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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3-22 18:48:41

1970 유러피언컵 결승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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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 RMA 1957 RMA 1958 RMA 1959 RMA 1960 RMA
1961 SLB 1962 SLB 1963 ACM 1964 INT 1965 INT
1966 RMA 1967 CEL 1968 MUN 1969 ACM 1970 FEY
1971 AJA 1972 AJA 1973 AJA 1974 BAY 1975 BAY
1976 BAY 1977 LIV 1978 LIV 1979 NFO 1980 NFO
1981 LIV 1982 AVL 1983 HSV 1984 LIV 1985 JUV
1986 CSA 1987 FCP 1988 PSV 1989 ACM 1990 ACM
1991 ZVZ 1992 FCB 1993 MRS 1994 ACM 1995 AJA
1996 JUV 1997 BVB 1998 RMA 1999 MUN 2000 RMA
2001 BAY 2002 RMA 2003 ACM 2004 FCP 2005 LIV
2006 FCB 2007 ACM 2008 MUN 2009 FCB 2010 INT
2011 FCB 2012 CHE 2013 BAY 2014 RMA 2015 FCB
2016 RMA 2017 RMA 2018 RMA 2019 LIV 2020 BAY
2021 CHE 2022 RMA 2023 MCI 2024 RMA 2025 O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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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러피언컵 결승전
1969
마드리드
1969-70
밀라노
1971
웸블리
파일:1970 유러피언컵 결승전 표지.jpg
European Cup Final Milano 1970

1. 개요2. 진출 팀3. 경기 내용4. 경기 내용5. 경기 후6. 여담

1. 개요

1970년 5월 6일 이탈리아 밀라노산 시로에서 열린 페예노르트 로테르담셀틱 FC 간의 열다섯 번째 유러피언컵 결승전.

페예노르트에게는 첫 결승전이었으며, 셀틱1967 유러피언컵 결승전 우승 이후 다시 결승에 올라 통산 두 번째 우승을 노렸다.

이 경기의 주심은 이탈리아 국적의 콘체토 로벨로(Concetto Lo Bello)[1]가 담당했다. 경기는 약 53,187명의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진행되었다.

2. 진출 팀

파일:페예노르트 로테르담 로고(1960~1973).svg
파일:셀틱 FC 로고(1965~1977).svg
페예노르트 셀틱

2.1. 페예노르트 로테르담

에른스트 하펠 감독이 이끄는 페예노르트는 1968-69 에레디비시 우승을 통해 유러피언컵에 진출했다. 1라운드에서 아이슬란드의 KR 레이캬비퀴르를 상대로 원정에서 12-2[2], 홈에서 4-0이라는 압도적인 스코어로 승리하며 합산 16-2로 2라운드에 진출했다.

2라운드에서는 디펜딩 챔피언 AC 밀란을 만나 원정에서 0-1로 패했으나 홈에서 2-0으로 승리하며 합산 2-1로 8강에 올랐다. 8강에서는 동독의 1. FC 포어베르츠 베를린과 맞붙어 원정에서 0-1로 패했지만 홈에서 2-0으로 승리해 합산 2-1로 4강에 진출했다.

준결승에서는 폴란드의 레기아 바르샤바를 상대로 원정에서 0-0으로 비긴 후 홈에서 2-0으로 승리해 결승에 올랐다.

2.2. 셀틱 FC

조크 스타인 감독이 이끄는 셀틱은 1968-69 스코틀랜드 풋볼 리그 디비전 원 우승을 통해 유러피언컵에 진출했다. 1라운드에서 스위스의 FC 바젤을 상대로 원정에서 0-0, 홈에서 2-0으로 승리해 2라운드에 진출했다.

2라운드에서는 포르투갈의 SL 벤피카와 접전을 펼쳤다. 홈에서 3-0으로 승리했지만 원정에서 연장 끝에 0-3으로 패해 합산 3-3으로 동점이 되었다. 당시 재경기 대신 동전 던지기를 통해 승자를 결정했는데[3], 셀틱이 운 좋게 다음 라운드에 진출했다.

8강에서는 이탈리아의 ACF 피오렌티나를 홈에서 3-0으로 이기고 원정에서 0-1로 패했지만 합산 3-1로 4강에 진출했다. 준결승에서는 잉글랜드의 리즈 유나이티드 FC를 원정에서 1-0, 홈에서 2-1로 이기며 합산 3-1로 결승에 올랐다.

2.3. Road to the Final

''''''
파일:페예노르트 로테르담 로고(1960~1973).svg 페예노르트 파일:셀틱 FC 로고(1965~1977).svg 셀틱
대진 합계 1차전 2차전 녹아웃 대진 합계 1차전 2차전
파일:크나츠피르드뉘피엘라흐 레이캬비퀴르 로고.svg KR 레이캬비퀴르 16:2 12:2 (원정) 4:0 (홈) 1라운드 파일:FC 바젤 로고(1966~1982).svg 바젤 2:0 0:0 (원정) 2:0 (홈)
파일:AC 밀란 로고(1946~1979).svg 밀란 2:1 0:1 (원정) 2:0 (홈) 2라운드 파일:SL 벤피카 로고(1930~1999).svg 벤피카 3:3
(동전 던지기)
3:0 (홈) 0:3 (원정)
파일:FC 포어베르츠 베를린 로고.svg 포어베르츠 베를린 2:1 0:1 (원정) 4:2 (홈) 준준결승 파일:ACF 피오렌티나 로고(1967~1974).svg 피오렌티나 3:1 3:0 (홈) 0:1 (원정)
파일:레기아 바르샤바 로고.svg 레기아 바르샤바 2:0 0:0 (홈) 2:0 (원정) 준결승 파일:리즈 유나이티드 FC 로고(1964~1971).svg 리즈 3:1 1:0 (원정) 2:1 (홈)
4승 1무 3패 (24득점 6실점) 합계 성적 4승 1무 3패 (11득점 5실점)
◀ 1968-69 결승 ▶ 1970-71

3. 경기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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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70 유러피언컵 결승
1970년 5월 6일 수요일 21:00 (CEST)
대한민국 표준시 1970년 5월 7일 목요일 04:00 (CEST+7)
'''
산 시로 (밀라노)
주심: 콘체토 로벨로 (이탈리아)
관중: 53,187명
파일:페예노르트 로테르담 로고(1960~1973).svg
파일:trophy_front_full.png
파일:셀틱 FC 로고(1965~1977).svg
페예노르트 셀틱
2 1
<rowcolor=#000,#fff> 32' 리누스 이스라엘
117' 오베 킨드발
파일:UEFA 챔피언스 리그 엠블럼.svg
파일:득점 아이콘.svg
30' 타미 게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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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경기 내용

경기 전 셀틱은 유럽 무대 경험이 풍부하고 더 강한 팀으로 평가받아 우승 후보로 점쳐졌다. 반면 페예노르트는 처음 출전한 결승이었지만, 당시 '토탈 풋볼'의 시초라 할 수 있는 혁신적인 축구 스타일을 구사하고 있었다.

페예노르트는 정규 주전 골키퍼 대신 1년 넘게 공식 경기에 출전하지 않았던 에디 피터스 흐라플란트를 선발했다. 경기 초반 셀틱의 중앙 수비수 짐 브로건이 부상을 당하며 불안한 출발을 보였다.

경기 시작 30분 만에 셀틱이 프리킥 기회를 얻어 토미 젬멜이 원거리 슛으로 선제골을 기록했다. 그러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불과 2분 뒤, 페예노르트의 주장 리누스 이스라엘이 헤딩골로 동점을 만들었다. 후반전에는 양팀 모두 득점에 실패했고, 특히 셀틱 골키퍼 에반 윌리엄스의 선방이 돋보였다.

결국 경기는 연장전까지 이어졌고, 페예노르트가 주도권을 잡았다. 연장 후반 종료 4분을 남기고 페예노르트의 긴 프리킥이 셀틱 수비 지역으로 날아왔다. 셀틱의 주장이자 리베로였던 빌리 맥닐이 넘어지면서 공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고, 이 틈을 노린 스웨덴 출신 공격수 오베 킨드발이 빈 골문으로 결승골을 넣었다.

최종 스코어 2-1로 페예노르트가 승리했고, 이로써 네덜란드 클럽이 처음으로 유러피언컵을 들어올리는 역사를 만들었다. 이는 페예노르트의 유일한 유러피언컵 우승으로 남아있다.

5. 경기 후

페예노르트의 우승은 네덜란드 축구의 황금기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이들이 보여준 '토탈 풋볼'은 곧 AFC 아약스가 이어받아 1971년부터 1973년까지 3연속 유러피언컵 우승으로 발전시켰다.

셀틱에게는 이것이 현재까지 두 번째이자 마지막 유러피언컵 결승 진출이었다. 셀틱은 이후 챔피언스 리그 결승에 한 번도 진출하지 못했다.

경기가 열린 1970년 당시 이탈리아는 전국적인 파업으로 큰 혼란을 겪고 있었고, 이 결승전도 취소될 위기에 처했었다. 그러나 이탈리아 축구 연맹이 노동조합과 협상하여 경기장 운영을 보장하고 파업 중에도 국제 행사를 진행하기로 결정하면서 경기가 예정대로 개최될 수 있었다. 이는 이탈리아 클럽들의 UEFA 대회 참가 자격을 유지하기 위한 실용적인 결정이었다.

6. 여담

페예노르트의 승리는 단순한 우승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이 경기는 유럽 축구의 새로운 트렌드인 '토탈 풋볼'의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순간이었다. 토탈 풋볼은 모든 선수가 어떤 포지션에서든 플레이할 수 있어야 하며, 지속적인 볼 점유율을 중시하는 혁신적인 전술이었다.

페예노르트의 감독 에른스트 하펠은 경기 내내 셀틱의 위험한 윙어 지미 존스톤을 더블 마킹하는 전술을 사용했다. 또한 미드필더 트리오인 프란츠 하실, 빌럼 판하네험, 빔 얀선이 상대 미드필더를 압도했다.

이 경기에서 페예노르트가 원정에서 넣은 첫 번째 골이 바로 이스라엘의 동점골이었다는 것도 흥미로운 사실이다. 이들은 그전까지 모든 골을 홈 경기에서만 기록했었다.
[1] 2년 전인 1968 유러피언컵 결승전에도 주심을 담당하였다.[2] 공식적으로는 원정 경기였지만, 실제로는 양 경기 모두 로테르담스타디온 페예노르트에서 열렸다[3] 이 시즌부터 스포츠에서 재경기 대신 동전 던지기로 승부를 결정하는 방식이 도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