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벤 모란의 수상 이력 | |
{{{#!folding ▼ | FIFA 월드컵 우승 멤버 |
우루과이의 前 축구선수 | |
<colbgcolor=#eee> 이름 | <colbgcolor=#ffffff,#191919> 루벤 모란 Rubén Morán |
출생 | 1930년 8월 6일 |
우루과이 몬테비데오 | |
사망 | 1978년 1월 3일 (향년 47세) |
국적 | [[우루과이| ]][[틀:국기| ]][[틀:국기| ]] |
직업 | 축구 선수 (포워드 / 은퇴) |
신체 조건 | 171cm, 71kg |
소속 | CA 세로 (1949-1954) 데펜소르 스포르팅 (1954) CA 세로 (1954-1961) |
국가대표 | 5경기 1골 (우루과이 / 1950~19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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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우루과이의 전 축구 선수.2. 클럽 경력
1954년에 데펜소르 스포르팅 소속이었던 것을 제외하면 모란은 거의 모든 클럽 커리어를 CA 세로에서 보냈다. 1953년 시즌이 끝나고 모란은 CA 보카 주니어스와 일부 스페인 클럽들로부터 이적 제의를 받았다고 세로 구단에 보고 했고 소속팀은 모란에 더 좋은 제의를 약속했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모란은 이때 데펜소르에 잠시 팀을 옮기게 되었다. 그러나 데펜소르에서 모란은 단 4경기 출전에 그쳤다.모란이 선수 생활을 할 당시의 우루과이 리그는 페냐롤과 나시오날의 양강 체제여서 모란의 커리어에서 리그 최고 성적은 1960년의 리그 준우승이었다.
3. 국가대표 경력
모란은 1950년 4월 7일, 산티아고에서 치러진 칠레와의 경기에서 우루과이 대표팀에 데뷔했다. 그는 후반 44분에 우루과이가 5대1로 달아나도록 하는 쐐기골을 넣었다.모란은 1950년 월드컵에 출전하는 우루과이 대표팀의 명단에 들었고 당시 만 19세의 젊은 선수였다. 이때 모란은 에르네스토 비달의 백업이었고 경기에 나설 확률이 높지 않았다. 하지만 결선 리그 2번째 경기였던 스웨덴전에서 비달이 부상을 입어 마지막 일전에 출전이 불투명해졌다. 당시 우루과이의 감독 후안 로페스에게 비달을 빼고 모란을 집어넣는 것은 대단한 모험이었다.
브라질과의 일전을 앞두고 비달에게 그를 스타팅에서 제외하겠다고 말하는 것은 제게 가장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비달은 마지막 경기를 놓치고 싶지 않아했으니까요. 그는 제 말에 크게 화를 냈지만 저는 그가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내버려뒀습니다. 그 후 그는 제 결정에 동의했고요
후안 로페스
후안 로페스
모란 역시 감독의 기대에 부응하면서 마라카낭 대첩에 기여했다. 이렇게 모란은 당시 역대 최연소 FIFA 월드컵 우승 선수이자 역대 최초의 10대 월드컵 우승 선수가 되었다.[1]
이후 모란은 1953년 남아메리카 챔피언십에서 2경기를 더 뛰었다.
4. 은퇴 이후
모란은 선수 은퇴 이후 공무원 일을 했다고 한다.모란은 1950년 월드컵에서 우승한 우루과이 멤버들 중 가장 어린 선수였지만 1978년에 사망했을 때 가장 어린 나이에 사망한 선수도 되었다.
5. 수상
5.1. 대회 기록
- CA 세로 (1949~1954, 1954~1961)
-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준우승: 1960
- 우루과이 축구 국가대표팀
- FIFA 월드컵: 1950
[1] 모란의 월드컵 최연소 우승 선수 기록은 8년 후, 당시 17세였던 소년 선수가 가져갔고 이 기록은 현재까지 깨지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