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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6-06 08:49:52

리화영



1. 개요2. 생애3. 참고문헌

1. 개요

북한의 정치인.

2. 생애

1930년 12월 30일에 태어났다. 1945년 8월, 평안남도 안주군 보안대에서 일했으며 이후 내무성 철도보안려단 및 동해지구위수사령부에서 복무했다.

1950년 6월, 조선인민군 군관학교 졸업하고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 총참모부 부장로 부임, 이후 3군단 부장으로 이동했다. 1952년 3월, 평안남도 안주군위원회에 배치되었으며 중앙당학교를 졸업하고 평안남도 당위원회 및 안주군위원회에서 지도원, 부장, 부위원장으로 일했다. 1959년 7월, 평안남도 민청위원장에 임명, 1961년 5월, 민청중앙위원회 부장에 임명되어 이후 부위원장으로 승진했다. 1962년 10월, 3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된 리화영이 있는데 조선대백과사전은 이 경력은 따로 적지 않았으나 얘들이 워낙 좀 대충 적는 감이 있어서 동명이인이 아닐 수도 있다.

1970년 8월, 7군단 정치위원에 부임했으며 4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보선되었다. 1972년 12월, 5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재선, 1975년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으로 보선되었다. 1977년 7월, 중앙인민위원회 초급당비서에 임명되었으나 6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는 탈락했다. 1980년 10월, 6차 당대회에서 대회 서기부를 맡았고,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승진했다. 1982년 4월, 김일성 칠순기념 김일성훈장을 받았다. 1982년 9월, 조직지도부 부부장에 임명되었다. 이 시기 부부장으로 일하면서 김정일의 총애를 받았다.

1983년 10월 9일[1]에 김정일 측근연회에 참석하였다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같이 타고 있던 로명근도 치명상을 입고 몇 년간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이후 시신은 애국렬사릉에 당중앙위원회 부부장 직함으로 안장되었다. 그의 동생 리화선도 국제부 부부장 및 조직지도부 부부장을 역임했으며 1996년에 사망한 이후 형과 함께 합장되었다.

3. 참고문헌


[1] 공교롭게도 이날은 북한이 저지른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 사건이 일어난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