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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6 18:15:41

루벤 베넷


스코틀랜드의 前 축구인
파일:Wha _daur_ meddle_wi _me.jpg
루벤 베넷
Reuben Bennett
<colbgcolor=#eeeeee,#191919> 출생 1913년 12월 21일
스코틀랜드 애버딘
사망 1989년 12월 14일 (향년 75세)
잉글랜드 머지사이드리버풀
국적
[[영국|
파일:영국 국기.svg
영국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 (
[[스코틀랜드|
파일:스코틀랜드 국기.svg
스코틀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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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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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령
]])
직업 축구선수(골키퍼 / 은퇴)
축구 감독
축구코치
소속 <colbgcolor=#eeeeee,#191919> 선수 헐 시티 AFC
퀸 오브 더 사우스
던디 FC (1946~1949)
엘긴 시티
지도자 에어 유나이티드 FC(1953~1955 / 감독)
머더웰 FC (?~? / 코치)
서드 라나크 AC (?~? / 코치)
던디 FC (?~? / 코치)
리버풀 FC (1958~1986 / 코치)

1. 개요2. 선수 경력3. 지도자 경력4. 말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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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영국(스코틀랜드)의 축구인으로, 리버풀의 전성기 붉은 제국을 이끈 레전드 코칭 스태프 중 한 명이다. 베넷은 빌 샹클리가 리버풀에 부임하기 이전부터 리버풀에서 코치로 근무하였고 이후 '부트 룸(Boot Room)'의 핵심 멤버이자 팀의 피지컬 및 피트니스 총괄 코치로 활약하였다. 베넷은 샹클리와 밥 페이즐리, 조 페이건 감독을 거쳐 리버풀의 전성기가 케니 달글리시 체제에 이어지기까지 약 30년간 팀의 핵심 코치로서 헌신하였다.

2. 선수 경력

베넷은 선수 시절 헐 시티와 스코틀랜드 덤프리즈에 위치한 퀸 오브 사우스에서 골키퍼로 활약했다. 이후 제2차 세계 대전으로 리그가 중단되었고 베넷은 입대하여 군 복무를 하게된다. 복무 시절 베넷은 병사들의 피지컬 트레이닝을 담당하기도 했다. 군 복무를 마친 베넷은, 던디에 입단하여 1946년부터 1949년까지 3시즌 동안 21차례 리그에 출전 하였다. 그 후 베넷은 엘긴 시티로 이적하여 커리어를 마쳤다.

3. 지도자 경력

은퇴 후 그는 1953년 5월부터 1955년 4월 9일까지 에어 유나이티드에서 감독을 맡았다. 그는 훌륭한 코칭 기술을 가지고 있었으나 전체적인 팀 매니지먼트에는 소질이 없었고 1954-1955 시즌에 몇 차례 실망스러운 경기 결과를 보이며 경질되었다. 두 번의 컵 8강 진출에도 불구하고, 그의 팀은 또한 저조한 리그 성적으로 인해 두 차례나 좋은 승격의 기회를 날려버렸고 그는 1955년 4월에 감독직을 떠났다. 사임 후 그는 머더웰에서 바비 앤셀 감독 밑의 코치로 고용되었고, 그 후 서드 라나크에서도 코치로 근무하였다. 이 때 베넷은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뛰어난 코치 중 한 명으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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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풀의 위대한 '부트 룸' 코치진들
,좌측부터 빌 샹클리, 밥 페이즐리, 조 페이건, 로니 머랜, 루벤 베넷, 톰 손더스,

이후 1958년 11월, 베넷은 리버풀의 전 회장 TV 윌리엄스에 스카우트되어 리버풀의 코칭 스태프진에 수석 코치로 합류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당시 리버풀 감독이었던 필 테일러가 1959년 11월 17일 감독직을 사임하였고, 12월에 테일러의 후임으로 빌 샹클리가 부임한다. 샹클리는 즉각적으로 클럽을 회생시키기 시작했다. 샹클리는 침체되고 부진한 상태에 빠져있던 리버풀을 살려내기 위해서 베넷을 비롯한 핵심 코치진 모두를 유지하기로 결정했고, 베넷을 비롯한 밥 페이즐리, 조 페이건 등 기존 코칭 스태프진과 협동하기 시작했다. 샹클리는 안필드 내 비공식 코치 회의실이었던 '부트 룸'에서부터 클럽의 부활을 꿈꾸기 시작했다. 이 비공식적인 전략실에서 베넷과 코치진들은 전술과 계획에 대한 모든 것들을 논의했다. 그 결과 향후 30년간 리버풀을 성공으로 이끄는 역사적인 클럽의 철학들이 연이어 탄생했다. 이 과정에서 베넷은 샹클리의 지시 아래 선수들의 피트니스, 컨디션 및 피지컬 트레이닝을 집중적으로 맡았다. 베넷은 샹클리와 가장 가까운 코치이자 친구였던 것으로 잘 알려졌으며, 우락부락하고 힘찬데다가 군대에서부터 피지컬 트레이닝을 담당해왔던지라 이 당시부터 붙었던 베넷의 별명이 리버풀의 아이언 맨. 샹클리는 그를 '세상에서 가장 빡센 남자(the hardest man in the world)'라고 부르기도 했다.[1]
파일:Melwoodtrainingsession2.jpg
리버풀의 아이언 맨

베넷은 샹클리 감독 아래에서 3번의 리그 우승과 2번의 FA컵 우승, 그리고 클럽 역사상 최초의 유럽 대항전 우승에 기여하였다. 이후 리버풀 감독직은 샹클리의 코치들이었던 페이즐리, 페이건으로 이어졌고 은퇴 후 부트 룸에 합류한 케니 달글리시로까지 이어졌다. 샹클리가 사임한 후 페이즐리 시대가 시작되자 베넷은 상대팀 분석관으로 활약했다. 이후 리버풀에 있는 기간 동안 베넷은 몇 차례 감독직을 제의받기도 했으나, 그는 감독직을 맡지 않고 계속해서 리버풀의 코치직으로 활약했다. 베넷의 은퇴는 케니 달글리시 감독 하에 첫 시즌이자 더블을 차지한 했던 1985-1986 시즌에 이루어졌다. 그는 초기 부트 룸 멤버 중 가장 오랜 기간을 리버풀에서 근무했다.

4. 말년

이후 베넷은 1989년 12월, 76번째 생일을 일주일 앞두고 세상을 떠났다. 베넷의 장례식에는 지역 라이벌 팀인 에버튼의 경영진도 참여했으며, 그의 관은 리버풀의 전설적인 윙어이자 스코티쉬였던 빌리 리델이 제공한 스코틀랜드 국기로 덮였다. 베넷은 그의 리버풀 커리어에서 톰 손더스와 함께 리버풀 감독직을 맡지 않았던 유이한 초창기 부트 룸 멤버로 기록되었다. 그는 반 세기 이상을 축구계에 종사하였지만 일생 내내 인터뷰를 꺼릴 정도로 검소하고 조용하게 팀에 헌신하기를 바랬으며 팀 안팎에서 묵묵한 헌신으로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었다. 그의 30여년의 리버풀 커리어 동안 팀이 따낸 무수한 트로피들에 비해 베넷의 이름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으나, 붉은 제국의 진정한 언성 히어로로서 리버풀 팬들은 그를 기억하게 되었다.

2019년에는 리버풀이 선정한 '리버풀을 만든 인물들' 41위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1] 하지만 실제로는 소식적의 자랑을 선수들에게 허풍처럼 떠들며 웃음을 주고 여자에게도 굉장히 친절한 성격이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