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 밀란으로 이적한 첫시즌인 1987-88 시즌부터 뛰어난 활약을 보였다. 이때 당시에는 굴리트는 팀동료 마르코 반 바스텐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았고 팀의 에이스로 평가받았다. 리그 우승 경쟁을 하던 나폴리의 디에고 마라도나와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였고, 나폴리와의 맞대결 2경기 모두 1골 1도움을 기록하며 완승을 이끌었고 팀은 굴리트의 활약으로 세리에 A 우승을 이루었다. 이 활약으로 굴리트는 1987년발롱도르를 수상한다.
1989-90 시즌에도 SL 벤피카를 격파하고 유러피언컵 2연패를 달성했지만, 굴리트는 88년부터 발생한 무릎 부상이 반월판 부상으로 커지며 시즌을 거의 벤치에서 보내야 했다. 마라도나의 라이벌이었고 87-88 시즌엔 그에게서 리그 우승컵을 가져오기도 했으나 부상으로 인해 라이벌리를 이어가지 못했고 월드컵에서도 부진했던 탓에 마라도나의 라이벌 자리는 그와 2차례 월드컵에서 맞대결해 1승 1패를 기록하고 자서전에서 직접 인정했던 로타어 마테우스에게 넘어가게 된다.
다음시즌인 1990-91 시즌부터 적용된 새로운 오프사이드 규정으로 인해 사키이즘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긴 수비전술에 변수가 발생하며 어려움을 겪었다. 또 유러피언컵 4강에서는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를 만나 밀란이 패배했다. 여기서 밀란은 조명이 망가져 재경기를 해야한다고 억지를 부리며 그냥 경기장을 떠나버렸고 이에 UEFA는 1년간 유러피언컵 출전 금지를 내린다. 사키는 이를 마지막으로 밀란을 떠났지만 파비오 카펠로 감독이 부임해 그의 밀란을 잘 계승해내며 다시 전성기를 이끌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