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前 축구선수 | ||
<colbgcolor=#eeeeee,#191919><colcolor=#000000,#e5e5e5> 이름 | 마리오 리가몬티 Mario Rigamonti | |
출생 | 1922년 12월 17일 | |
이탈리아 왕국 롬바르디아주 브레시아 | ||
사망 | 1949년 5월 4일 (향년 26세) | |
이탈리아 피에몬테주 수페르가 | ||
국적 | [[이탈리아| ]][[틀:국기| ]][[틀:국기| ]] | |
포지션 | 센터백, 센터 하프 | |
신체조건 | 182cm | 75kg | |
소속 | <colbgcolor=#eeeeee,#191919><colcolor=#000000,#e5e5e5> 선수 | 브레시아 칼초 (1944~1945) 칼초 레코 1912 (1945) 토리노 FC (1946~1949) |
국가대표 | 3경기 (이탈리아 / 1947~19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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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탈리아의 전 축구 선수.2. 생애[1]
2.1. 선수 생활
2.1.1. 클럽
리가몬티는 브레시아에서 태어나 고향팀인 브레시아 칼초에서 데뷔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에 리가몬티는 토리노 FC에서 본격적인 선수 생활을 할 수 있었는데 그는 원래 토리노 유스 선수였고 칼초 레코 1912를 거쳐 토리노에 다시 복귀한 것이었다.토리노는 전쟁 이후에도 양질의 선수들이 남아있어서 다시 좋은 성적을 이어갔고 1945-46 시즌부터 1947-48 시즌까지 연속으로 스쿠데토를 차지했다. 리가몬티 역시 수비진에서 그란데 토리노의 명성에 힘을 보탰다.
그러나 리가몬티와 토리노의 마지막은 비행기 사고로 불운하게 찾아왔다.
2.1.2. 국가대표
리가몬티는 이탈리아 대표팀의 3경기에 출전했다.3. 플레이 스타일 & 평가
리가몬티는 키가 크고 민첩하며 육체적으로 강하고 일관되고 끈기 있는 선수였다. 리가몬티의 기술과 공중볼 처리 능력은 물론 투지, 속도, 예측 능력, 경쟁적인 플레이 스타일로 유명했다. 다재다능하고 어려운 태클을 할 줄 아는 선수였던 리가몬티는 풀백과 하프백 모두에서 뛸 수 있었으며 일반적으로 홀딩 역할을 맡았다.4. 뒷이야기
- 리가몬티가 뛰었던 브레시아 칼초와 칼초 레코 1912는 그들의 홈구장에 리가몬티의 이름을 헌정해서 그를 기리고 있다.
5. 수상
5.1. 클럽
[1] 출처: 위키피디아, 11v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