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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7 00:24:43

마리오 가브라노비치

스위스의 前 축구선수
파일:M.Gavranovic_21-22.png
<colbgcolor=#eeeeee> 이름 마리오 가브라노비치
Mario Gavranović
출생 1989년 11월 24일 ([age(1989-11-24)]세)
스위스 루가노
국적
[[스위스|]][[틀:국기|]][[틀:국기|]]
|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틀:국기|]][[틀:국기|]] |
[[크로아티아|]][[틀:국기|]][[틀:국기|]]
신체 175cm / 체중 73kg
직업 축구선수 (스트라이커 / 은퇴)
소속 <colbgcolor=#eeeeee> 유스 AS 베지아 (1996~2000)
팀 티치노 (2000~2006)
선수 FC 루가노 (2006~2008)
이베르동 스포르 FC (2008~2010)
뇌샤텔 크사막스 FCS (2009~2010 / 임대)
FC 샬케 04 (2010~2012)
FC 샬케 04 II (2010~2011)
1.FSV 마인츠 05 (2011~2012 / 임대)
FC 취리히 (2012~2016)
HNK 리예카 (2016~2018)
GNK 디나모 자그레브 (2018~2021)
카이세리스포르 (2021~2023)
국가대표 41경기 16골 (스위스 / 2011~2022)
SNS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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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위스 국적의 전 축구선수. 포지션은 스트라이커.

2. 클럽 경력

보스니아계 크로아티아인 부모의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스위스 루가노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지역 팀 FC 루가노에 입단했고 2006-07 시즌, 스위스 2부 리그 무대에서 프로 데뷔를 경험했다.

두 번째 시즌 그는 21경기에 출전해 8골을 득점하며 어린 나이에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었고 2008년 여름에 이베르동 스포르 FC로 이적했다.

이베르통 스포르에서 20경기 8골을 기록한 뒤 1년 만에 뇌샤텔 크샤막스로 이적하며 생애 처음으로 1부 리그 무대에서 활약했다.

2.1. FC 샬케 04

17경기 8골로 성공적인 스타트를 끊은 가브라노비치는 2010년 2월 1일, 분데스리가의 명문팀인 FC 샬케 04로 이적한다.

그리고 이적한 지 얼마 안 돼서 발렌시아 CF와의 UEFA 챔피언스 리그 16강전에서 첫 득점을 기록하며 팀의 4-2 승리를 이끌었고 8강 진출을 견인하는 활약을 보여줬다.

그러나 이후에는 도통 기회를 잡지 못한 채 2군과 1군을 드나들며 영 좋지 않은 시즌을 보내고 만다.

2.1.1. 1. FSV 마인츠 05 (임대)

2011년 8월, 같은 리그 소속 1. FSV 마인츠 05가 50만 유로의 임대료를 지불하며 그를 임대 영입한다. 물론 150만 유로의 완전 이적 조항도 포함되어 있었다.

허나 마인츠에서도 5경기 출장에 그치며 고독한 독일 생활은 계속되었다.

2.2. FC 취리히

최악의 임대를 보낸 뒤 가브라노비치는 샬케로 복귀했고 이내 스위스 슈퍼 리그의 FC 취리히로 이적한다.

7월 15일에 FC 루체른과의 리그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른 그는 선제골을 기록하며 데뷔전에서 골까지 기록하는 만점짜리 활약을 펼쳤다.

2013년 8월 11일, FC 바젤을 만나 결승골을 득점하며 승리에 일조했고 팀은 리그 디펜딩 챔피언을 꺾는 이변을 연출했다.

9월 15일에는 스타드 로잔과의 스위스 컵 5라운드에서 2번째 골을 성공시키며 3-2 승리를 이끌었고 11월 24일 FC 시옹전에서는 후반전에만 골망을 두번이나 흔들며 4-1 승리에 기여했다.

해를 넘긴 뒤에도 그의 활약은 여전했고 3월 1일 그라스호퍼 클럽 취리히와의 취리히 더비에서 골을 성공시키며 3-1 완승으로 팬들의 환호를 이끌었다.

4월 21일, 바젤과의 스위스 컵 결승전에서 연장전에만 두골을 집어넣으며 2-0 승리와 함께 충격적인 우승의 주역이 됐다.

그렇게 시즌이 종료되고 가르바노비치는 커리어 최초로 두자릿 수 리그 득점[1]을 기록하며 성공적인 시즌을 보냈다.

취리히에서의 활약으로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최종 명단에 승선하며 생애 첫 월드컵 무대를 밟나했지만 훈련 중 십자인대 파열로 1분도 뛰지 못하고 귀국했다.

결국 부상의 여파로 2014-15 시즌에는 상당수의 경기를 결장했다. 2015년 3월 8일, FC 파두츠와의 리그 경기에 10개월 만에 복귀했고 골까지 넣으면서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2.3. HNK 리예카

2016년 1월 18일, 시즌 도중 크로아티아 1부 리그 팀 HNK 리예카와 2년 반 계약을 맺었고, 이내 두바이에 위치한 트레이닝 캠프에 합류했다.

2월 16일, NK 로코모티바 자그레브와의 리그 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렀고 골까지 기록했다. 리예카에서 2년간 80경기 출전하며 40골을 기록했다.

2.4. GNK 디나모 자그레브

2018년 1월 5일, 가브리노비치는 드마고이 파비치치와 루카 카판과의 스왑딜을 통해 GNK 디나모 자그레브로 이적했다. 그는 3년 계약과 함께 등번호 11번을 배정받았다.

입단 프리젠테이션에서 그는 어렸을 때부터 가족들과 함께 디나모 자그레브의 서포터였다고 밝히면서 팬들의 지지를 한몸에 받았다.

그리고 성공적인 스프링 시즌을 보낸 뒤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최종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2020년 7월 30일, 계약 만료로 팀에서 나가나 싶었으나 주전 스트라이커 브루노 페트코비치가 부상으로 3주간 결장하게 되면서 다시 팀으로 복귀했다.

10월 7일, HNK 고리차와의 리그 경기에서 생애 첫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3-2 승리를 이끌었다.

본래는 방출이 예정되었으나 동료의 부상으로 인해 극적으로 팀에 복귀했고, 시즌 동안 리그 27경기에서 17골을 넣으며 팀의 핵심 스트라이커로 거듭났다. 팀 동료인 미슬라브 오르시치에 이어 득점 랭킹 2위를 기록했고, 팀의 리그 우승까지 견인하면서 선수 본인은 최고의 시즌을 보내게 됐다.

2.5. 카이세리스포르

2021년 8월 12일, 카이세리스포르에 입단했다. 계약 기간은 2년.

2022-23 시즌 종료 후 계약이 만료되었다.

2.6. 은퇴

2023년 10월 24일에 현역 은퇴를 결정했다. FC 시옹과의 이적 협상이 잘 되지 않은 데다 가족과 시간을 더 보내기 위해서라고 한다.#

3. 국가대표 경력

가브라노비치는 U-21 대표팀에서 13경기 3골을 기록했다.

2011년 3월 26일, 불가리아과의 친선 경기에서 성인 대표팀 데뷔전을 치렀다. 데뷔골은 2012년 8월 15일, 4-2로 승리한 크로아티아전에서 나왔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23인 최종 명단에 이름을 올렸으나 훈련 중 심각한 부상으로 대회 도중 하차했고[2] 2015년 초가 돼서야 복귀할 수 있었다.

4년 뒤,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최종 명단에 승선하며 생애 첫 월드컵 무대를 밟을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조별 예선 E조 세르비아와의 2차전에서 후반 시작과 동시에 교체 출전으로 첫 월드컵 무대를 밟았다. 그리고 인저리타임에 터진 제르단 샤키리의 결승골을 어시스트하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유로 2020에도 출전하게 되었으며 16강 프랑스전에서 후반 45분 극적인 동점골을 넣었고, 승부차기에서 팀의 첫 키커로 나서 성공시키며 국가대표팀의 8강행에 힘을 보탰다.

4. 플레이 스타일

뛰어난 오프더볼 능력으로 순식간에 수비라인을 허무는 라인브레이킹과 박스 안에서의 침착한 마무리가 장점인 포처형 공격수이다.

원톱보다는 투톱에 특화된 선수이며 파트너가 연계가 뛰어난 스트라이커일 경우 그의 활약은 더욱 극대화된다.

5. 여담



[1] 31경기 13골[2] 단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