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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11 23:26:33

안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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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위 19동 14리



대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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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wpk.jpg 리창근 (제90호 안주선거구)
파일:wpk.jpg 리계봉 (제91호 신안주선거구)
파일:wpk.jpg 리군호 (제92호 동면선거구)
파일:wpk.jpg 최지선 (제93호 원풍선거구)
파일:wpk.jpg 윤정국 (제94호 남평선거구)
파일:wpk.jpg 오수용 (제95호 남흥선거구)
시당 파일:wpk.jpg 김정훈[1]
(안주시당 책임비서)
인민위 파일:wpk.jpg 김희옥[2]
(안주시 인민위원회 위원장)
면적 359㎢
시간대 UTC+9
인구 240,117명 (2008년)
인구밀도 669명/km² (2008년)
관청
소재지

안주시 인민위원회
(위치 미상)
1. 개요2. 역사3. 지리4. 산업5. 교통6. 관광7. 특산물8. 이북 5도 기준 행정구역9. 출신 인물

[clearfix]

1. 개요

평양 서쪽 100여 리 되는 곳에 청천강을 임하여 안주가 있다”
이중환(택리지)
안주시(安州市)는 북한 평안남도에 위치한 도시이다. 청천강의 남쪽 기슭에 위치한다. 남부에는 대동강의 지류인 금천강이 있다. 평안도의 '안'이 바로 안주. 조선시대에는 택리지에서 대도회로 꼽힐 정도로 큰 도시였다. 2008년 당시 240,117명으로 평안남도에서 많은 편은 아니다.

2. 역사

파일:/image/262/2007/02/01/200702070500044_1.jpg
안주성 성벽

파일:external/thumbnail.egloos.net/a0105007_4c20d9d148ebd.jpg
임진왜란 직후 개축한 안주성. 내성이 본성이고 오른쪽 외성이 신성이다.

파일:external/thumbnail.egloos.net/a0105007_4c20d983834e8.jpg
도시의 규모가 커지면서 읍성의 면적도 커저서 3중 성벽화 되었다.

옛날부터 청천강 유역의 중추도시 역할을 한 유서 깊은 도시다.

원삼국시대에는 고조선 멸망 후 한사군낙랑군(樂浪郡)의 증지현(增地縣)이었다.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의 영토에 들어간다. 여수전쟁을지문덕(乙支文德) 장군이 살수대첩으로 수나라 군대를 물리친 곳이 현 안주 일대로 추정된다. 지금도 일대에는 을지문덕이 수군을 유인하기 위해 7명의 승려들로 하여금 거친 살수를 건너게 하였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7명의 승려들이 먼저 강을 건너자 수군이 이를 보고는 안심하여 급히 살수를 건너다가 을지문덕의 계략에 휘말려 몰살당했다는 전설이 바로 그것이다.[3]

남북국시대에는 고려사 지리지에 의거해 원래 고구려 식성군(息城郡)이었다가 통일신라의 중반군(重盤郡)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으나 이는 패강진을 북쪽으로 잡은 것이고, 실제로 식성군/중반군은 황해남도 재령군 혹은 삼천군 일대로 비정되고 있다. 안주 지역은 발해와 신라의 변방으로써 남북국의 공백 속에 고구려 유민(호족)들의 무주지였을 가능성이 높다.

후삼국시대 고려 태조에게 접수된 후 처음에는 팽원군(彭原郡)이라 했다가 931년(태조 14) 안북부(安北府)로 개칭된다.

고려시대인 983년(성종 2) 영주안북대도호부(寧州安北大都護府)라 개칭되었고,[4] 1018년(현종 9)에 안북대도호부라 개칭된다. 995년 서희가 크게 성을 보수하였다. 안북대도호부는 주로 요나라를 경계하여 설치되었는데, 비슷하게 다른 도호부로는 백제 유민을 경계해 설치된 안남도호부(전라북도 전주시→여기저기 이치되다 폐지), 신라 유민을 경계해 설치된 안동도호부(경상북도 경주시→여기저기 이치되다→안동시 정착), 여진족을 경계해 설치된 안변도호부(함경남도 영흥군강원도 안변군)가 있었다. 대도호부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중요한 군사요충지였으며 여요전쟁[5]여몽전쟁[6]의 격전지가 되었다.

조선시대에 와서 안주목이 설치된다. 이때도 여전히 군사요충지라 평안도 병영이 있던 지역이며, 상술했듯 평안도의 '안'자가 바로 안주에서 따온 것. 선조임진왜란이 끝나고 안주성을 개축(1607)했으나, 인조이괄의 난으로 털린 다음 남이흥후금 군대에 의해 정묘호란안주성 전투(1627년 양력 1월 20일 ~ 1월 21일)가 벌어졌던 곳이다.[7] 1895년 23부제 개편으로 평양부 안주군이 되었다가, 1896년 평안남도 안주군이 되었다.

일제강점기1931년 안주면이 안주읍으로 승격되었다. 광복 당시 안주군은 1읍 7면, 안주읍 북문리에 군청이 있었다. 1947년 6월부로 신안주면이 읍으로 승격되었고,[8] 1949년 안주읍이 안주면으로 강등되었다. 1952년 안주읍, 신안주읍, 동면, 운곡면이 안주군으로 남고 나머지는 문덕군으로 갔다. 1987년 8월 시(현재 19동 14리)로 승격되었다.

3. 지리

동쪽은 개천시, 서쪽은 문덕군, 남쪽은 순천시 ·숙천군, 북쪽은 평안북도 박천군·녕변군과 접해 있다. 남부는 낮은 산지, 북서부에는 열두삼천리평야("안주박천평야")가 펼쳐져 있다. 경지가 군 면적의 31%에 달한다.

압록강변에 의주-신의주가 있다면, 청천강변에는 안주-신안주가 있다.

4. 산업

남흥지구의 남흥청년화학기업소함흥시 흥남구역과 함께 "주체비료" 공업 지역으로 언급되는 북한의 대표적인 석유화학공장이 있다. 그외 요소비료공장, 견직공장이 있다. 석탄, , 흑연 등의 자원이 풍부하다. 연풍수력발전소(5천 kw)·청천강화력(20만 kw)·안주(120만 kw, 건설중) 화력발전소가 있다.

5. 교통

교통면에서는 평의선개천선이 지나며, 신안주청년역에서 개천선이 분기한다. 개천선 안주역이 있다.

6. 관광

파일:external/photos.wikimapia.org/65_big.jpg
관서팔경의 하나인 안주성의 백상루(百祥樓). 1977년 서쪽으로 400m 옮겨서 재건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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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성공원. 호수 안에 작은 섬들이 북두칠성 모양으로 배열되어 있다고 한다.

7. 특산물

조선시대부터 분단 이전까지는 자수가 유명한 곳이었다. 안주에서 생산되는 수실의 품질이 뛰어났으며, 이것으로 수를 놓은 안주수(安州繡)는 상품자수로 궁중이나 중국에 공급되었을 정도. 도안을 보내면 안주에서 자수를 놓는 방식이었다고 한다. 독특한 점이라면, 자수제작에 남자가 참여하였다는 것.

8. 이북 5도 기준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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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목상 도청소재지 : 평양시 }}}}}}}}}
평안남도미수복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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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주군
安州郡
Anju Coun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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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63161C><colcolor=#ffffff> 군청 소재지 안주읍 북문리
상위 행정구역 평안남도
하위 행정구역 1 7
면적 692.2㎢
인구 90,621명[9]
인구밀도 130.92/㎢
명예군수 최태연
명예읍·면장 8석
홈페이지 이북5도위원회 안주군 소개
파일:안주군기.png

파일:안주군.jpg

이전 문서에서 2읍(안주, 신안주) 6면(대니, 동, 용화, 연호, 운곡, 입석)으로 설명하고 있었으나, 신안주면은 읍으로 승격된 적이 없다. 안주군의 행정구역은 광복 당시 1읍 7면이었으며, 1949년 북한 치하에서 안주읍이 안주면으로 격하되었던 것으로 인해 조선향토대백과에서는 8면이었던 것으로 서술하고 있고, 한국민족문화대백과북한지역정보넷에서는 안주군이 원래 1읍 7면이었음을 설명하고 있다. 또한, 이북5도위원회 평안남도 기본현황에서도 광복 당시 평안남도의 읍이 5개였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안주읍, 승호읍, 순천읍, 양덕읍, 개천읍에 해당한다.

1읍 7면

9. 출신 인물

9.1. 전혜성

재입북으로 화제가 된 탈북자 전혜성(임지현)이 안주시에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전혜성은 탈북하여 모란봉 클럽, 애정통일 남남북녀/시즌2 등 여러 방송에도 출연하여 이름이 알려졌으나, 돌연 북한으로 돌아가 화제가 되었다.

이 이유에 대해서 3가지 설이 있다. 1. 북한에서 보낸 간첩이라는 설, 2. 중국에 갔다가 납치되어 북한으로 끌려갔다는 설, 3. 스스로 원하여 북한에 돌아갔다는 설 등이 있다.

한국에서는 주로 2번으로 추정하는 편이다. 탈북민들 말로는 꽤나 심심치 않게 벌어지는 일이라고 한다. 물론 북한 방송과 전혜성이 주장하는 것은 3번.
[1] 2022년[2] 2022년[3]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관촉사 은진미륵에도 비슷한 전설이 있다. 여기서는 수나라군이 거란족요나라 군대로 바뀌었고, 승려도 7명이 아니라 1명이라는 것이 다른 정도다.[4] 즉 지명은 영주인데 영주에 안북대도호부가 설치되었단 뜻이다.[5] 1차 침공에서 소손녕봉산에서 승리하자 안북대도호부까지 친정했던 성종이 서경(평양)으로 후퇴하였다. 2차 침공에서는 소배압이 진작에 점령하고 주둔하였는데 여기서는 영주(寧州)라는 이름으로 나온다.[6] 1차 침공의 안북성의 패배몽골 제국군의 주된 주둔지가 됨.[7] 결국 남이흥은 스스로 폭사했다. 후금군 총대장 버이러(beile) 아민조차 머리를 조아려 곡을 하며 “조선은 충의의 나라라더니 내 이제 그 참모습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라며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고 한다. #[8] 동 시기 승격된 황해도의 사리원시, 송림시와 달리 이북5도위원회는 이곳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9] 1944년 인구총조사[10] 본래 김씨였으나 서양식으로 남편의 성씨를 따랐고, '란사'는 Nancy라는 영어 이름을 한자로 옮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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