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2. 줄거리
언뜻 보면 지뢰를 소재로 한 전쟁 영화로 오인될 수 있지만, 사실은 여러 모로 생각의 여지를 많이 남겨주는 영화다. 작중 주인공은 지뢰를 밟고 그대로 멈춰 서서 온갖 착시와 환각에 시달려 가며 수십 시간을 버티다가...최후에는 치명상을 각오하고 구조 요청을 하기 위해 발걸음을 가까스로 옮긴다. 하지만 발을 떼었는데도 폭발은 일어나지 않았고, 멍하게 굳은 주인공은 자신이 밟은 것이 지뢰가 아니라 장난감 병정이 들어 있던 철제 깡통이었음을 깨닫고 자신의 어리석음에 허탈하게 웃으며 무사히 고국으로 생환한다는 이야기이다.
3. 해석
스토리는 실로 단순하지만, 작중 대사와 상황이 주는 메세지를 찾아내는 재미가 쏠쏠한 영화다.앞서 걷던 동료가 지뢰에 당한 걸 보며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실패를 두려워하여 도전의 원동력마저 잃은 인간 군상을 표현한다. 최후의 순간에 한 걸음 내딛어 나간 주인공이, 자신이 밟은 게 사실은 지뢰가 아니라 장난감 깡통이었음을 알고 허탈하게 웃는 장면 또한 그러하다. 결국 인간의 두려움이란 본인이 스스로 만들어 낸 마음 속의 허상이 부풀려 낸 것일 뿐이고, 그 허상과도 같은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선 힘들고 두려운 상황에서도 한 걸음 나아갈 용기를 내는 것에 있다. 주인공이 밟은 게 설령 진짜 지뢰였다 할지라도, 밟은 채 가만히 선 채로 무기력하게 죽음을 받아 들이는 것보다 앞으로 한 걸음이나마 나아가는 것이 더 가치가 있다는 것이 이 영화가 주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일 것이다.
작중에서 지뢰가 매설된 곳을 미리 외워두고 피해 다니던 지역 원주민이 주인공에게 '두려워 말고 계속 나아가라'고 한 것도, 사실은 주인공이 지뢰가 매설된 지역을 지나갔기에 지뢰를 밟지 않았다는 걸 간접적으로 알려줄려고 해준 말이다. 하지만 주인공은 내면의 두려움에 완전히 침식되어 주변의 조언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못하는데, 이 또한 우리네 삶에 비유해 보자면 먼저 앞서 나간 인생 선배와 어른들의 조언을 귀담아 듣지 못하는 젊은 청춘들의 방황과 망설임, 시행 착오를 의미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다만, 이 작품의 주제는 '두려움을 갖지 말라'라기보다는 과유불급, 즉, '지나치게 두려워하지 말라'에 가깝다. 애초 주인공이 두려움을 갖게된 계기가 '두려움이 없는' 친구가 '계속 앞으로 나아가다가' 다리 절단되는 것을 눈앞에서 목격했기 때문이다. 그는 겁을 먹고 망설이는 주인공에게 "넌 어디서 굴러온지 모를, 사막을 가로질러 날아온 표지판 하나에 놀라 바지에 오줌을 지리고 있지"라고 조롱하며, 뒷걸음으로 장난치듯 걷다가 펑하고 끝난다. 만약 친구가 괜찮은 것을 확인했다면 신중한 주인공도 용기를 내어 친구의 뒤를 따라갔을 것이다. 하지만 친구가 뭔가를 밟을 때 딸깍하는 소리를 들은 주인공은 친구를 부르는데, '두려움 없이' 발을 뗐다가 펑하며 다리가 날라가는 것을 봤으니, 자신 역시 딸깍하는 것에 놀란 것은 결코 '허상같은 두려움'은 아니었다.
결과적으로는 장난감으로 밝혀졌으나 이는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이다. 친구같은 사례도 있는 이상, 결코 근거 없는 두려움이 아니라 충분히 합리적인 두려움이었다. 만약 911상담원에게 비슷한 상황에서 "발을 뗄까요?"라고 물어보면, 용기를 갖고 떼라기보다는 최대한 구조를 기다리라고 조언할 것이고, 그래야만 한다. 이 영화에서는 구조가 지연되며 사달이 났긴 하지만, 또 똑같은 상황이 발생한다해도 두려움없이 발을 떼기보다는, 가급적 최대한 구조를 기다리는게 현명한 선택일 수 있다. 운좋게 장난감일 확률도 있지만, 친구처럼 진짜 지뢰일 확률도 있는 이상 말이다. 다만 감독은 '내가 가지고 있는 두려움이 실은 허상일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가끔은 용기를 내어 나아가는 것이 필요할 수도 있음을 말하고 있다.
기이한 지역 원주민도 여러 가지 해석이 존재한다. 그는 지뢰가 매설된 곳을 다 알고 있다는 듯 지그재그로 피하는데, 주인공은 여긴 330만개의 지뢰가 묻혀있다고 하고, 모래폭풍도 자주 불고 실제 주인공과 가까운 거리에 있던 친구는 지뢰를 밟았으니 주인공의 거리엔 지뢰가 없다고 100% 장담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황량한 사막의 특성상 위치 표식이 쉽지 않고 지뢰의 매설 위치를 정확히 가늠하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주인공이 지뢰를 밟지 않은 걸 안 지역 원주민이 당신이 밟은 것은 허상이라는 것을 넌지시 알려준 것이라는 해석도 무리가 있기에, 이 원주민은 환상이었다는 해석도 있다. 아니면 자신도 다리를 잃었음에도 잘 살고 있으니 다리 잃는 것에 지나치게 두려워하지 말라는 의미일 수도 있다. 만약 주인공이 지뢰를 밟지 않은 걸 알면서도 뜬구름잡는 공허한 소리만 늘어놓은 것이라면, 실제 상황이었다면 사실상 가지고 놀며 장난친 것이니 죽빵을 날려도 어색하지 않은 상황이다.(...)
여담이지만 지뢰는 밟고 나서 발을 떼야 터지는 게 아니라 밟자마자 그 즉시 신관이 발동해서 폭발한다. 고증이 개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딱히 모티프가 되는 실화가 있는 것도 아니고, 전쟁의 참상이나 액션에 포커스를 맞춘 전쟁 영화도 아니기에 크게 흠을 잡을 부분은 되지 못한다. 즉 밀리터리 영화가 아니라, 군대라는 배경과 지뢰에 대한 낭설과 속설을 차용해 만든 교훈적인 영화로 받아들이는 것이 옳다는 뜻.
이 영화와 비슷한 내용의 영화로는 2007년에 개봉한 한국 영화 만남의 광장이 있다. 만남의 광장의 중심 스토리가 마인과 비슷한 것은 아닌데 서브 스토리로 시골 마을로 향하던 한 초등학교 교사가 실수로 지뢰를 밟아서 며칠동안 꼼짝도 못하고 그 자리에서 버티다가 실수로 발을 뗐는데 지뢰가 터지지 않아 살아남는 내용이 있다. 영화 마인은 비슷한 과정을 통해 교훈을 주지만 만남의 광장은 장르가 코미디 영화다보니 거기에서 살아남기 위한 사투 자체가 굉장히 코믹하게 그려지고 딱히 무슨 교훈을 주는 것도 아니다.
사실 이 영화에서도 관객들도 주인공이 발을 뗄 때 잔뜩 긴장하나, 충격적인(?) 반전을 보고 긴장이 탁 풀리며 허탈하게 웃기도 할 정도니, 황당한 상황은 분명하다. 다만 친구가 사망하고 주인공이 너무 처절한 상황을 겪었기에 진지해보이는 건데, 역시 비슷한 내용이라도 포장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느껴질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 이 영화 리뷰들을 검색해보면, 다들 웃어 넘긴 코미디 영화의 에피소드 한토막을 포장지를 바꿔 그럴 듯 하게 꾸며놨더니 이 영화를 보고 인생의 깨달음을 얻었다거나, 심지어 이 영화를 보고 인생이 바뀌었다, 직장을 그만두고 꿈에 도전한다 등등의 리뷰가 있는 것을 보면, 역시 꿈보다 해몽임을 알 수 있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은 발을 떼면 다리가 날라갈 것이라고 두려워했으나, 실은 전혀 위험하지 않은 걸 두려워하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 투자와 도전 등은 리스크가 따르고 용기 있게 도전하라는 주식투자 사기꾼들에게 속아 주식투자했다가 폭망하여 자살하는 사람들도 많으므로 신중한 자세가 더 좋을 수도 있다. 따라서 이 영화는 '확인 강박증'이 있는 사람들에게 더 용기를 줄 수도 있다. 왜냐하면 '확인 강박증'을 가진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이 영화와 마찬가지로 '허상'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매일 신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지 않으면 불안하거나, 가스 레인지를 껐는지를 지나치게 수시로 확인하면서도 여전히 불안하여 계속 확인하는 등, 이런 사람들은 '허상의 두려움'으로 인해 일상 생활에 지장을 받을 정도로 고통을 받고 있다.
양창순 신경정신과전문의은 강박증으로 괴로움을 겪고 있는 사례를 소개하며 이렇게 해결책을 제시했다. <병든 사회에서 나를 지키는 방법은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하자. 그리고 나쁜 일은 내가 걱정하고 불안해하는 것보다는 덜 일어난다”고 스스로를 안심시키는 길밖에 없는 듯하다. 그렇지 않고 그 걱정에 눌리면 결국 불안신경증에 피해망상으로 발전한다.> 실제 인간의 걱정 중 99%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며, 그만큼 인간은 일어나지도 않는 일에 대해 상상을 해버리고 미리 걱정을 해버리는 경향이 있다. 이 영화에서도 주인공은 극단적인 공포에 사로잡혀 각종 환각증세에 시달린다.
짐 캐리 주연의 심리스릴러 영화 '넘버 23'의 주인공은 숫자 23에 '공포'라는 의미를 부여하여 마치 귀신에 사로잡히듯 숫자에 사로잡혀 스스로가 만들어놓은 틀에 갇혀 점점 망상과 강박증이 심해지는데 '내면의 두려움'을 극복해가는 주제가 비슷하다. 물론 마인의 공포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넘버 23의 공포는 망상적이긴 하지만 '생각하면 더 멀어진다'고, 짐 캐리가 죽음의 공포에 떨고 있을 땐 증세가 심해지나 역설적이게도 오히려 스스로 죽기로 결심하여 마음을 비우고 내려놓으니 해탈한 듯 "운명이란 건 없다. 선택만이 존재할 뿐"이란 깨달음을 얻는다. 마인의 주인공도 지뢰에 대한 두려움이 점점 피해망상적으로 심해지나, 마음을 정리하고 체념상태에 가까워지자 두려움이 사라지고 점차 용기가 생겨나며 초월자가 된다. 넘버 23 리뷰에서는 현대인들이 여러 속설 등에 편집증적인 증세를 보여가는 것을 예로 들었는데, 그래서 '말을 많이 들으면 들을수록 당신은 더욱 더 약해진다'란 격언도 존재한다. 평상시라면 그냥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사소한 것에도 뭔가 안 좋은 말을 듣고 의미를 부여하여 징크스가 생기면 마인의 주인공처럼 점점 나약해지기 때문이다.
물론 양창순 전문의도 지적했듯, 매일 스펙타클한 사건,사고가 일어나는 사회에서 어쩌면 걱정하지 않는게 이상한 걸지도 모른다. 특히 이게 '돈'과도 연관되어 보험광고나 건강식품 광고 등을 보면 불안감 마케팅을 하여 젊은 나이임에도 값비싼 영양제 여러개를 매일 복용하며 하루라도 복용안하면 큰일이 날 것처럼 불안해하는 사람들도 있다.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이 일어났던 것도 언론사와 기업에서 가습기 살균제를 안쓰면 병이 날 것처럼 묘사하여 두려움을 주입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현대인들은 저마다 많은 강박증과 불안증세에 시달리며, 신문을 강박적으로 보는 등 무엇인가에 중독된 사람들은 습관이 들어 하루라도 안보면 왠지 막 불안하고 낯설 수 있으나, 그것을 극복하면 이 영화의 주인공처럼 자유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실체없는 두려움에 얽매여 나아가지 못하는 대표적인 경우는 '미신'도 있다. 풍수지리나 사주, 귀신, 사이비종교 등 이들은 근거 없는 불안감과 두려움을 주입하여, 해결책을 제시하며 돈을 번다. 그야말로 '병주고 약주는' 격이다. 실제 질문 등을 살펴보면, 서울 용산구에 위치해있는 노른자 땅을 싸게 매입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는데, 풍수지리학자가 용산구 일대는 흉한 기운이 있어 망한다고 했다면서 주저하고 있었다. 용산구 일대가 폭망한 거지들만 거주하는 곳이 아님을 깨닫는다면, 이는 '근거없는 두려움'임을 알 수 있다. 그들에게는 정말 이 영화 한편이 그 어떤 철학책이나 미신보다 가치있는 깨달음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마치 '우물안 개구리'처럼, 미신에 사로잡혀 있을 때는 미신이 전부처럼 느껴지며 미신에서 강제하는 틀을 벗어나면 지뢰밟은 주인공처럼 여길 벗어나면 큰 불행이 닥칠 것처럼 두려워해서 주저하나, 막상 그 틀을 깨고 나아가면 더 넓은 세상과 자유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1]
[1] 다만, '늦게 배운 도둑질에 날샌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한번 틀을 깨면 다시 이전으로 돌아가기가 힘들기에 주의해야 한다. 연쇄살인범인 유영철도 처음엔 사람을 죽이는 걸 두려워했었다. 그래서 동물부터 시험삼아 죽여보기 시작했는데, 유영철도 처음에는 사회 규범이라는 틀에 어느 정도 묶여있어 본능적으로 살인을 꺼렸으나, 한번 그 틀을 깨고 살인을 한 후에는 걷잡을 수 없이 살인을 저지르기 시작했다. 그동안 사회규범이라는 틀에 묶여 봉인된 채 억눌러왔던 살인의 본능이 튀어나와 발현되기 시작한 것이다. 도둑질이나 살인도 처음이 어려운 법이라, 특히 내면에 반사회적 본성이 잠재되어 있는 사람들은 한번 범죄를 시작하면 되돌리기 힘드므로 틀을 깰 때에는 신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