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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10-15 18:03:28

마에다 겐이

오봉행
사법 담당 행정 담당 토목 담당 재정 담당 종교 담당
아사노 나가마사 이시다 미츠나리 마시타 나가모리 나츠카 마사이에 마에다 겐이
파일:952px-Maeda_Gen'i.jpg
마에다 겐이[1]
前田玄以(まえだ げんい, 전전현이)
(덴분 8년(1539년) ~ 게이초 7년 음력 5월 20일(1602년 7월 9일))
前田玄以
1539-1602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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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마에다 겐이는 센고쿠 시대의 무장이자 다이묘이다. 오봉행 중 아사노 나가마사와 함께 말년에 할복을 면하고 자신의 영지를 지켜낸 둘 뿐인 다이묘이다.[2]

2. 생애

1539년 미노국에서 태어났다. 젊은 시절에는 미노 또는 히에이산의 승려였으나, 오다 노부나가에 의해 초빙되어 오다 노부타다를 섬겼다. 혼노지의 변에서는 오다 노부타다와 함께 니조 성에 있었으나 노부타다의 명령으로 그의 적남 산보시를 데리고 탈출해 기요스 성으로 도주했다. 그 후 오다 노부카쓰를 섬기다 하시바 히데요시가 세력을 키우자 1584년 그의 가신이 되었다.

그 후 도요토미 정권에서 조정과 교섭하는 역을 맡아 고요제이 천황의 주라쿠다이 행차 등에서 활약했다. 히데요시 사후 오봉행으로써 도쿠가와 이에야스우에스기 가게카쓰 간의 갈등을 막기 위해 노력하였고, 세키가하라 전투에서는 중립을 지키며 도요토미 히데요리를 지켰고, 이로 인해 단바 카메야마 5만석의 기존 영지를 지켜냈다. 이후 1602년 사망했다.


[1] 일본어 위키백과 前田玄以 문서에 따르면, 센고쿠 시대부터 아즈치모모야마 시대까지 승려·무장·다이묘. 도요토미 정권 노고부교 한명.[2] 아사노 나가마사의 삼남 계통은 추신구라의 모티브가 된 아코 사건으로 단절됐으나, 정통인 차남 나가아키라의 후손은 메이지 유신까지 살아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