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나 백작으로 분한 드미트리 흐보로스톱스키
1. 개요
주세페 베르디의 오페라 일 트로바토레의 주역이자 악역.바리톤 가수가 맡는 역할 중에 하나로, 정확히는 드라마티코 음색을 가진 바리톤의 배역이다.[1] 마마보이 기질을 가진 만리코에 비해 인품과 카리스마까지 갖춰져 있기 때문에, 주세페 베르디의 오페라 속 바리톤 배역 중 돈 카를로의 로드리고에 버금갈 정도로 인기가 많은 캐릭터다. 주인공 만리코와 히로인 레오노라 보다 더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을 정도.
2. 작중행적
첫 등장은 1막 2장. 초반부터 혼자 나오자마자 레오노라에 대한 일편단심 돋는(?) 사랑과 스토킹의 본성을 보여준다.[2] 첫 등장 시에 남기는 말은 그야말로 속된 말로 손발이 오그라든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노골적인 구애의 멘트라고 할 수 있다.
"조용한 밤이로군. 왕녀는 분명 잠들어 있겠지. 그렇지만, 레오노라..나의 그대여. 그대는 아직도 잠들지 않았구료. 그대의 방 창문에선 램프의 불이 아직도 비추고 있잖소. 아! 내 몸은 그대의 사랑으로 불태워지는구료. 난 그대를 만날것이고, 그대 역시 내 것이 되어야만하오. 나 지금 당장 그대를 만나러 방으로 들어가리라."
=루나 백작이 대사를 날리자마자 레오노라의 방으로 들어가려는 찰나, 하필이면 멀리서 음유시인의 노래가 백작이 있는곳 가까이 들려오게된다. 이 음유시인이 바로 백작의 연적이자 주인공 만리코이다. 아직까지 음유시인의 정체를 모르는 백작이지만 그가 부르는 연가를 듣고는 단숨에 자신의 라이벌임을 깨닫고 단숨에 분노가 끓어오르게 된다.
그 때, 레오노라가 만리코의 연가를 듣고 밖으로 나오게된다. 레오노라의 인기척을 느끼자 루나 백작은 외투로 자신의 얼굴을 가린다.[3] 레오노라는 어둠 속에서 백작을 만리코로 착각하고 그에게 달려가서 안기려고 하지만 만리코가 그 모습을 보고 그녀를 비난한다. 레오노라는 만리코에게 오해를 풀라고 하지만 이미 루나 백작과 만리코는 신경전이 벌어지게 되고, 이에 만리코는 루나 백작에게 자신의 정체를 밝히게 된다. 이에 루나 백작은 "네 놈은 사형선고를 받은 우르헬의 반역자가 아닌가!? 용케 여기까지 직접 찾아오다니 미친 녀석이로군."라고 말하면서 레오노라를 사이에 둔 결투까지 하게되는데 여기서 만리코와 레오노라, 루나백작의 1막을 마무리하는 삼중창이 시작된다.[4]
1957년 TV방송용 영화 일 트로바토레. 루나 백작역의 에토레 바스티아니니, 만리코역의 마리오 델 모나코, 레오노라역의 레일라 젠체르. 루나 백작의 원조라 불리는 에토레 바스티아니니의 모습을 볼 수 있지만 연출이 너무 정적이다는 것과 음질과 화질도 좋지 않다.
1977년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지휘한 빈 국립 가극장 실황에서 3중창을 부르는 피에로 카푸칠리와 플라시도 도밍고, 라이나 카바이반스카. 카푸칠리의 루나 백작은 기품이 넘치고, 성악적으로 가장 안정되어 있으며 질투심마저 잘 표현하고 있다.[5] 진정 벨 칸토를 들려주는 최강의 트리오!
2002년 런던 오페라 하우스 코벤트 가든 극장 실황. 루나 백작역의 드미트리 흐보로스토프스키, 만리코역의 호세 쿠라, 레오노라역의 베로니카 비야로엘.
2011년 4월 메트로폴리탄 극장 일 트로바토레 공연에서 3중창을 부르는 드미트리 흐보로스토프스키, 마르첼로 알바레스, 손드라 라드바노프스키.
3. 캐릭터에 대한 평가
루나 백작은 주인공인 만리코와 히로인 레오노라 보다 인기가 굉장히 많으며 바리톤들이 맡은 배역들중에서 에르나니의 카를로 국왕, 돈 카를로의 로드리고, 시몬 보카네그라와 더불어 개성이 강하고 매력적인 요소까지 골고루 갖춘 바리톤 캐릭터로 꼽히고있다. 이유인즉슨 카리스마와 인품, 한 여인에 대한 일편단심[6]과 집요한 스토커의 기질[7], 감미로운 연가 "그대의 미소는 아름답고(Il balen del suo sorriso)", 만리코에 비해 더 확실하게 느껴지는 인간미와 나름 불행한 과거를 가지고있기 때문이다.[8] 이 때문에 만리코와 레오노라 보다 더 인기가 많은 캐릭터 라는 것.[9] 뿐만 아니라, 관객들에게 동정도 많이 받는 배역[10]이기도 하며, 악역 캐릭터로 분류하기엔 너무 아깝다는 평가도 많이 받는다.[11] 작중에서 간혹 질투심이 강한 모습도 선보이지만 그것도 루나 백작의 매력이라는 평이 있을 정도...기본적으로 루나 백작을 인품과 인간미가 넘치는 캐릭터로 보고있는데, 최근에는 레오노라를 너무 사랑하는 나머지 완전히 미쳐버려서 광기마저 돋게 해주고, 그로 인해 자신의 동생과 사랑하는 여인을 파멸로 몰아버리는 캐릭터로 보는 시각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 점도 설득력있는 해석이며, 그로 인해 루나 백작의 매력을 더욱 증폭시켜준다는 얘기도 상당수.[12]
정리하자면, 매력적인 요소를 상당히 갖춘 동시에 불쌍한 면이 한,둘이 아닌 캐릭터. 자신이 그토록 사랑을 주고싶었던 여인은 갑자기 나타난 연적이자 마마보이에게 연심을 품은데다 헌신까지 하는 바람에 자살해버리고, 마지막에는 얀데레 집시 아줌씨의 농간으로 자신의 친동생마저 잃게 되었다. 이 비극의 원인은 작중에선 이미 죽은 바람에 언급만 되어진 루나 백작의 아버지라는 얘기도 있지만, 대본 작가인 살바토레 캄마라노가 만리코에게 주인공 보정을 부여한 탓(?)도 있다.
하지만, 바리톤들이 제대로 소화하기엔 굉장히 어려운 캐릭터가 바로 루나 백작이기도 하다. 거의 대부분의 바리톤들이 루나 백작을 전형적인 악당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13] 반대로, 루나 백작을 너무 얌전하게 해석하는 바리톤들[14]도 꽤 존재하고, 더 심하면 토마스 쉬퍼스판의 로버트 메릴이나 메트로폴리탄 실황음반의 마리오 세레니처럼 진지함과 개성이 결여된 개그 캐릭터(!!!)로 만드는 경우도 상당하다.
또, 아무리 가창으로 루나 백작을 잘 표현해도 비쥬얼이 많이 깨진다면 그 역시 불한당이나 개그 캐릭터로 보인다는 평가를 받은 바리톤도 있다.[15] 대표적으로 1985년 베로나 야외극장 실황에서 루나 백작을 맡았던 조르지오 찬카나로. 찬카나로의 루나 백작은 비쥬얼 세대의 시각에서 "노래는 괜찮은데, 생긴것은 완전 야쿠자"라는 평을 받았다.[16]
야쿠자 얼굴의 루나 백작 ①
야쿠자 얼굴의 루나 백작 ②
야쿠자 얼굴의 루나 백작 ③
야쿠자 얼굴의 루나 백작 ④
따라서, 루나 백작은 노래 뿐만 아니라 연기와 표현 모두 잘해야 관객들에게 더욱 동정을 받을 수 있는 역할이다. 그렇지 않으면 관객들에게 단순한 악당캐로 보이게 만들 수 있다는거. 그러므로 루나 백작을 연기하려는 바리톤 음역의 성악도가 있다면 이 점을 반드시 염두에 두고 부르도록 하자.
4. 루나 백작으로 찬사를 많이 받은 바리톤들
루나 백작을 부르는 바리톤은 많지만, 그 캐릭터에게 생기를 부여하거나 성공적으로 확립케해준 가수는 거의 드물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전형적인 악역으로 묘사하거나, 재미없는 캐릭터로 만들거나, 허세만 부리는 개그 캐릭터로 만드는 경우가 상당수이기 때문이다.루나 백작이 많은 팬들에게 단순한 악역이 아님을 보여준 계기는 1950년대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 유럽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에토레 바스티아니니가 등장하고나서 부터였다.
[1] 그 만큼 높은 음역도 요구한다.[2] 여기서 보여지는 루나 백작의 스토킹 본성은 그나마 약과에 속한다. 본격적인 스토킹 파워는 2부에서 드러난다.[3] 이 부분은 연출 감독에 따라 다르다. 날이 어두운 상황이라는 점은 같지만 1977년 빈 국립 가극장 실황처럼 레오노라가 루나 백작의 뒷모습을 보고 만리코로 착각해서 안아버리는 연출도 있고, 어떤 실황에서는 레오노라가 루나 백작의 안면을 보고도 사랑하는 이에 대한 황홀감에 빠져 키스하려다 만리코한테 들키는 연출도 있기 때문이다. 2011년 4월 메트로폴리탄 맥피커 프로덕션에 의한 일 트로바토레 실황에서는 레오노라가 만리코의 노래를 듣고 밖에 나오자마자 너무 황홀해진 상태에서 벽에 몸을 기대다가 그 틈을 탄 루나 백작에게 손을 강하게 잡혀버리는 연출로 처리되었다. 물론, 레오노라 자신이 착각한것을 알고는 백작의 손을 깨물고 탈출한다음 원작대로 만리코한테 얼른 다가가서 사과하지만... 여기서 은발의 미중년 바리톤인 드미트리 흐보로스톱스키를 거절하고 통통한 체형의 마르첼로 알바레스를 사랑하는 레오노라가 이해가 안 된다는 말까지 있다.[4] 이때 "레오노라, 그대는 내게 분노를 끓게 만들었소. 저 놈의 피를 보지 않는 한 나의 분노는 풀릴 수가 없소. 감히 저 놈에게 사랑한다고 말한거요? 나는 저 놈을 반드시 죽여야겠소!(Di geloso amor sprezzato Arde in me tremendo il foco! Il tuo sangue, o sciagurato, Ad estinguerlo fia poco!)"라고 내뱉은 루나 백작의 대사를 보면 일편단심에 스토커에, 은근히 열등감이 강한 모습마저 엿보이는 캐릭터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5] 이 때문에 카푸칠리의 루나 백작이 전혀 스토킹의 제왕같지 않다라는 비판도 간혹 존재한다. 일본과 미국 쪽 한정이지만...[6] 물론, 그것때문에 답답하다는 시청자도 있다. "루나 백작이 레오노라같은 히로인 말고 다른 여자를 선택하면 더 좋았을 것을..."라고 말하는 팬도 있을 정도.[7]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루나 백작은 오페라 팬들 사이에서 킹콩이나 바야바를 연상케하는 스토킹의 제왕이라 불리고 있다. 물론, 같은 바리톤이라도 미성의 목소리를 가진 동시에 카리스마가 촬촬 느껴지는 가수가 맡게되거나 은발의 귀공자같은 비주얼 뛰어난 사람이 연기하면 "스토킹의 제왕이라도 괜찮아. 섹시하니까. 멋지니까."라는 나름대로의 호평을 받기도 한다.[8] 만리코의 스포일러를 생각하면 루나 백작도 참으로 기구한 인생을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9] 캐릭터 인지도로 치면 아주체나가 1위, 그 다음이 루나 백작이고, 그 다음이 백작의 부하 페란도이며, 꼴찌는 당연히(?) 만리코라는 말이 있다..[10] '시베리아의 호랑이'라고 불리던 드미트리 흐보로스토프스키가 이 배역을 맡기 시작했을때, 루나 백작에 대해 동정을 느끼는 여성 관객도 많이 늘어났다고 한다. "저런 섹시한 은발 백작님을 거절하고 만리코 같은 마마보이에게 연심을 품는 레오노라를 정말 이해할 수 없다."라는 말이 생겼을 정도니...[11] 사실 루나 백작은 악역이라고 하기엔 그 입장이 애매한 인물이다. 일단, 작중에서 약탈같은 악랄한 짓을 하는 장면은 없기 때문이다. 즉, 악역이라기 보단 주인공과 반대되는 세력쪽에 서있는 인물이라고 봐야한다.[12] 루나 백작의 카발레타 "내 삶은 내 뜻대로 진행되리라.(Per me, ora fatale)"를 들어보면 전자보다 후자가 더 설득력이 넘친 해석이다.[13] 대표적인 예로 마리아 칼라스판의 롤란도 파네라이, 리처드 보닝이 지휘한 음반의 잉그바르 빅셸, 몽셰라 카바예가 출연한 오랑쥬 실황의 피터 글로소프. 이들은 매우 불한당스러운 루나라는 평을 많이 받았다.[14] 이쪽은 대표적으로 유시 비욜링과 같이 녹음한 레너드 워렌. 가창 자체는 나쁘지 않지만 루나 백작을 너무 얌전한 캐릭터로 만들었다는 평을 받았다. 워낙 옛날 녹음이라서 어쩔 수 없었던 사항이었다만...리카르도 무티가 지휘한 라 스칼라 실황의 레오 누치도 이런 평가에 해당되는 바리톤으로 꼽힌다.~[15] 옛날이면 그냥 넘어갔는데, 요즘은 비쥬얼이 워낙 중시된 시대이다보니...[16] 찬카나로의 야쿠자 스타일(...) 루나 백작은 1985년 베로나 야외 극장 실황 한정이다. 그의 다른 영상들을 보면 에토레 바스티아니니나 피에로 카푸칠리가 루나 백작으로 분했던 모습과 상당히 비슷한데...문제는 1985년 베로나 실황만이 그의 일 트로바토레 영상물로 출시되는 바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