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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 SLB | 1962 SLB | 1963 ACM | 1964 INT | 1965 INT | ||
1966 RMA | 1967 CEL | 1968 MUN | 1969 ACM | 1970 FEY | ||
1971 AJA | 1972 AJA | 1973 AJA | 1974 BAY | 1975 BAY | ||
1976 BAY | 1977 LIV | 1978 LIV | 1979 NFO | 1980 NFO | ||
1981 LIV | 1982 AVL | 1983 HSV | 1984 LIV | 1985 JUV | ||
1986 CSA | 1987 FCP | 1988 PSV | 1989 ACM | 1990 ACM | ||
1991 ZVZ | 1992 FCB | 1993 MRS | 1994 ACM | 1995 AJA | ||
1996 JUV | 1997 BVB | 1998 RMA | 1999 MUN | 2000 RMA | ||
2001 BAY | 2002 RMA | 2003 ACM | 2004 FCP | 2005 LIV | ||
2006 FCB | 2007 ACM | 2008 MUN | 2009 FCB | 2010 INT | ||
2011 FCB | 2012 CHE | 2013 BAY | 2014 RMA | 2015 FCB | ||
2016 RMA | 2017 RMA | 2018 RMA | 2019 LIV | 2020 BAY | ||
2021 CHE | 2022 RMA | 2023 MCI | 2024 RMA | 2025 OOO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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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러피언컵 결승전 | ||||
1971 웸블리 | → | 1971-72 로테르담 | → | 1973 베오그라드 |
|
European Cup Final Rotterdam 1972 |
1. 개요
1972년 5월 31일 네덜란드 로테르담의 더 카윕에서 열린 AFC 아약스와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간의 열일곱 번째 유러피언컵 결승전.AFC 아약스는 유러피언컵 2연패와 트레블에 도전하고,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는 1967년 결승 이후로 5년 만에 유러피언컵 결승 진출에 성공하며 통산 3회 우승을 노리게 된다.
우승 팀은 1971-72 시즌 유러피언컵위너스컵의 우승 팀인 레인저스 FC와 UEFA 슈퍼컵 경기를 최초로 갖게 될 예정이다.[1]
이 경기의 주심은 프랑스 국적의 로베르 엘리애스(Robert Héliès)[2]가 담당했다. 경기는 약 61,354명의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진행되었다.
2. 진출 팀
| |
아약스 | 인테르 |
2.1. AFC 아약스
슈테판 코바치 감독이 이끄는 아약스는 1970-71 에레디비시 우승과 1971년 유러피언컵 우승을 통해 디펜딩 챔피언 자격으로 대회에 참가했다.1라운드에서 동독의 SG 디나모 드레스덴을 상대로 홈에서 2-0으로 승리하고 원정에서 0-0으로 비기며 합산 2-0으로 통과했다.
2라운드에서는 프랑스의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를 상대로 원정에서 2-1, 홈에서 4-1로 승리하며 합산 6-2로 8강에 진출했다. 8강에서는 잉글랜드의 아스날 FC를 홈에서 2-1, 원정에서 1-0으로 이기며 합산 3-1로 4강 진출에 성공했다.
준결승에서는 포르투갈의 SL 벤피카를 홈에서 1-0으로 이긴 후 원정에서 0-0으로 비기며 합산 1-0으로 결승에 올랐다. 아약스는 이번 대회에서 무패행진을 이어가며 2년 연속 결승에 진출했다.
2.2.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조반니 인베르니치 감독이 이끄는 인테르 밀라노는 1970-71 세리에 A 우승을 통해 유러피언컵에 진출했다.1라운드에서 그리스의 AEK 아테네 FC를 홈에서 4-1로 이기고 원정에서 2-3으로 패했지만 합산 6-4로 2라운드에 진출했다.
2라운드에서는 서독의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와 맞붙었다. 이 경기는 '깡통 경기'로 알려진 사건이 있었는데, 홈 경기에서 묀헨글라트바흐가 7-1로 이겼으나 로베르토 보닌세냐가 관중석에서 던진 깡통에 맞는 사건이 발생해 경기 결과가 취소되었다. 재경기에서 인테르가 4-2로 이겼다.
8강에서는 벨기에의 스탕다르 리에주를 홈에서 1-0으로 이기고 원정에서 1-2로 졌으나 원정 다득점 규정으로 4강에 진출했다. 준결승에서는 스코틀랜드의 셀틱 FC와 홈과 원정 모두 0-0으로 비긴 후 승부차기에서 5-4로 승리해 5년 만에 결승에 진출했다.
2.3. Road to the Final
'''''' | ||||||||||
| 팀 | | ||||||||
대진 | 합계 | 1차전 | 2차전 | 녹아웃 | 대진 | 합계 | 1차전 | 2차전 | ||
| 2:0 승 | 2:0 승 (홈) | 0:0 무 (원정) | 1라운드 | | 6:4 승 | 4:1 승 (홈) | 2:3 패 (원정) | ||
| 6:2 승 | 2:1 승 (원정) | 4:1 승 (홈) | 2라운드 | | 4:2 승 | 4:2 승 (홈) | 0:0 무 (원정) | ||
| 3:1 승 | 2:1 승 (홈) | 1:0 승 (원정) | 준준결승 | | 2:2 무 (원정 다득점) 승 | 1:0 승 (홈) | 1:2 패 (원정) | ||
| 1:0 승 | 1:0 승 (홈) | 0:0 무 (원정) | 준결승 | | 0:0 무 (PSO 4:3) 승 | 0:0 무 (홈) | 0:0 (연장전) 무 (원정) | ||
6승 2무 0패 (12득점 3실점) | 합계 성적 | 3승 3무 2패 (12득점 8실점) | ||||||||
◀ 1970-71 | 결승 | ▶ 1972-73 |
3. 경기 내용
'''''' | ||
더 카윕 (로테르담) | ||
주심: 로베르 엘리애스 (프랑스) | ||
관중: 61,354명 | ||
| | |
아약스 | 인테르 | |
2 | 0 | |
<rowcolor=#000,#fff> 47', 78' 요한 크루이프 | | - |
- | ||
◀ 1971 유러피언컵 결승전 | 경기 하이라이트 | 매치 리포트 | ▶ 1973 유러피언컵 결승전 |
4. 경기 내용
아약스는 경기 대부분을 지배했고, 인테르는 그들의 카테나치오 전략으로 필사적으로 수비했다.전반전에는 아약스가 더 많은 공격 기회를 만들었지만 득점에는 실패했다. 요한 크루이프는 인테르의 19세 젊은 수비수 가브리엘레 오리알리의 집중 마크를 받으며 활동이 제한되었다. 23분에는 뤼트 크롤의 슛이 골대를 강타했다. 크루이프가 손으로 골을 넣었으나 심판의 빠른 판단으로 취소되었다.
후반 시작 2분 만에 아약스가 선제골을 기록했다. 인테르 골키퍼 이바노 보르돈과 오리알리의 수비 실수를 틈타 크루이프가 빈 골대에 공을 넣어 1-0을 만들었다. 이후에도 아약스는 계속해서 경기를 지배했고, 78분에 크루이프가 코너킥 상황에서 헤딩골을 추가하며 2-0으로 승리했다.
이 승리로 아약스는 2년 연속 유러피언컵 우승을 차지했고, 요한 크루이프는 경기의 영웅이 되었다. 아약스의 승리는 토탈 풋볼의 승리이기도 했으며, 당시 유럽 축구의 새로운 트렌드를 확고히 했다.
5. 경기 후
아약스는 이 우승으로 2연패를 달성했고, 이후 1972-73 시즌에도 우승해 역사적인 3연패를 이루게 된다. 이 팀은 '토탈 풋볼'의 전성기를 대표하는 팀으로, 요한 크루이프를 중심으로 요한 네스켄스, 뤼트 크롤, 피트 케이저르 등 뛰어난 선수들이 포진했다.인테르는 엘레니오 에레라 시대의 '라 그란데 인테르' 이후 첫 결승 진출이었지만, 새로운 축구 스타일을 선보인 아약스에 패배하면서 세대교체를 실감하게 되었다. 이 패배 이후 인테르는 2010년까지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다시 차지하지 못했다.
이 경기는 축구 전술의 역사적 전환점으로 여겨진다. 인테르의 카테나치오 수비 전술과 아약스의 토탈 푸트볼이 직접 대결한 상징적인 경기로, 토탈 푸트볼의 우위를 확인하는 결과였다.
경기가 열린 스타디온 페예노르트는 아약스의 라이벌인 페예노르트의 홈구장이었지만, 아약스는 이곳에서 2년 전 아약스에게 유러피언컵을 내준 페예노르트의 자존심을 지켰다.
6. 여담
- 요한 크루이프는 이 경기에서 두 골을 모두 기록하며 결정적인 활약을 펼쳤고, 그해 발롱도르를 수상했다.
- 아약스의 선수들 중 요한 네스켄스는 이후 FC 바르셀로나로 이적하여 크루이프와 함께 스페인에서도 '토탈 풋볼'을 전파하는 데 기여했다.
- 아약스의 감독 슈테판 코바치는 루마니아 출신으로, 전년도 우승 감독 리누스 미헬스가 바르셀로나로 떠난 후 팀을 맡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 인테르의 산드로 마촐라는 1964년과 1965년 유러피언컵 우승 멤버로, 그의 세 번째 결승전이었지만 첫 패배를 경험했다.
- 이 시즌은 아약스가 리그와 유러피언컵, 네덜란드 컵을 모두 석권한 트레블 시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