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前 축구 선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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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ee><colcolor=#000,#e5e5e5> 이름 | 마리오 프루스탈루피 Mario Frustalupi | |
출생 | 1942년 9월 16일 | |
이탈리아 왕국 움브리아주 오르비에토 | ||
사망 | 1990년 4월 14일 (향년 47세) | |
이탈리아 산살바토레몬페라토 근교 | ||
국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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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 키 166cm|체중 66kg | |
직업 | 축구 선수 (미드필더 / 은퇴) | |
소속 | <colbgcolor=#eee> 선수 | 엠폴리 FC (1961~1962) UC 삼프도리아 (1962~1970) 인테르나치오날레 (1970~1972) SS 라치오 (1972~1975) AC 체세나 (1975~1977) US 피스토이에세 (1977~1981) |
국가대표 | 없음 |
1. 개요
이탈리아의 前 축구 선수. 선수 시절 미드필더로 활약했으며, 삼프도리아, 인테르, 라치오, AC 체세나, 피스토이에세에서 뛰었다. 인테르 소속으로 세리에 A 우승과 유러피언컵 준우승을, 라치오 소속으로 세리에 A 우승을 차지했다. 1990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마리오 프루스탈루피는 움브리아주 오르비에토에서 태어났다. 이후 1961년 엠폴리 FC에서 선수 경력을 시작하여 1962년까지 19경기에 출전하여 2골을 기록했다.1962년 삼프도리아로 이적했다. 1963년 삼프도리아 소속으로 세리에 A에 데뷔했으며, 8시즌 동안 202경기에 출전하여 22골을 기록했다. 유소년 시절 유망한 선수로 평가받았다.
1970년 인테르로 이적했다. 당시 인테르는 루이스 수아레스의 대체자를 찾고 있었지만, 프루스탈루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산드로 마촐라의 존재로 인해 주전 경쟁에서도 어려움을 겪었다. 인테르에서 1970-71 시즌 세리에 A 우승을 차지했으며, 1972년 유러피언컵에서 팀이 결승전에 진출했지만 AFC 아약스에게 패하여 준우승에 머물렀다. 인테르에서 총 38경기에 출전하여 2골을 기록했다.
1972년 라치오로 이적했다. 라치오의 스타 공격수 조르조 키날리아와 자주 다투기도 했지만, 팀을 이탈리아에서 가장 강력한 팀 중 하나로 만드는 데 기여했다. 1973-74 시즌 세리에 A 우승을 차지하며 라치오에서 성공적인 시기를 보냈다. 라치오에서 총 88경기에 출전하여 2골을 기록했다.
1975년 AC 체세나로 이적하여 성공적인 활약을 이어갔다. 체세나 소속으로 구단 역사상 최고 성적인 리그 6위를 기록하며 UEFA컵 진출권을 획득하는 데 기여했다. 체세나에서 총 51경기에 출전하여 8골을 기록했다.
1977년 US 피스토이에세로 이적했다. 피스토이에세의 세리에 A 승격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1981년 은퇴할 때까지 피스토이에세에서 총 108경기에 출전하여 6골을 기록했다.
프로 경력 동안 총 506경기에 출전하여 48골을 기록했다.
1990년 4월 14일, 가족과 휴가를 보내기 위해 체르비니아로 가던 중 산 살바토레 몬페라토 근교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로 4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