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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3-06 20:31:54

말레이시아-베트남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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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 베트남

1. 개요2. 전근대(7세기~18세기)3. 18세기 후반~20세기4. 현대

1. 개요

베트남과 말레이시아의 관계에 대한 문서다. 양국은 관계가 양호한 편이지만 자주 마찰이 발생한다. 말레이시아는 냉전 당시 북한, 구소련, 베트남 등 사회주의 국가와 수교하지 않는 외교 상 원칙이 있었던데다 1970년대에 베트남 전쟁으로 인해 말레이시아로 사실상 난민으로 이민 온 남베트남 국민들을 차별한 것에도 이유가 있으며 말레이시아가 대립하고 있는 인도네시아가 베트남과 친한 사이인 것, 무엇보다도 남중국해 분쟁에서 말레이시아와 베트남이 대치하는 것도 그 이유로서 적용이 된다.

2. 전근대(7세기~18세기)

말레이시아와 베트남의 접촉의 대해 가장 오래된 기록은 7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당나라 연대기에 따르면 베트남의 승려들이 인도로 순례를 가던 중 말레이반도를 경유했다고 한다.

767년 스리비자야 왕국[1]이 베트남을 공격했다.

1469년 대월의 군인들이 말라카 왕국 정복을 위해 도발할 목적으로 명나라로 향하던 말라카 왕국 사절단을 납치해서 일부를 죽이고 나머지를 환관으로 만들어 버리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들의 만행은 1481년 명나라 황실에 전달되었고 명나라 황제는 대월에 말라카를 공격하지 말라고 압력을 가했다.

1471년 대월이 참파[2]를 침공하자 참파 왕자가 자신의 신하를 거느리고 말라카에 정착하였다.

1479년부터 1484년까지 지속된 대월과 란쌍[3]과의 전쟁에 말라카 왕국은 란쌍을 지원하려 군대를 파병하였고 대월군을 격파하였다.

17세기 중반 참파의 속국 판두랑가[4]이슬람을 연구하기 위해 클란탄 술탄국[5]에 장기적으로 사신을 보내며 외교관계를 구축했다. 이후 클란탄에서 온 선교사들은 17세기부터 18세에 걸쳐 참파에 이슬람을 전파하였다.

17세기부터 18세기에 많은 참파인이 클란탄 코타바루로 이주했다.

3. 18세기 후반~20세기

1786년 영국이 페낭을 항구도시로 건설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떠이썬 왕조에서는 사신을 파견하였다.

1840년대부터 많은 베트남 가톨릭교도들이 신학 공부를 위해 페낭으로 유학했다.

베트남 화교들이 쌀과 가금류를 거래하기 위해 트렝가누에 정착하였고 일부는 현지 중국인들에 동화되었다.

1920년대 후반부터 1930년대 초반까지 호치민말라야 공산당 창립을 도왔으며 공산당 창립 기념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여러 번 말라야를 방문했다.

1957년 말레이시아가 남베트남과 수교하였다. 1년 후인 1958년 말레이시아 총리 툰쿠 압둘 라만사이공을 방문하였고 동년 1월과 1961년 남베트남 대통령 응오딘지엠쿠알라룸푸르를 방문하였다.

1973년 말레이시아가 북베트남과 수교했다.

1975년 베트남 전쟁이 끝나고 사이공이 함락된 직후 베트남 난민들이 대량으로 말레이시아에 입국했고 1978년까지 말레이시아는 대략 19000명의 난민을 수용했다. 정부는 말레이시아에 들어오는 난민의 수를 줄이기 위해 군사를 동원하였고 당시 부총리였던 마하티르 빈 모하마드는 이들을 사살하자고까지 주장하였다. 이후 난민들은 호주, 캐나다, 미국 등 서방국가로 가거나 베트남으로 귀국했다.

1990년대 초 여러 정상회담 끝에 경제 협력과 개발을 강조한 많은 조약이 체결되었다.

1990년대에 양자 관계는 무역 및 경제 협력을 특징으로 했다. 2000년부터는 다른 양자 협력 분야가 모색되었는데, 그해 베트남과 말레이시아는 법 집행 및 국경 간 마 약 거래 억제에 대한 양자 노력에 대한 합의에 도달했다. 2004년에는 정보 기술, 교육 및 외교 관계,일반 협력 분야에서 3개의 양해각서 (MoU)가 체결되었다. 두 나라 간의 양자 협력은 2008년에 또 다른 MOU가 체결되면서 국방 문제로도 확대되었으며, 말레이시아와 베트남 군대간의 합동 군사훈련 및 방위 산업 협력을 제안했다. MOU는 또한 두 나라 해군이 베트남 어부가 어업 활동을 위해 말레이시아 해역을 침범하는 것을 방지하고 해적 행위를 통제하도록 규정했다.

4. 현대

양국은 각각 쿠알라룸푸르와 하노이에 대사관을 두고 있다.
말레이시아 내에는 약 100,000명의 베트남인 커뮤니티가 있으며 베트남 내에는 하노이, 호치민시를 중심으로 소규모 말레이시아인 사업가들이 거주하고 있다.


[1] 말레이시아의 전신 말라카 왕국의 전신이다[2] 베트남 남부에 존재하던 오스트로네시아계 국가[3] 라오스[4] 현 베트남 닌투언성과 빈투언성[5] 현 말레이시아 클란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