 왕과 함께 있었고, 그 직후 솔즈베리에 있었다. 이 해에 자녀를 낳지 못한 채 사망했다. 그의 영지는 형제 월터에게 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