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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10 01:17:37

메수트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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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야스 앗 딘 마수드
페르시아어, 아랍어 : غياث الدين مسعود
튀르키예어 II. Gıyaseddin Mesud

생애 ? ~ 1308년
재위 1284년 ~ 1297년, 1303년 ~ 1306년

1. 개요2. 생애

1. 개요

룸 술탄국의 마지막 술탄. 케이카우스 2세의 아들로, 사촌 케이휘스레브 3세가 처형된 후 일 칸국에 의해 옹립되었다. 1286년 서부의 오촌들을 죽이고 왕국을 통합했으나, 1297년 일 칸국의 내전에 휘말려 가잔 칸에게 폐위되었다. 1303년 케이쿠바트 3세의 처형 후 복위했으나, 이미 룸 셀주크 체제가 무너진 후였기에 메수트는 왕조의 쇠락을 지켜보다 자취를 감추었다. 이로써 룸 셀주크는 230년의 역사를 뒤로 하고 멸망하였다.

2. 생애

1280년대 초엽, 크림 반도에서 돌아와 왕위를 주장하던 메수트는 1284년 아흐메트 테쿠데르 칸에 의해 술탄으로 옹립되었다. 다만 같은해 말엽, 테쿠데르를 제거한 아르군 칸은 룸 셀주크를 약화시키기 위해 (또한 동맹이던 케이휘스렙을 위해) 왕국의 서부를 케이휘스렙 3세의 두 아들들에게 주었다. 이로써 룸 셀주크는 재차 양분되었으나, 1286년 메수트는 소규모나마 병력을 모아 그들을 죽이고 콘야를 장악하였다. 그러면서도 몽골에 대한 충성은 유지한 메수트는 재상 파크레딘 알리 (사힙 아타)와 함께 같은해 게르미얀 왕조를 시작으로 자립해가던 튀르크멘 후국들에 대한 토벌에 나섰다. 그 대상 중에는 에쉬레프, 오스만 베이국 등도 있었으나 제한된 병력으로 유동적인 유목 세력들을 완전히 섬멸할 수는 없었다.

1288년 재상 파크레틴이 사망한 후 술탄의 권위는 더욱 약화되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1296년 룸 총독 타가차르가 가잔 칸에게 반란을 일으키자 메수트는 자의와 상관없이 가담하게 되었고, 그 결과 1297년 메수트는 (케이휘스레브 3세처럼) 폐위되어 하마단에 구금되었다.[1] 가잔 칸은 과거 1283년, 카라만 왕조의 지지를 받아 술탄을 칭했다가 파크레틴에 패해 킬리키아 아르메니아 왕국으로 망명했던 메수트의 조카 케이쿠바트 빈 파라무르즈를 술탄에 봉하였다. 다만 케이쿠바트 3세는 기존 신하들을 잔혹히 숙청하여 여론의 반발을 샀고, 1302년 대칸을 방문했으나 가잔 칸은 여론 무마를 위해 그를 처형하고 메수트를 복위시켰다. 다만 이미 측근을 전부 잃은 상태로 돌아온 메수트의 권력은 유명무실하였고, 1306년 이래로 룸 술탄에 대한 기록은 끊어진다. 다소 허망한 망국 후 메수트는 1308년 사망하여 삼순에 매장되었고, 콘야는 카라만 조의 마흐무트 베이가 접수한다.


[1] 다만 케이휘스렙과 달리 몽골인 아내를 둔 덕에 처형은 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