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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30 20:30:32

마크 브레시아노

호주의 前 축구선수
파일:bresciano.jpg
<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마크 브레시아노
Mark Bresciano
출생 1980년 2월 11일 ([age(1980-02-11)]세)
호주 빅토리아주 멜버른
국적
[[호주|]][[틀:국기|]][[틀:국기|]]
신체 182cm
직업 축구선수 (유틸리티 플레이어[1] / 은퇴)
소속 선수 불린 라이온스 (1995~1996 / 유스)
AIS (1997 / 유스)
불린 라이온스 (1995~1997)
칼턴 (1997~1999)
엠폴리 FC (1999~2002)
파르마 AC (2002~2006)
US 팔레르모 (2006~2010)

SS 라치오 (2010~2011)
알 나스르 FC (2011~2012)
알 가라파 SC (2012~2015)
국가대표 84경기 13골 (호주 / 2001~2015)

1. 개요2. 선수 시절
2.1. 클럽 경력2.2. 국가대표 경력
3. 플레이 스타일4. 기록
4.1. 대회 기록4.2. 개인 수상
5. 브레시아노에 대한 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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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호주의 前 축구선수.

이탈리아계 아버지와 크로아티아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슬하 2녀가 있다.

마크 슈워처, 마크 비두카, 해리 큐얼, 팀 케이힐, 루카스 닐 등과 함께 2010년대까지 호주 축구의 중심으로 활약했던 미드필더였고 세리에 A에서 오렌기간 뛰었으며 호주 선수 세리에 A 통산 최다골과 공격포인트를[2] 기록하였다. 슛이 날아온 위치에서 멈춰서 주먹을 옆구리에 쥐고 턱을 치켜드는 '스파르타쿠스' 골 세리머니로도 인기를 끌었다.[3]

2. 선수 시절

2.1. 클럽 경력

파일:Parma_Bresciano.jpg
파르마 시절 제법 풍성했다

1995년, 그는 겨우 15살의 나이에 불린 라이온스의 1군팀에 콜업됐다. 그리고 2년 뒤 팀의 레귤러로 자리잡게 된다.

1999년, 당시 친분이 두터웠던 빈스 그렐라가 몸담고 있는 세리에 B엠폴리 FC로 이적하였고 2001-02 시즌에 리그에서만 10골 8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에이스로 활약했고 세리에 A 승격의 주역으로 거듭났다.

그리고 시즌 종료 뒤 2002-03 시즌부터 같은 리그의 파르마 AC로 700만 유로에 이적하였다. 이는 당시 호주 선수로서 가장 비싼 이적료로 기록됐다. 첫 시즌에 여러차례 부상으로 고생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팀의 5위 달성과 UEFA 컵 진출권을 획득하는데 기여했다.

다음 시즌에도 브레시아노는 확고한 주전으로 뛰며 다시 한번 리그 5위 달성과 UEFA 컵 준결승 진출을 도왔다.

영입이 되고나서 나카타 히데토시를 주전에서 밀어내고 2003-04 시즌 도중에 볼로냐로 이적하게 만들었다.

2003-04 시즌에도 그의 입지는 변함이 없었지만 팀은 극심한 부진에 빠져 17위를 기록하며 간신히 강등을 면하는 굴욕을 맞보게 된다. 7공주 시절의 파르마를 생각하면 분명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지난 시즌의 부진을 만회하기 위해 철지부심하여 맞이한 2004-05 시즌. 그와 팀 모두 지난 시즌보다는 나은 모습을 보여주며 10위를 기록한다. 그러다 칼초폴리 스캔들이 터지면서 순위는 7위로 상승했고 유럽 대항전 무대에 진출할 수 있었다.

독일 월드컵이 끝난 직후 그는 US 팔레르모와 4년 계약을 채결하며 입단했으며 오자마자 팀에 잘 정착하여 주전으로 뛰었다. 그러다 2007 아시안컵이 끝나고 맨체스터 시티로 이적할 뻔했으나 이적료 문제로 무산되었다.

2009-10 시즌이 끝난 뒤 팔레르모와 계약이 만료되면서 7월 3일에 SS 라치오로 이적했다. 다음 해에는 아랍에미리트의 알 나스르 SC로 이적하여 중동 무대로 오게 되었다. 1년 뒤에는 알 가라파 SC로 팀을 옮겼으나 이적을 마무리하기 위해 일방적으로 나스르와의 계약을 위반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4개월 출장정지 및 벌금형을 받았다.

이후 브레시아노는 스포츠 중재 재판소에 항소했지만 기각되었고 징계를 마친 뒤 2014-15 시즌을 끝으로 현역 은퇴했다.

세리에 A 통산 247경기 31골 23도움 유럽 프로 통산 349경기 51골 26도움을 기록하였다.

2.2. 국가대표 경력

사커루 소속으로 2000년 시드니 올림픽, 2001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한국·일본, 2004 OFC 네이션스컵, 2006 FIFA 월드컵 독일, 2007년 AFC 아시안컵,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2015년 AFC 아시안컵에 출전하였다.

브레시아노는 1997년에 U-17 대표팀에 발탁되는 것을 시작으로 U-20, U-23 대표팀에도 합류했다. U-23 대표로는 자국에서 열리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 출전하기도 했다. 프랭크 파리나 감독에 의해 발탁되어 국가대표로는 2001년 컨페드컵에서 3위를 차지하기도 했지만 우루과이에 지역에선 대륙간 플레이오프에서 0-3으로 패하면서 한일 월드컵에는 나오지 못했다.

그러다가 거스 히딩크 감독을 영입하며 또 다시 지역 예선 대륙간 플레이오프에서 우루과이를 만나 우루과이와의 원정에서 0-1로 패했으나 홈에서 득점을 기록하며 1-0으로 승리, 승부차기 끝에 우루과이를 4-2로 꺾고 월드컵에 진출했다. 2006 FIFA 월드컵에는 출전하게 되었고 본선에서 일본과의 경기 끝에 극적인 3-1 역전승에 공헌하였으며 브라질에게는 0-2로 졌지만 크로아티아와 2-2로 비겨 16강에 올라 이탈리아에 0-1로 석패해 16위로 월드컵을 마쳤다. 호주가 아시아 축구 연맹으로 넘어오면서 2007년 AFC 아시안컵에 출전하였다.

그는 오스트레일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의 주장으로 선임되어 2010년 남아프리카 공화국 월드컵에 자국을 조1위로 본선 진출시켰으며 홈에서 일본을 2-1로 꺾는 수훈까지 세웠다. 본선에서는 독일에 0-4로 패하며 16강 진출에 실패했으나, 강팀들과 대등한 경기를 펼침으로써 진정한 세계 강팀임을 인식시켜주었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오스트레일리아는 일본, 이라크와 가까스로 비기고 오만에 1-2 패배를 당하는 등 부진하였고 급기야는 마지막에 요르단과 이라크를 이기지 못하면 예선 탈락하게 되는 상황까지 갔다. 이러한 백척간두의 상황 하에서 그의 활약은 빛을 발했고 호주는 턱걸이로 본선에 올랐다. 2015년 AFC 아시안컵이 끝난 뒤 은퇴했다.

3. 플레이 스타일

그는 에서 다양한 포지션 소화가 가능했던 멀티 플레이어 였으며 득점력도 준수하였고 세트피스도 능하였다.

4. 기록

4.1. 대회 기록

4.2. 개인 수상

5. 브레시아노에 대한 언사

팀의 핵심 미드필더로 이탈리아 무대에 오래 뛰었으며 멋진 골들이 많았던 다재다능한 미드필더
한준희#

[1] 수비수만 제외하고 모든 포지션을 소화하였으며 주 포지션은 공격형 미드필더,중앙 미드필더[2] 31골 23도움#[3] 골을 축하하러 온 팀 동료들이나 관중들이 몰려들 때까지 가만히 서 있곤 했다.[4] 2022년은 사상 첫 호주의 A매치가 1922년 더니딘에서 시작된지 100년이 되는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