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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성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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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wpk.jpg 안명옥 (제84호 은덕선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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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wpk.jpg 김승두 (제86호 삼화선거구)
파일:wpk.jpg 민상기 (제87호 구월선거구)
파일:wpk.jpg 최창기 (제88호 옥전선거구)
파일:wpk.jpg 리룡남 (제89호 백송선거구)
시당 파일:wpk.jpg 한금철[1]
(평성시당 책임비서)
인민위 파일:wpk.jpg 안명옥[2]
(평성시 인민위원회 위원장)
면적 381㎢
시간대 UTC+9
인구 284,386명 (2008년)
인구밀도 746명/km² (2008년)
평성 시내 (2016년)[3]

1. 개요2. 역사3. 행정구역4. 교통5. 경제6. 문화7. 남북통일 이후8. 참고 자료9. 여담10. 둘러보기 틀

[clearfix]

1. 개요

평안남도의 도시. 평안남도의 소재지이다. 과학 연구와 물류업을 중심으로 북한 당국의 견제 속에서 성장한 자생적 시장 경제가 발달한 도시다. 2008년 당시 인구 28.4만명. 평양 시가지에서 차로 40분 정도 걸리는 곳이다.

코리아컨설트 여행사의 소개(영문), 우리투어의 소개(영문)

2. 역사

고적으로는 선조임진왜란시 피난차 머물렀던 안국사(安國寺) 등이 있다.

북한의 도시 가운데 가장 급성장한 도시라고 할 수 있다. 8.15 광복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순천군 사인장(舍人場)이라는 조그만 촌락(1944년 당시 인구 8천명)에 불과했지만 현재는 도소재지가 되었다. 당시 행정구역상으로는 순천군 사인면과 후탄면(厚灘面) 지역이었다. 평성이란 이름은 원래부터 있던 지명이 아니라 '평양(平)의 북쪽을 지키는 성새(城)'란 뜻으로 1965년에 새로 지은 이름.

광복 이후 평양시 룡성구역에 속하였다가 1965년 평성구역이 신설되었고, 1968년 평남도당이 옮겨왔으며(당시 인구 겨우 2만8천), 1969년 독립된 시(인구 11만)가 되었다. 평양의 위성도시 역할을 하며, 이 덕분에 개천시보다 인구가 적으나 도소재지가 되었다. 남한으로 치면 (도청 소재지 여부를 제외하면) 성남시와 비슷한 포지션.[4]

대덕연구개발특구가 위치하여 대한민국 과학의 메카로 불리는 대전광역시처럼, 과거에는 평성시도 북한에서는 이와 유사한 위상을 갖고 있었다. 북한의 국가 과학연구기관인 국가과학원이 바로 평성에 위치했기 때문. 또한, 북한에서 "3대 명문대학" 중 하나로 알려진 리과대학(국가과학원 산하 대학)도 이곳에 속했었는데... 국가과학원과 관련 기관들이 위치했던 구역들이 북한의 과학자 우대정책의 일환으로 1995년 평양시에 편입되어 은정구역으로 개편되면서, 평성시는 과학메카로서의 위상을 잃게 되었다. 하지만, 평성 시가지와 은정구역은 경계가 매우 애매한 수준이라...

국가과학원리과대학이 평양시로 빠졌지만 여전히 지리적으로는 평성시 역내에 있고, 평성석탄대학, 평성수의축산대학과 같은 중앙급 대학들과 평성교원대학, 평성의과대학, 평성사범대학들이 평성에 위치해서 도시에 대학생 인구비율이 높은 대학 도시이다.

3. 행정구역

총 20동 12리로 이루어져있다.

4. 교통

교통시설로는 철도는 평성역 등이 있으며 버스터미널로는 명칭이 알려지지 않은 터미널이 있다. 2014년 2월 14일에 방영된 KBS 파노라마에서 이 버스터미널의 모습이 공개되었는데 시설은 남한의 60~70년대 버스주차장의 모습과 흡사하다. 알려진 바로는 평성에서 북한 전국 약 49개 노선이 운행하고 있다고. 통일연구원에 따르면 이 정도 노선이 북한에서 가장 많은 축에 속한다고 하며, 특히 문덕군, 숙천군, 신안주로의 수요가 많다고 한다. 평양행 버스는 붉은별역까지 운행한다.

5. 경제

전형적인 행정·학술 기반의 소비도시라고 할 수 있지만, 1990년대 경제난은 평성의 모습을 크게 바꾸었다. 평성의 과학자들이 경제난을 이유로 북한에서 처음 장사를 했다는 소문이 있다고 한다. 수도 평양이 외부인 출입을 엄격히 금지하고, 북한의 시장들이 주로 도서 국경도시들을 통해 수입하는 형태로 소비재를 충당하면서, 평성은 평양 외 지역과 평양을 이어주는 허브로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1990년대 중후반부터 평성시장은 북한을 대표하는 도매시장으로 자리매김하였고, 2000년대에 들어서면 매대 3~4만석 규모로 가히 북한 최대의 시장이라 할 정도로 성장했다.

동아일보의 취재에 따르면, 이곳은 경공업 생산품과 대외 무역 물품이 집산(集散)한다. 전국의 도매상이 생필품 및 식량을 매집하려 평성을 찾는다. 의류 산업도 발달했다.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평양을 보조하는 수도권 도시 구실도 한다. 소득수준이 신의주와 함께 평양 다음으로 높다.

이곳 출신 탈북자인 국제수학올림피아드 수상자 이정렬(리정렬) 씨[5]에 의하면, "평성은 골고루 잘사는 도시"이며, 못사는 사람이 거의 없고, 평균을 내면 북한에서 평양 다음으로 잘산다고 한다. 남포는 훨씬 못 미치고, 함흥은 평성 사람들이 돈 들고 놀러가는 곳이라고 말한다. 평성에서는 신발, 옷도 생산하는데, 중국에서 도면을 가져와 만든다고 한다. 북한에는 저작권 개념이 없어 견본을 공장에 갖다 주면 똑같이 만들어낸다고 한다. 신의주, 혜산에서 중국 제품을 떼와 유통시키기도 한다고 한다.

북한 정부는 2009년 화폐개혁을 앞두고 평성시장에 대대적인 탄압을 가해 이곳을 문자 그대로 초토화를 시키고 대신 매대 7~8천석 규모의 중덕장과 하승장을 개설했다. 평성시장을 축소해 북한 시장 전체의 동반 침체와 축소를 노린 것으로, 북한 시장경제에서 평성시장의 지위가 어떠한 것인지 잘 보여주는 반증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이런 탄압에도 불구하고 평성의 옥전시장 같은 곳의 위상이 계속 올라갔다. 북한 제2의 제철소인 3만명의 황해제철소 출근자에 맞먹는 인원보다 많은 인원이 옥전시장에서 장사를 한다는 주장이 통일연구원의 보고서에 있다.

2010년대 중반 이후로는 '시장'이라는 시설 자체가 많이 이용은 하지만 필요성이 줄어들고 건물을 점유하여 장사를 하는 방식으로 자본주의가 발달하였다. 단순 시장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적 행태가 심하다. 통일연구원에 따르면, 아파트 전체가 기름을 저장하고 도매 장사를 하는 '기름아파트'가 존재한다고 하였다. 가격 등의 정보 교환은 휴대전화로 한다. 장사 때문에 이곳에 체류하는 사람들이 많아져 월세를 내며 사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월세를 주고 사는 행위 자체가 불법이라는 것이다. 오가는 사람들에 비해 도시의 가용 면적이 적어 임대업이나 창고업, 주택 거래가 발달한 곳이라고 한다. 이곳의 건물은 손님을 끌기 위한 인테리어를 위해 중국산 자재를 사용하여 신의주와 더불어 북한에서 가장 건물이 깔끔한 곳이라고 통일연구원이 밝힌다. 물을 '긷는' 상당수 북한 도시의 아파트와 달리 자체 물탱크가 있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또 북한에 자본주의 물결이 불게 되면서 미국 달러를 어마어마하게 보유한 신흥 부자들이 굉장히 많아졌는데, 이런 부자들은 규제를 많이 받고 잘못 하나 저지르면 재산 다 뺏기고 함경북도 내륙 정치범수용소 지방으로 쫒겨날 위험이 있는 평양보다는 지방을 선호한다고 한다. 신의주시, 라선시, 청진시 등 외화와 외국문화가 유입되는 국경지대 혹은 항구도시에도 많이 살고 있지만, 물류의 중심지로서 외화와 외국상품이 많이 들어오고 평양 바로 옆에 있어서 언제든지 평양으로 놀러 갈 수 있는 평성에 부자들이 많이 산다고 한다.

일부 외국인은 이곳을 여행 목적으로 방문할 수 있다. 2012년부터 개방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장수산려관"이라는 호텔에서만 숙박할 수 있다고 한다.

6. 문화

평성경기장(2009년 준공 / 5만 명 수용), 평성체육관(2020년 준공), 평성청년야외극장(2020년 준공 / 5천 명 수용) 등이 있다.

축구단으로 평성축구단이 있는데, 평성경기장을 홈 경기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7. 남북통일 이후

통일 후에도 이미 평성이 북한지역 제일의 상업도시이자 물류의 중심이 되었고, 또한 구 북한의 중추지 평양으로 모든 것이 집중되는 것을 막기 위해 현재의 위치를 유지하게 될 것이다. 통일 후에는 정치적으로나 지역균형으로서나 평양이 지나치게 비대해지는 것은 무의식적으로 견제하게 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평성도 수원시 하위호환(성남시와 비슷한 수준) 정도까지는 개발될 것으로 보인다. 평성리과대학과 같은 과학기술시설이 있다는 점에서 수원시와 조금 닮은 점이 없지는 않다. 비슷한 예로는 베를린 서쪽에 있는 브란덴부르크 주의 주도 포츠담, 과거 구 동독 정부가 오데르 강 연안에 조성한 아이젠휘텐슈타트가 있다.

평양이 광역시나 그에 상응하는 독립시의 지위를 얻는다면, 이미 도소재지 역할을 해 온 평성에 평남도청을 두게 될 가능성도 있다.

북한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성장한 도시라 한국 주도의 통일시에는 행정구역이나 이름이 바뀔 가능성도 있는 거 아니냐는 의견이 있으나(순천시로의 환원(통합) 등) 그대로 존치시킬 가능성도 높다. 비록 북한 정권이 지은 명칭이라서 꺼림직함이 없지는 않지만, 김씨 일가나 북한 정권을 옹호하는 뉘앙스가 옅은데다가 평양의 평+성(城) 형태의 합성어 지명은 남한에서도 사례가 수두룩한데다 신흥도시 특성상 딱히 되돌릴 만한 역사성 있는 옛 지명이 있는 것도 아니며,[6] 평성 시가지와 순천 시가지 간의 거리도 꽤 멀고 독자적으로 성장한 도시이기 때문이다. 또한 행정구역 설정은 땅 크기보다는 인구 규모로 결정하는 바, 인구가 30만에 육박하는 도시를 일률적으로 군으로 환원시키는 것도 문제가 있다. 아마 환원을 시킨다고 해도 인구규모 등을 반영하여 다시 부활할 가능성도 있다.[7] '사인시', '후탄시'나 사인면과 후탄면의 합성 지명으로 '사후시', '사탄시' 같이 지어도 영 어감이 이상한 건 덤이다.

8. 참고 자료

9. 여담

여담으로 평성과 평양 둘다 일본어로 헤이조이다.[8]

10. 둘러보기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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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22년[2] 2022년[3] 7차 당대회가 올해 열린다는 내용이 담긴 선전물이 있다.[4] 각각 수도 서울과 평양에 접하고 위성도시라는 점, 역사가 짧은 신흥도시 지역이라는 점에서 비슷하다.[5] 2016년에 탈북하였다.[6] 다만 굳이 옛 지명을 부활시키려면 이 일대에 존재했다가 1908년 순천군에 병합되어 폐지된 자산군의 명칭을 차용할 수는 있을 것이다. 자산시로 부활하는 경우 부지를 더 넓게 확보할 겸 칠곡군/대구 칠곡 같은 혼동을 막기 위해 구 자산면 지역도 편입시킬 수도 있다.[7] 만약 존치시킨다면 그대로 대입하기는 무리일 수 있으나 아마 경원선 가능역과 비슷한 절차를 거칠 것이다. 가능역의 경우 서류상으로는 "의정부북부역을 폐지하고 가능역을 설치한다."였지만 실제로 의정부북부역 건물을 때려부수거나(다만 이전에 실제로 복선 전철화를 위해 역사를 재건축하긴 했다.) 역 기능을 상실시킨 다음 다시 지은 것이 아니라 요금체제만 손질하고 역 이름을 바꾸었다. 즉, 일시적으로 순천군(시) 통합 후에 평성시 재분리승격이 유력한 방식이 될 것이다.[8] 平成은 헤이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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