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만수크는 튀르키예 이슬람 백과사전에 비추어 보면 증명으로 인하여 이전 구절을 폐지한다는 개념이다. 대표적으로 이슬람에서 폐지된 예를 보면 남편과 사별한 여성의 숙려기간이 1년에서 4달 10일로 바뀐 사례 등을 들 수 있다. 사실 계시를 받는 종교를 보면 처음의 계시가 나중에 뒤바뀌는 경우가 존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개념 자체는 이상한 것이 아니지만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사실상 왜곡되어 알려져 있는데 이슬람은 거짓말을 조장하고 구절을 멋대로 해석하고 바꿔서 폐지된 것인데도 있다고 주장하고 불리한 구절은 숨기고 다닌다는 논리다.2. 종교적 근거
쿠란 2:106(바까라 장)에서 언급하고 있다. 다음은 쿠란 2:106의 다양한 번역본이다.어떤 말씀도 폐기하지 아니하며 망각케하지 아니하되 보다 나은 혹은 그와 동등한 말씀으로 대체하시나니 하나님은 모든 일에 전지전능하심을 너회는 모르느뇨 쿠란 2:106, 최영길 역
어떤 꾸란 구절을 폐지하거나 망각케 할 때면 나(하나님)는 그보다 더 좋은 것이나 그와 유사한 것을 가져오노라. 실로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이 가능한 분이심을 그대(무함마드)가 알고 있지 않았던가? 쿠란 2:106 김은수 역
튀르키예어 번역본은 다음과 같다.
튀르키예어: Biz bir âyetin hükmünü yürürlükten kaldırır veya onu unutturursak, mutlaka daha iyisini veya benzerini getiririz. Bilmez misin ki Allah her şeye kādirdir.
한국어 번역본: "구절의 조항을 폐지하거나 잊어버리면 반드시 더 좋은 구절이나 비슷한 구절을 가져올 것이다. 알라가 모든 것에 대한 권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모르느뇨?"
쿠란 2:106, 터키 종무청, 튀르키예어번역
한국어 번역본: "구절의 조항을 폐지하거나 잊어버리면 반드시 더 좋은 구절이나 비슷한 구절을 가져올 것이다. 알라가 모든 것에 대한 권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모르느뇨?"
쿠란 2:106, 터키 종무청, 튀르키예어번역
이에 대한 타프시르(쿠란 주해)는 #터키 종무청 참조. 요약하면 나스크는 "취소하다, 제거하다, 파괴하다, 이전하다"를 의미하는 이슬람 용어로 "종교적 조항을 폐지하거나 그것을 나중의 것으로 대체한다"는 의미로 사용되고 명령과 금지만 취소할 수 있으며 만수크는 이미 폐지된 것을 의미한다.
3. 왜곡
일부 이슬람공포증 진영에서 이슬람이 만수크를 이유로 나중 구절을 우선하고 이전 계시를 폐지하는 등 계시가 계속 바뀌고 유리한 구절을 가지고 온다는 주장을 하며 왜곡하는 경우가 있다.이슬람 왜곡의 예시
특히 위의 링크의 한국이란인교회 이만석 목사 등은 만수크와 나지스 등을 통해서 이슬람은 종교의 자유가 있다는 구절등 자기들에게 선교[1]할 때 불리한 구절은 폐지되었지만 있는 척 하며 구라치고 평화의 종교라고 말하고 다니지만 사실 이슬람에 그런 평화적 구절은 없고 호전적 구절[2]만 남았다는 논지다. 대표적으로 펼치는 논리가 쿠란의 메디나 계시는 폭력적이고 메카 계시는 평화적인데 무슬림들이 취사선택해서 왜곡한다는것이다. 그런데 정작 종교에 강요가 없다는 2:256은 메디나 시절에 계시된 구절이라는 게 함정이다.
3.1. 왜곡의 예시
첫번째로 흔히 9:5 같은 구절에 의해 2:256에 명시된 종교의 자유의 구절은 폐지되었다고 주장한다.[3]다음의 두 구절이다.
금지된 달이 지나면 너희가 발견하는 불신자들마다 살해하고 그들을 포로로 잡거나 그들을 포 위할 것이며 그들에 대비하여 복 병하라 그러나 그들이 회개하고 예배를 드리며 이슬람세를 떨 때 는 그들을 위해 길을 열어주리니 실로 하나님은 관용과 자비로 충 만하심이라 쿠란 9:5 최영길 역
종교에는 강요가 없나니 진리는 암흑속으로부터 구별 되니 라 사탄을 버리고 하나님을 믿는 자 끊기지 않는 단단한 동아줄을 잡았노라 하나님은 모든 것을 들 으시며 모든 것을 알고 계시너라 쿠란 2:256, 최영길 역
종교의 자유가 있다는 2:256의 구절이 폐지되었다는 견해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분명한 건 튀르키예 등의 나라에서는 종교의 자유가 폐지되었다고 가르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다. 터키 쿠란 주석(2:256) 이런 점을 비추어 보면 이슬람이 계시가 바뀌었다고 그게 곧 폭력 등을 가르친다고 일반화하는 것은 오류가 있다.
두번째로 음주에 관해서도 음주를 허용했다가 왜 바꾸었냐고 계시를 멋대로 바꾸었다고 그것이 만수크라고 주장한다. 해당 주장은 틀린 것은 아니다. 바뀐 것이기 때문이다. 주로 주장의 논지는 주로 2:219에서는 음주에 대해서 명확히 금하지 않다가 5:90에서 금한 건 바꾼 것이라는 것이다.
술과 도박에 관하여 그대에게 물을때 일러가로되 그 두 곳 에는 큰 죄악과 인간에 유용한 것이 있으나 그것의 죄악은 효용보 다 크다 이르되 또 그들이 무엇으로 자선을 베풀어야 되느냐고 물 을때 일러가로되 그것은 여분이라일러라 그리하여 하나님은 너희에게 계명을 주신 후 너회로 하여금숙고하도록 하였노라 쿠란 2:219, 최영길 역[4]
우선 이 구절을 이해하기 위해선 두 수라(구절)의 계시 시점을 따져봐야 한다. 타프시르 참조.
사실 구절들의 계시 순서를 보면 이슬람에서는 점진적인 금지를 추구했다고 이해해 볼 수 있다. 메카 시대에서는 술에 대하여 크게 금지하지 않았다. 관련 구절이다.
과일 중에는 종려나무 열매 와 포도나무가 있어 그로부터 마 실것과 일용할 양식을 얻나니 실 로 그 안에는 지혜가 있는 백성을위한 예증이 있노라 쿠란 16:67, 최영길 역
다음과 같은 구절이 계시되기도 하였다.
믿는 신앙인들이여 술에 취 하여 예배하지 말라 너희가 무엇 을 말하고 있는지 알때까지라 불 결해서도 아니되나 여행자는 제외라 너희가 아프거나 여행중일때 화장실에서 돌아왔을때 여성을 만졌을때 물을 발견치 못했을 때는 깨끗한 흙위에 따얌뭄을 하고 너 희 얼굴과 양손을 문질러 깨끗이 하라 실로 하나님은 사랑과 용서 로 충만하시니라 (최영길 역) 쿠란 4:43
처음에는 술 취한 상태의 기도가 금지되었으며 바카라 장의 구절(2:219)를 보면 이 점도 언급하지만 해악이 큰 것을 말하고 있다. 이 점을 비추어 보면 점차 금지의 강도를 높일 것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현대에도 금지의 강도는 높아지는 경우가 존재한다. 미성년자 의제강간의 나이, 혼인 가능 연령은 대상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데 역시 점진적으로 금지를 강화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어서 사실 이것을 나지스, 만수크라고 비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술 마시지 말라는 것이 비합리적인 구절이다, 왜 해악이라고만 단정하냐고 비판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이것을 단순히 유리한 교리 뒤집기 식으로 비판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은 비판이다.
4. 기독교, 유대교 등에도 적용되는가?
기독교, 유대교에서도 굳이 따진다면 만수크의 개념에 해당하는 예시들이 있기는 하다. 예를 들면 할례, 돼지고기, 이방인에 대한 대우 등이 있다. 가령 할례의 경우 예수는 할례를 했으며 구약에서는 할례가 명시되어 있었다. 돼지고기는 레위기에서 금지되었으나 예수의 등장으로 금지가 해제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방인에 대해 구약 성경에서는 배타적이었으나 루카의 복음서 등을 통해 이방인에 열려 있도록 변화하였다.그러나 신약에 들어서는 할례를 부정하고 있는데 예수의 등장으로 구약이 완성되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부르심을 받았을 때 이미 할례를 받은 사람이면 그 흔적을 굳이 없애려 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부르심을 받았을 때 아직 할례를 받지 않은 사람이면 굳이 할례를 받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할례를 받았거나 안 받았거나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오직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만이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각 사람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의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십시오.
고린토전서 7장 18~20절(공동번역성서)
고린토전서 7장 18~20절(공동번역성서)
이를 두고 과연 기독교 역시 만수크, 나스크의 종교라고 할 수 있는가? 이슬람이 만수크, 나스크의 종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논리를 그대로 기독교에도 적용하면 기독교 역시 무시무시한 종교가 되어 버린다.
어떤 성에 접근하여 치고자 할 때에는 먼저 화평을 맺자고 외쳐라. 만일 그들이 너희와 화평을 맺기로 하고 성문을 열거든 너희는 안에 있는 백성을 모두 노무자로 삼아 부려라. 만일 그들이 너희와 화평을 맺을 생각이 없어서 싸움을 걸거든 너희는 그 성을 포위 공격하여라. 너희 하느님 야훼께서 그 성을 너희 손에 부치실 터이니, 거기에 있는 남자를 모두 칼로 쳐죽여라. 그러나 여자들과 아이들과 가축들과 그 밖에 그 성 안에 있는 다른 모든 것은 전리품으로 차지하여도 된다. 너희 하느님 야훼께서 너희 원수들에게서 빼앗아주시는 전리품을 너희는 마음대로 쓸 수가 있다.
신명기 20장 10절~14절(공동번역성서)
신명기 20장 10절~14절(공동번역성서)
구약의 제노사이드적 구절이다.
그런데 그 율법교사는 자기를 옳게 보이고 싶어서 예수께 말하였다.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났다.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서, 거의 죽게 된 채로 내버려두고 갔다.마침 어떤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 사람을 보고 피하여 지나갔다. 이와 같이, 레위 사람도 그 곳에 이르러 그 사람을 보고, 피하여 지나갔다. 그러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길을 가다가, 그 사람이 있는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측은한 마음이 들어서,가까이 가서, 그 상처에 올리브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맨 다음에, 자기 짐승에 태워서,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주었다.
누가복음 10장 29~34절(표준새번역)
누가복음 10장 29~34절(표준새번역)
신약에서 흔히 기독교의 정신으로 불리는 사랑과 평화의 구절이다. 기독교의 본질을 담고 있다.
위의 두 구절들을 비추어 볼 때 구약의 가르침은 굉장히 이슬람의 호전적인 구절들과 비슷한 부분이 있으며 신약에서는 이런 부분을 뒤엎고 평화적인 모습을 강조하는 구절들이 많다. 위의 루카의 복음서 같은 경우도 존재한다.
사실 일부 이슬람공포증을 조장하는 기독교인의 논리(만수크)를 이용하면 기독교 역시 폭력적이고 거짓을 조장하는 종교로 왜곡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위의 이방인에 대한 제노사이드를 하라는 구절을 문자 그대로 인용해서 사실 구약이 폐지된 게 아니기 때문에 기독교는 선교를 위해서 유리한 신약 구절을 비기독교인에게 설파하고 불리한 구절은 숨기고 폐지되었다는 거짓말을 치는 것이라고 왜곡할 수 있는데 알다시피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결국 유대교나 기독교도 동등한 잣대를 들이대면 왜곡이 가능해지므로 이슬람의 문제만이라고 볼 수는 없다. 기독교, 유대교도 해석이 종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5. 결론
사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을 보면 종교의 창시자가 종교를 진행하면서 계시가 바뀐 경우가 있기 때문에[7] 결국 이러한 문제점은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가 가진 문제점이라고 봐야 할 것이며 이슬람 자체가 멋대로 유리하게 계시를 바꾼다고 왜곡할 수는 없다. 위의 주석도 보면 종교 창시자 예수, 무함마드가 자의로 마구잡이로 바꾼 것도 아니다.사실 진짜로 양보해서 이슬람이 만수크의 종교라면 무함마드 사후에 종교의 관용을 보장하는 구절들, 예를 들어 바까라 장의 2:256이나 사탄의 시 같은 구절들을 비워 버리면 되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이슬람이 멋대로 교리를 바꾸는 종교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다. 이슬람 자체가 만수크라는 개념을 가지고 엉뚱하게 가르치는 경우가 없지는 않다. 앞서 언급한 튀르키예 종무청 해석에서도 그렇게 해석하는 경우가 있다고 분명하게 언급한다.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 같은 이슬람 극단주의를 보면 오로지 호전성의 교리만 남았다고 주장하는 경우는 있으나 모든 이슬람이 그렇게 가르친다고 왜곡하는 것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다.
물론 그걸 통해 이슬람 극단주의자를 비판하거나 왜 이슬람이 적극적으로 만수크를 막을 근거를 내지 않았냐고 비판할 수는 있겠지만 학자마다 의견이 분분한 사항이라 일반화해서 꼭 유리하게 해석한다고 간주하고 비판하기는 무리가 있다. 마드하브마다 폐지의 범위가 다 다르기 때문이다. 모든 무슬림들이 일관되게 폐지 범위에 동의하지도 않으며 가령 이슬람공포증 진영에서 비판하는 2:256은 폐지된 것이라 주장하는 파와 아니라는 파가 나뉜다. 무조건 만수크 자체가 나쁘다기보다는 만수크를 악용해서 비무슬림에 대한 범죄나 테러를 옹호하는 등의 사례를 비판하는 게 타당하다.
[1] 정작 이슬람에는 선교라는 개념보다는 다와(dawah)라는 초대의 개념이 있다.[2] 쿠란 9:5 같은 구절들[3] 첨언하면 9:5 다음에 9:6에는 이교도들이 보호를 요청하면 보호하라는 구절이 있기는 하다.[4] 자선이 아니라 소비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주석등을 비추어 보면 술을 자선에 사용하는 것을 물어본 것으로 해석하는 견해도 있다. 영어판을 보면 소비라고 보긴 어렵다. 초기 이슬람에서는 자카트에 대한 개념이 정립되지 않아서 필요한 거 이외에서 기부하는 것이 였다가 추후에 정립되었다.[5] 술에 대한 금지는 이 구절로 완성되었다.[6] 여담이지만 기독교는 할례를 하는 것보다 마음의 할례가 중요한 것이라고 가르친다.[7] 구약에서의 돼지고기 금지가 신약에서는 예수의 등장으로 의미가 없다고 가르치는 기독교, 기도 방향이 예루살렘에서 메카로 바뀐 이슬람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