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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20 23:54:16

모라비안 형제회


1. 개요

모라비안 형제회 또는 모라비안 교회는 18세기에 설립된 개신교 교회로, 그 기원은 15세기 보헤미아와 모라비아의 후스파 운동에서 시작된 Unitas Fratrum ("형제단의 연합”유니타스 프라트룸)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에 의해 카톨릭반종교개혁에 의한 종교적 박해가 중단되었는데, 카톨릭의 이러한 압박에도 불구하고 "숨겨진 씨앗"이라고 불리운 충성스러운 신도들에 의해 보헤미아에서 그 명맥을 유지 보존할 수 있었다. 17세기 후반 독일의 경건주의는 모라비아와 보헤미아의 숨어있는 개신교도들에게도 영향을 미쳐 이들은 독일의 개신교 지역으로 도피하게 되었다. 그 당시 경건주의는 많은 귀족들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는데, 젋은 백작 니콜라우스 루드비히 폰 진젠도르프도 그중 하나였다. 보헤미아 형제단의 전통을 따르는 한 그룹이 1722년 모라비아를 떠나 작센에 있는 진젠도르프 백작의 영지에 정착했고 그곳에서 그들은 헤른후트(Herrnhut)[1]라는 기독교 공동체를 세우게 되었다.

헤른후트 기독교 공동체에는 보헤미아와 모라비아에서 온 망명자들 뿐만 아니라 독일과 그 외의 지역에서 온 경건주의자들이 모여들었고, 이 공동체는 헤른후트의 집회장소에서 집회를 시작했다. 이들은 1727년 8월13일 특별 성찬식을 통해 여러 그룹들간의 갈등과 불화를 해소하고 복음에 대한 열정으로 불타 올라, 1732년 첫 선교사들을 외국에 파송하기 시작했다. 이 공동체는 남미와 북미, 아프리카등 오지에 이르기까지 1760년까지 약 200여명의 선교사들을 파송하였다. 헤른후트는 시민으로서의 생활과, 교회 생활이 신정 사회로 통합된 독특한 기독교 공동체가 되었으며 이는 유럽, 영국, 미국 등에 있는 약 20여개의 기독교 정착촌의 원형이 되었다.

2. 선교 역사 요약

3. 외부 링크


[1] 주님(Herr)이 보호하시는 곳(Hut)이라는 의미[2] https://www.herrnhuter-missionshilfe.de/en/