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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8-30 14:56:11

리길송



1. 개요2. 생애3. 여담4. 참고문헌

1. 개요

북한의 정치인.

2. 생애

1923년 함경남도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졌지만 리길송 회고록에 따르면 1930년대 초반에 태어나 만주에서 자랐다. 항일 빨치산 유자녀 출신인데, 아버지가 보천보 전투까지 참전했다는 썰도 있었으나 리길송 회고록을 보면 그의 아버지는 빨치산에 가담하기도 전에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처형되었다. 어쨌거나 김일성의 명령으로 귀국, 만경대혁명학원을 거쳐 소련 레닌그라드 공대로 유학을 다녀왔다. 이후 김일성 경위중대원으로 6.25 전쟁에 참전했다. 이후 1993년에 만경대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혁명의 2세를 안아키우시여>라는 김일성 숭배저서도 집필하였다.

석탄공업부에서 사업하다가 1968년 8월, 평안남도 책임비서에 임명되었으며, 1970년 11월, 5차 당대회에서 중앙위원회 위원에 선출되었다. 1972년 3월, 량강도 책임비서로 이동, 다시 1972년 12월, 함경남도 책임비서로 이동하였으며 5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및 예산심의위원에 선출되었다. 1973년 2월에는 함경남도 인민위원장을 겸하였다. 하지만 1977년 6월 정치위원회 회의에 참가하여 김일성으로부터 흥남비료련합기업소가 일을 잘하지 못하여 온 나라의 농업에 지장이 있다고 큰 비판을 받았다. 리길송 본인의 회고에 따르면 당시 노동자들이 늙어서 치아가 약해져서 음식을 잘 먹지 못하는 바람에 생산성이 떨어지는 문제가 있었다고 하는데, 이에 김정일의 독려 하에 구강병 치료사업을 열심히 벌렸다 카더라. 1980년에는 함흥극장 건설이 비생산 건물이라고 우선순위에서 제쳐놓았다가 또 김정일에게 쪼인트를 까인 일이 있다. 이후 김정일의 교시를 받고 오리고기 보급운동을 했다고 한다.

1985년 7월, 함경남도 당대표단으로 중국을 방문하였으며, 1985년 11월 19일, 정치국-중앙인민위원회 연합회의에서 정무원 교통위원장에 임명되면서 함남 책임비서에서 물러났다. 1986년 11월, 8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 대의원 자격심사위원을 지냈다. 1986년 12월, 8기 정무원에서 교통위원장에 유임되었다. 1987년 8월, 리진수 장의위원을 지냈다. 1987년 11월, 리근모 총리의 방중을 수행하였으며 1988년 12월에는 교통운수 대표단장으로 중국과 소련을 다녀왔다.

1990년 4월, 9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재선, 9기 정무원에서 또 교통위원장에 유임되었으나 1991년 12월 18일, 중앙인민위원회 정령에 따라 리용무에게 자리를 내주고 교통위원장에서 해임, 염기순의 뒤를 이어 량강도 책임비서 겸 인민위원장으로 이동하였다. 1992년 4월, 김일성 팔순기념 김일성훈장을 받았으며 최고인민회의 9기 3차 회의에서 중앙인민위원에 보선되었다.

1994년 7월, 김일성 장의위원, 1995년 2월, 오진우 장의위원, 1998년 12월, 전문섭 장의위원, 1999년 9월, 리종옥 장의위원을 지냈다. 1998년 7월, 서윤석의 뒤를 이어 새 평안남도 책임비서에 임명되었다. 량강도 책임비서 자리는 리수길이 물려받았다. 1998년 7월, 10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재선,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에 선출되는 등 유훈통치 이후 김정일 시대에도 계속 중용되었다.

2003년 9월, 11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재선되는 한편 평남 책임비서 자리를 리태남에게 물려주고 최영림의 뒤를 이어 최고검찰소장으로 이동, 법제위원에 선출되었다. 2008년 10월, 박성철 장의위원을 지냈다. 2009년, 12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법제위원, 최고검찰소장에 다시 유임되었으나 2010년 4월 9일, 최고인민회의 12기 2차 회의에서 장병규가 신임 최고검찰소장에 임명되면서 물러났다. 2010년 9월, 3차 당대표자회에서 중앙위원회 위원에서 소환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후 한동안 소식이 없었으나 2014년 3월, 13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재선, 조국전선 의장으로 등장하여 개천절 기념행사를 계속 맡아왔으며 2016년 11월, 류미영 장의위원을 지냈다. 2018년 2월 16일에는 조선의 오늘에 <한평생 인민만을 마음속에 안고사신 절세위인을 우러러​>라는 김정일을 숭상하는 글을 기고하며 과거 자신이 도당 책임비서로 재임하던 시절의 일을 회고했다.

2019년 3월, 14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재선되었으며 2019년 7월 2일, 중국을 방문하고 돌아온 조국전선 의장 김완수를 마중하였다. 이후로는 딱히 동정보도가 없다가 2022년 7월, 8차 로병대회 주석단에 등장하면서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2023년 7월 27일, 국가기념연회 및 전승절 기념보고회에 참석했으며 열병식에서 행진했다. 2024년 7.27 행사에 다른 로병들과 함께 참석했다.

3. 여담

조명철의 회고에 따르면 그의 사위는 흑금성 박채서의 대북 카운터파트였던 리호남이라고 한다.

외무성 부상으로 활동하는 리길송도 있는데 13기 이후 대의원은 본 문서의 리길송이 아니라 이 리길송일 가능성도 없지는 않으나 외무성 부상 리길송이 대의원까지 선출될 정도로 그리 활발하진 않다는 점 등을 고려하여 이 리길송을 13기, 14기 대의원으로 등재하도록 한다.

4.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