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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7-04 08:49:35

루이스 데라푸엔테(1914)

파일:Luis de la Fuente(1914).jpg
이름 루이스 데라푸엔테 이 호요스
(Luis de la Fuente y Hoyos)
생년월일 1914년 1월 17일
사망년월일 1972년 5월 28일 (향년 58세)
국적 파일:멕시코 국기.svg 멕시코
출신지 베라크루스
포지션 인사이드 포워드
신체조건 미상
소속팀 레알 클루브 에스파냐 (1931-1934)
라싱 산탄데르 (1934-1935)
레알 클루브 에스파냐 (1935-1937)
클루브 아메리카 (1937-1938)
레알 클루브 에스파냐 (1938-1939)
CA 코랄레스 (1939-1940)
CA 벨레스 사르스필드 (1940-1941)
CD 마르테 (1941-1943)
CD 베라크루스 (1943-1952)
국가대표 8경기 7골 (1938-1949)



1. 개요2. 생애
2.1. 어린 시절2.2. 선수 생활2.3. 이후
3. 플레이 스타일 & 평가4. 뒷이야기5. 수상
5.1. 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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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멕시코의 전 축구 선수.

2. 생애[1]

2.1. 어린 시절

데라푸엔테는 아스투리아스 출신의 아버지 세군도와 산탄데르 출신 어머니 호세파의 첫째로 베라크루스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데라푸엔테의 가족들은 1914년 4월에 미국이 베라크루스를 점령하자 도시를 떠나 나나카밀파에 있던 친척의 농장에 머물렀다. 그의 아버지와 삼촌은 선박을 소유하며 멕시코만의 무역일을 했었고 그래서 어릴 때의 데라푸엔테는 항구에 정박된 아버지의 배를 타며 놀곤 했다. 그를 대표하는 별명 El Pirata는 이렇게 탄생했다.

데라푸엔테의 아버지는 그가 5살때 사망했다. 어머니는 어린 데라푸엔테의 교육을 위해 그를 산탄데르의 친척집에 보냈지만 10살 때 데라푸엔테는 다시 멕시코로 돌아왔고 멕시코 시티에서 축구를 접했다. 이때 CF 아우레라 구단이 데라푸엔테의 재능을 알아봤고 데라푸엔테는 학교를 그만 두고 축구 선수로 진로를 정했다.

2.2. 선수 생활

2.2.1. 클럽

CF 아우레라의 유스팀 소속이던 데라푸엔테는 1931년부터 레알 클루브 에스파냐에서 뛰게 되었고 1933-34 시즌에 프리메라 푸에르사 우승으로 처음 메이저 트로피를 따냈다. 우승 이후 에스파냐는 스페인 투어를 돌았는데 이곳에서 데라푸엔테는 어머니의 고향팀 라싱 산탄데르의 주목을 받아 1934년에 산탄데르의 선수가 되었다. 이것은 멕시코 선수 최초의 유럽 진출 사례이다. 데라푸엔테는 레알 마드리드 CF와의 경기에서 골을 넣지는 못했지만 1934년 월드컵 당시 스페인의 주전 선수들이었던 하신토 킨코세스를 제치고 리카르도 사모라를 놀라게 하는 플레이를 여러 차례 선보였다. 산탄데르에서 20경기 5골로 나쁘지 않은 성적을 냈지만 당시 스페인의 불안한 정세 등으로 인해 1년 만에 다시 멕시코로 돌아왔다.

클루브 에스파냐와 클루브 아메리카에서 뛰던 데라푸엔테는 1939년, 멕시코에 투어를 온 파라과이 클럽 CA 코랄레스 스카우터들의 눈길을 끌게 되었다. 결국 코랄레스는 데라푸엔테와 입단 계약을 끌어냈고 데라푸엔테는 코랄레스를 거쳐 1941년까지 아르헨티나의 CA 벨레스 사르스필드에서 뛰었다.

그러나 벨레스의 대우가 맘에 안들어 다시 멕시코로 돌아온 데라푸엔테의 행선지는 CD 마르테였고 1942-43 시즌에 다시 마르테의 프리메라 푸에르사 우승을 경험할 수 있었다. 1943년에 프리메라 푸에르사는 리가 MX로 개편되었고 이때 데라푸엔테는 고향팀인 CD 베라크루스로 이적했다. 이후로 데라푸엔테는 1952년까지 리가 MX 2회 우승을 더 했다.

1954년에 데라푸엔테는 아틀란테 FC와 베라크루스의 경기에서 은퇴식을 갖고 축구화를 완전히 벗었다.

2.2.2. 국가대표

데라푸엔테가 처음 멕시코 대표팀에서 선발되었던 때는 1934년 월드컵 지역 예선때였다. 데라푸엔테에게 출전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고 멕시코는 미국에 밀려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데라푸엔테는 1950년 월드컵 지역 예선전에 참가해 멕시코의 본선 진출에 크게 공헌했지만 본선에는 뛰지 않았다.

2.3. 이후

술과 과식을 즐기고 의사들을 잘 만나지 않았던 데라푸엔테는 죽상동맥경화증으로 다리 하나를 잘라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럼에도 그는 수술을 거부했고 심장마비로 인해 1972년에 사망했다.

3. 플레이 스타일 & 평가

El Pirata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데라푸엔테는 정확한 패스를 뿌리며 어시스트를 쌓았다. 또한 그는 점프력이 좋아 공중볼 다툼에서 매우 위협적이었고 강력한 킥을 가지고 있었다.

데라푸엔테는 멕시코의 역대 최고급 포워드로 꼽히며 2021년 IFFHS의 북중미 올스타에도 이름을 올렸다. 지금은 해체되었지만 데라푸엔테의 고향팀이자 그가 가장 오래 선수 생활을 했던 CD 베라크루스는 홈구장에 그의 별명 피라타를 붙여서 그를 기념했다.

4. 뒷이야기

5. 수상

5.1. 클럽



[1] 출처: 위키피디아, 11v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